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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월 9일 <동아일보> 1면.
 1974년 1월 9일 <동아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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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했다. "북한공산주의자들의 도발 행위로 조국의 현실이 백척간두에 있는데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유신체제를 부정하고 있으므로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긴급조치 제1호, 제2호를 선포한다"고 했다. 긴급조치 제1호, 제2호의 주된 내용은, 유신헌법을 비판하거나 개폐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을 할 수 있고, 군사법원에서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개헌청원서명운동을 주도한 장준하와 백기완이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무고하게 영장도 없이 구속되었다.

1975년 5월 13일 박정희 대통령은 다시 '남침이 가능하다고 북한이 오판을 할 염려가 급격히 증대된 상황'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은 국론통일과 총력안보태세를 갖추는 것이라고 하면서 긴급조치 제9호를 선포하였다. 긴급조치 9호도 유신헌법을 비판하거나 개폐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했고, 긴급조치 자체에 대한 비판도 금지했다.

이를 어기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할 수 있고, 징역 10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당시 경향신문은 '북괴의 남침 위협이 제거되었다는 현저한 증거가 없는 한 앞으로 반영구적으로 존속될 운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고 평가했는데, 실제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종신집권의 기반을 만든 박정희가 사망하고 나서야 폐지되었다.

대법원과 헌재가 긴급조치에 위헌·무효를 선언한 이유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공포됐던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에 대해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유신·긴급조치 피해자 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헌재 위헌 판결에 환영하는 박수를 치고 있다.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공포됐던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에 대해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유신·긴급조치 피해자 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헌재 위헌 판결에 환영하는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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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때문에 민주화를 요구하고 유신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구속되었고, 일상에서 대통령이나 정권과 관련하여 농담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영장도 없이 구속되었다.

선원을 꿈꾸던 20대 청년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대통령은 도둑놈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여 1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선원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국민의 보편적 참가가 보장된 총선거를 요구하는 창당선언문을 지인에게 전달한 40대 가장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정신질환을 앓다가 사망했다.

유신정권은 긴급조치가 북한의 전쟁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하나, 오히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유린되었고, 많은 청년들이 감옥에 끌려갔으며, 고문으로 몸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2012년과 2013년에 앞다투어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무효를 선언하였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그 당시 긴급조치를 선포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은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종결된 이후 남북이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상존하는 위기상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긴급조치 사건을 통해 북한의 도발 위협이나 안보 이슈를 정쟁이나 기본권침해의 수단으로 남용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국가비상사태'를 악용해 법이 정한 절차도 무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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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전 국회의장은 지금 상황을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보고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다. IS 등 국제적 테러 발생과 최근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테러방지법이 무엇인가? 국정원이 광범위하게 출입국이나 금융거래, 통신이용 등의 정보와 개인정보 및 위치정보를 수집하고, 감청과 계좌추적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해킹이나 컴퓨터 바이러스도 사이버 테러로 규정하여 국정원이 사이버상에서 언제든 모든 영역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법이다. 국정원은 언제든지 집회와 시위에 대해 '테러위험'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주최자나 참여자의 위치나 계좌를 추적하고 감청을 할 수 있다.

정부는 2001년부터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테러의 구체적인 위협에 직면하지도 않았고, 정부는 이미 존재하는 대테러대책기구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국가테러대책회의). 그러기에 대통령과 여당이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민중총궐기를 IS에 빗대어 이야기하거나 테러로 규정한 발언들을 보면 이 법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명확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반인권적인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헌법재판소의 경고도 무시하고 '국가비상사태'라는 말을 악용하여 법이 정한 절차도 무시했다는 점이다. 남북 대치상황은 정권의 편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경고했듯이 '통상적인 권력작용의 방식으로는 결코 대처할 수 없는 국가위기상황이라는 점에 사회 전반적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한 쉽게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유신독재의 부활을 꿈꾸는가?

특히 긴급조치의 역사를 보더라도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에는 더욱 냉철하고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대북정책의 실패로 조성된 남북관계의 갈등을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정말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평화를 향한 소통이지, 인권침해적 요소를 가득 안고 있는 테러방지법이 아니다.

긴급조치로 인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고문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테러방지법은 2016년판 긴급조치일 뿐이다. 테러방지라는 허울 뒤에서 유신 독재의 영구 부활을 꿈꾸는 자들은 유신독재에 맞서 싸운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비로소 일군 이 땅의 민주주의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마라.


태그:#이상희, #테러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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