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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코앞이다. 일정이 일을 만든다더니, 선거일이 다가오자 선거구와 선거제도를 두고 벌어진 논점은 일거에 사라지고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란 숫자만 남았다. 지역주의 완화와 지역균형 발전, 사표 방지와 민의 반영, 청소년 선거 참여 등 풀지 못한 과제가 산더미지만, 이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라도 이번 선거를 잘 치러야 한다는 익숙한 논리가 현실을 장악하는 모습이다.

어쨌든 당면한 과제는 선거다. 이번에는 진보가 보수를 이길 수 있을까. 판세는 불리하지만 그간의 패인을 살펴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두드려보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세운다면, 누군가의 한 표를, 그 사람의 지지를, 함께 나아갈 마음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_보수화된 시민 32인을 심층 인터뷰하다 / 장신기 지음 / 시대의창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_보수화된 시민 32인을 심층 인터뷰하다 / 장신기 지음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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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진보에서 보수로 돌아선 까닭은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진보 진영은 두 차례 연속으로 대통령을 만들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과 함께한 민주 정부 10년이다. 화려한 과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제는 사회 전체의 보수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보수 지지자가 왜 진보에 반대하는지, 진보 지지자가 왜 보수로 돌아섰는지, 그들을 탓하기보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순서일 터.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는 '보수화된 시민' 32명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 진보의 반성과 각성을 재촉한다.

"보수도 여러 문제가 있지만 자신들의 한계를 인지해서 그런지 변하려는 노력은 많이 보여줘요. 그런데 진보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따지고 보면 더 완고해. 변하려고 하지를 않아."

진보는 보수가 변하지 않는 수구라고 비판하지만, 이렇듯 평가는 반대다.

"386 세력들은 과거 운동권 시절의 정서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권을 잡은 뒤에도 서민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하게 된 거예요."

어렵게 뽑아줬는데 막상 우리 편에서 일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때가 나았다는 진보 진영의 추억담은 그렇게 추억하는 이들의 추억담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진보의 평화를 진보의 나약함으로, 진보의 민주주의를 진보의 정쟁으로 뒤바꾼 보수의 프레임이 시민의 보수화에 크게 작용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응은 마지막 책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_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 / 채진원 지음 / 인물과 사상사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_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 / 채진원 지음 / 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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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정치의 꿈은 이루어질까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중도층 공략이다. 확실한 자기편을 기반으로 상대편을 빼앗아 오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확고한 신념으로 자기 위치를 지키는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자연스레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위치를 옮기는 중도층이 전략 요충지가 된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는 안철수 의원으로 중심으로 새롭게 문을 연 '국민의당'이 "국민분열에 앞장 선 양당체제에 맞서 민생을 위한 합리적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중도 노선을 걷는 터라, 중도층을 둘러싼 각 당의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 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는 중도정치는 기회주의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정치적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양당 구도와 이념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낡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커졌는데, 기존 정당은 극단적인 대결과 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오히려 진영논리의 편향성을 동원하는 선동전략에만 치우쳐 국민 통합과 이익 조정에 실패했으니, 점점 늘어나는 중도층의 이익을 대변할 중도정치의 공간이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이 책은 21세기 중도정치가 "공화주의 정신에 따라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자 하는 시민정치운동"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에 부합하는 중도정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지 주목해야겠다.

이기는 프레임_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 / 조지 레이코프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 생각정원
 이기는 프레임_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 / 조지 레이코프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 생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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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보수를 이기려면

마지막 책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잘 알려진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신작 <이기는 프레임>이다. 그는 전작에서 "왜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라는 진보의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며 선거와 정치를 프레임 전쟁이란 틀로 새롭게 해석해 화제를 모았다.

자신의 이론이 여러 방면에서 쓰이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진보가 보수를 제대로 이기지 못하자 답답한 마음을 한껏 토로하며 '민주당이 현재의 정치에 즉각 활용하길 바라며 쓴 안내서'를 새롭게 내놓았다.

실전편이라 그런지 민영화, 노동, 교육, 에너지 등 구체적인 정책 이슈에 맞춰 어떻게 프레임을 설정하고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지 설명하는데, 한국 사회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내용이다. 예를 들어 노동 영역에서 진보의 시각을 강화하는 표현을 살펴보자.

"노동자는 이윤창출자다. 기업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일할 때에만 이윤을 낼 수 있다." "의료지원금과 연금은 노동자들이 일하여 번 급여의 일부이다. 즉 이미 수행한 노동에 대한 사후 지불금이다."

이것으로 당장 무엇이 바뀔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간 보수는 이와 반대되는 노동의 프레임으로 진보를 계속 이겨왔다. 언어를 되살리면, 사고도 시나브로 바뀌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를 거치며 보다 긴 싸움에서 이길 체력도 함께 확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 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보수화된 시민 32인을 심층 인터뷰하다

장신기 지음, 시대의창(2016)


태그:#선거, #시민의 힘, #진보,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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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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