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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현대페인트 공장을 방문했다.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 임직원이 힘을 모으고 있다고 해서다. 정문에서 '단결투쟁'이라고 쓰여 있는 머리띠를 두른 노동조합원들에게 신분을 확인시켜준 후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장 안에는 '무자본 M&A(=인수합병) 막아내고 정상적인 자본 유치로 회사 정상화'라는 현수막이 걸린 철야농성장이 설치돼 있었다. 나상대(43·사진)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현대페인트지회장을 만나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었다.

57년 외길 걸어온 회사, 투기자본에 만신창이 돼
   
  나상대 지회장.
 나상대 지회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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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에 설립한 현대페인트(주)는 페인트 외길을 걸어온 업계의 대표주자 중 하나다.

"1989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당시 약 360억 원의 현금이 들어왔다. 그때는 우리 회사의 어음이 4대 대기업의 어음과 비슷하게 우대를 받았을 만큼 잘나갔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이 자금으로 페인트 제조 사업에 투자해야했는데 대주주의 방만한 경영과 금투기·환투기·부동산투기 등으로, 회사가 1998년 4월, 부도 처리됐다."

그 후 2002년 인천지방법원에서 화의 종결 결정이 내려진 후 (주)부산상호저축은행이 대주주가 됐다. 그리고 2007년 8월,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가 인수했다. 최 대표는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2년 '최규선 게이트'로 언론에 회자된 사람이다. (주)부산상호저축은행은 당시 시세차익 400억 원을 얻고 떠났다.

"최규선씨는 이명박 정권 때 우리 회사의 주식을 이용해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돈을 횡령하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시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2013년 최씨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그가 빌린 자금 상환 의무가 현대페인트(주)로 이전됐다. 당시 부채 총액이 800억여 원으로 자본금(170억여 원)의 네 배가 넘었다. 결국 금융당국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4월까지 현대페인트의 주식거래를 정지시켰다. 최씨는 지난해 신아무개씨에 의해 '횡령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돼,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최씨를 대신해 일본계 기업 JTC가 투자자로 나섰다. JTC는 구철모라는 사업가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구씨와 JTC는 2014년 3월 현대페인트 경영권을 120억원에 인수했다. 현대페인트 노동자들은 급여 반납·복지 축소 등의 자구노력으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애썼다. 그 덕에 2014년 4월, 기업 회생 절차가 종결돼 주식거래 정지가 풀렸다. 그 후 현대페인트 주가는 요동을 쳤다.

투자자가 기업을 인수하자마자 주가를 올려 '먹튀(=먹고 튀다)'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보호예수'란 제도가 있다. 현대페인트 주식을 인수한 JTC 보유 주식의 대부분은 2015년 3월까지 매각할 수 없게 묶여 있었다. 그러나 '보호예수'가 끝나는 2015년 3월, 구씨와 JTC는 주당 500원이었던 주식을 1300원에 매각했다. 그 주식을 사들여 현대페인트를 인수한 사람이 이안 대표다.

직원들, 상장폐지 요구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한국거래소 앞에서 현대페인트 상장폐지 청원서를 전달하러 가는 나상대 지회장<사진출처-화섬노조>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한국거래소 앞에서 현대페인트 상장폐지 청원서를 전달하러 가는 나상대 지회장<사진출처-화섬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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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0일 회사를 인수한 이안 대표는 현대페인트뿐만 아니라 부산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는 등, 정상적인 경영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인수한 지 불과 7개월여 만인 11월 20일, 이 대표는 '자본시장법' 위반과 부당이득 취득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 대표는 물론 증권사 직원, 증권방송 진행자까지 가세한 주가 조작 사건이 적발된 것이다. 증권방송 진행자는 대가를 받고 방송에서 현대페인트 종목을 추천한 혐의를, 증권사 직원은 이 대표의 부탁으로 주식을 매매해 주가를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시세 조종과 부정거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16명이다.

서울남부지검의 보도자료(2015년 12월 3일)를 보면, 이안 대표는 현대페인트 인수자금을 사채시장에서 빌리면서 담보로 현대페인트 주식을 걸었다. 이른바 '무자본 M&A'다. 그래서 주식을 빨리 현금화하기 위해 증권사와 증권방송 직원을 이용, 부당이득 218억 원을 취했다.

노조는 이안 대표가 구속된 지 3일 만에 총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투쟁기금 2억 5000만 원을 사용하기로 결의했다. 투기자본을 몰아내고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결기였다. 이 총회 4일 뒤 임직원 전체가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12월 21일, 노조는 한국거래소(KRX) 앞에서 상장폐지를 청원했다.

"선량한 노동자와 투자자를 보호해야한다는 취지였다. 더 이상 투기자본에 의해 다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투자로 기업을 발전시켜 노동자와 주주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하는데 우리 회사는 이익을 악덕 대주주가 자신의 주머니에 채웠다. 이런 상황을 알려내 투자자를 보호하고, 투기자본을 몰아내기 위해 상장폐지도 불사하겠다는 것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은 철저하게 조사를 해야 하고, 이런 사실을 알려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노조는 이미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관련 규정을 보면 법인의 자기자본 5% 이상의 횡령·배임이 발생하면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넉 달 새, 대표가 일곱 번 바뀌어

현대페인트는 지난해 10월 이후 대표가 일곱 번 바뀌었다. 가장 최근에 바뀐 것은 인터뷰를 하고 난 후인 지난 24일이다. 노조에서 추천한 고상인 전 임직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결정됐다. 노조의 1차 승리라 할 수 있다.

나상대 지회장은 고상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임되기 전인 지난해 10월 16일, 11월 2일, 11월 3일, 12월 11일과 올해 1월 4일, 1월 18일에 선임된 대표들을 모두 투기자본으로 규정했다.

"전직 경영진들은 현대페인트 정상화에는 관심이 없고 주가 부양 후 경영권 매각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김아무개 전 대표는 대부업체를 통해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그 중 14억원을 횡령·배임한 것으로 추정해 노조에서 고발한 상태다. 또한 박아무개·최아무개 전 대표는 회사에서 발행한 적이 없는 가짜 전환사채를 위조해 사채업자에게 1억 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직원들이 급여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 경영진은 고급 외제차 15대를 임차했다. 그 중 8대는 노조에서 첩보를 입수해 출고를 저지하기도 했다."

노조는 2월 초, 이사회에 3대 요구안을 제출했다. 3대 요구는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대표들의 이사 해임과 책임경영으로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대표 선임, 조속한 회사 정상화를 위해 투명하고 올바른 자본의 우선 협상자 선정이다.

지난 24일, 회사는 이사회를 개최해 노조의 3대 요구안 수용입장과 고상인 전임직원 비대위원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26일에는 페인트 사업을 꾸준히 해왔던 기업과 투자협약서를 체결했다. 200억 원 직접투자와 200억원 상당의 물량을 확보하고, 진천 공장의 공사도 재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도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어 노조에서는 투기자본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143 대 7의 싸움, 이길 수밖에 없다
   
 노조원들은 투기자본을 막기 위해 정문을 폐쇄했다. 2월 24일 이사회 개최 이후엔 폐쇄를 풀었다.
 노조원들은 투기자본을 막기 위해 정문을 폐쇄했다. 2월 24일 이사회 개최 이후엔 폐쇄를 풀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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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페인트 구성원은 이사회 성원을 포함해 150명이다. 그 중 비상대책위원회에 가입한 사람은 7명을 제외한 143명이다. 나상대 지회장은 143명과 7명의 싸움, 143명과 투기자본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현대페인트는 오는 4월 31일까지 청천동 공장을 비워줘야 한다. 4년 전, 최규선씨가 부지를 팔았기 때문이다.

"충북 진천에 새 공장을 짓고 있었는데 작년 12월에 공사가 중단됐다. 투기자본들이 회사 정상화에는 관심이 없고 경영권 확보에만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노조는 정상적인 투자자를 유치해 진천 공장 건축공사를 재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공장이 이전할 때 노조가 거부하는데, 우리는 이전해 회사를 정상화시켜 상생을 하자는 거다. 그러나 투기자본은 이전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투자에만 관심이 있다. 빨리 건강한 자본을 유치해 회사를 정상화해야 한다."

이어서 나 지회장은 "지난 20년간 학습하며 준비한 투쟁이다. 그 전에는 노조가 내용을 잘 모르기도 했고, 대응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이 투쟁은 우리 현장의 투쟁이기도 하지만 넓게는 투기자본을 근절해 사회에 발을 못 붙이게 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뒤 "건강한 자본을 유치해 회사의 근간을 세워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노조에서도 대안 정책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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