메뉴 건너뛰기

close

김형석 기자가 쓴 독서기 <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오른쪽). 이 책은 그가 소량 출판해 지인들에게만 돌린 비매품 <행복한 과학읽기>(왼쪽)의 확장판이다.
 김형석 기자가 쓴 독서기 <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오른쪽). 이 책은 그가 소량 출판해 지인들에게만 돌린 비매품 <행복한 과학읽기>(왼쪽)의 확장판이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수학 점수는 대학을 결정하고, 영어 점수는 직장을 결정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선 수학과 영어 '성적'이 좋아야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과학은 무엇을 결정할까?

지난달 <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도서출판 스쿱)를 펴낸 김형석 기자는 대덕연구단지가 있는 대전에서 20년 동안 기자로 일했고 얼마 전까지 '과학 전문기자'로 불렸다. 과학 기자라고 과학책을 많이 읽으란 법은 없지만, 그는 유난히 과학책에 심취했고 그 서평들을 모아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과학 전문 기자가 쓴 독서기 "과학책이 삶을 바꾼다"

영화 <인터스텔라> <마션> 현상에서 보듯 요즘 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과학 신간도 꾸준히 나오고 <스켑틱>이란 과학 잡지까지 등장했지만 국내 과학 출판 시장은 열악하다.

요즘 잘나가는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한 대학교수는 지난 가을 "(출판사 사장에게 들었는데) 본인이 읽고 싶어 과학책을 사는 국내 인구는 3000명 정도고, 어떤 때는 인터넷 서점에서 하루 5권만 팔려도 당일 베스트 1위에 오르기도 한다더라"고 귀띔했다.

오죽하면 나온 지 30년도 넘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아직도 과학 분야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을까? 다행히 그 교수가 쓴 책은 5쇄를 넘기며 아직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김형석이 이 책에 담은 30여 권의 과학책도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물론 <코스모스>나 <마션>처럼 TV 다큐멘터리나 영화로 미리 접한 책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책 제목 자체가 낯설다. 그래서 내가 본 책을 저자는 어떻게 읽었을까, 비교해보는 재미는 덜했다. 대신 읽어보면 재밌겠다 싶은 책을 발견하는 묘미가 있었다.

10여 년 전 인터넷 서점에서 충동구매한 뒤 읽지도 않고 책꽂이에 처박아둔 이진경의 <수학의 몽상>(2000년 초판은 푸른숲, 2012년 개정판은 휴머니스트)이 대표적이다. 김형석은 자신이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였다면서 "<수학의 몽상>을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수학을 꽤 잘했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수학의 몽상>에 수학을 잘하는 비법이라도 담겨있는 것일까? 하지만 저자가 발견한 건 수학 비법이 아닌 인생 철학이었다. 김형석은 "수학 성적에 따라 들어가는 대학의 수준이 달라진다"면서 "(국내에서 수학 선호도가 높아) 수학 관련 교양서적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렇게 풍부한 지식과 심오한 철학을 바탕으로 수학을 얘기한 책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25년 넘게 저자 이진경을 지켜봤다는 그는 이 책에서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은 단지 한 줌의 용기다"라는 대목을 찾아냈다. 실제 그는 '한 줌의 용기'를 냈고 오랜 기자 생활과 안정된 직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택했다.

"공감 없이 진정한 사과는 불가능, 거만한 사과는 모욕"

한 대형서점 과학도서 코너. 신간이 매일 같이 쏟아져나오지만 <코스모스> 같은 수십 년된 고전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대형서점 과학도서 코너. 신간이 매일 같이 쏟아져나오지만 <코스모스> 같은 수십 년된 고전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같은 책을 읽더라도 받아들이는 내용은 독자마다 제각각이다. 김형석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설득심리학 코치 김호가 함께 쓴 <쿨하게 사과하라>(어크로스, 2011)에서  '세월호'를 읽는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게토를 방문해 무릎 꿇고 사과한 일화를 통해 '진정한 사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김형석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듣고 싶은 것은 단 한 마디다. 책임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안하다'는 진정한 사과. 그 사과가 진실 규명의 시작이자 끝"이라면서 "모두가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하는데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고개를 돌리는 이 상황은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 만큼이나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꾸짖는다.

굳이 이 책에서 언급한 '진화심리학'이 아니라도 권력자들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과를 하면 권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김형석이 이 책에서 별표까지 쳐서 강조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진심을 담아 용기 있게 사과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분노와 상처를 떠올리고 공감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 없이 진심 어린 사과는 나오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를 떠올렸겠지만 그나 그녀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불행하게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많은 사람들은 자아도취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시작하지 못"하고 결국 억지로 짜내는 "거만한 사과는 모욕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수학 점수가 대학을 결정하고, 영어 점수가 직장을 결정할 수는 있지만,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색깔도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김형석에게는 과학책이었고, 그가 쓴 이 책도 인생이란 먼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무전여행자)들에게 훌륭한 안내서가 되리라 믿는다.


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 - 답답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좌충우돌 독서기

김형석 지음, 스쿱(2016)


태그:#과학책, #김형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