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여한 생동중학교 학생들.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여한 생동중학교 학생들.
ⓒ 임안섭

관련사진보기


생동중학교에서 지난 2월 '참된 오늘을 여는 역사 공부'라는 주제로 '겨울나기학교'를 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위안부 합의 문제 등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2015년. 사회적으로 많은 논쟁이 있는 만큼, 학생들이 직접 공부하면서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힘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기를 바랐다.

특별히 이번에는 두 가지 주제를 집중해서 공부했다. 일제 강점 시대 독립운동과 일본의 식민지 통치전략, 특히 그 중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학생들은 방학 동안 독립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관련된 책을 선택해서 읽고 이 시간을 미리 준비해왔다. 그리고 더 자료를 찾아보고자 가까운 도서관으로 향했다.

모둠별 주제와 관련된 책을 찾아 선별하고, 다음날 발표를 위해 자료를 정리했다. 조금은 막연했지만, 밤늦게까지 책 들여다보며 정리했다. 모둠 안에서 이야기 나누며, 다듬기를 이어갔다.

당당히 자기 목소리 내신 할머니

생동중학교 학생들은 독립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책을 미리 읽어와 모둠별로 공부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 생동중학교 겨울나기학교 생동중학교 학생들은 독립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책을 미리 읽어와 모둠별로 공부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 임안섭

관련사진보기


모둠별 주제 발표를 했다. 첫 번째 주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계속 전쟁을 일으켰다. '대동아 공영'이라 칭하며, 서양에 맞서는 '아시아 제국'을 꿈꾸고 자신의 전쟁을 미화했다. 그러면서 식민지였던 조선에서도 전시동원체제를 도입했다. 그 가운데 노동자로, 군인으로,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로 조선인들이 전쟁터로 끌려갔다.

사실 전 세계 무수히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대규모 '위안소'를 만든 것은 일본이 유일하다고 했다. 첫 번째 모둠은 왜 일본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조사해서 발표했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고, 전쟁 지역에서 군인들이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예방 차원에서, 성병 예방 차원에서, 국가와 군이 인정하는 공적인 성격을 지닌 위안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용어의 문제도 강조했는데, 여러 논의 끝에 일본군 '위안부'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작은 따옴표를 붙인 것은 일본군이 강제로 그렇게 불렀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 모둠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살펴보았다. 일본은 법적 책임을 회피한 채, '일본 정부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주장과 도덕적으로만 잘못했다는 주장을 폈다. 특히 1965년 맺은 한일협정이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런데 '완전하고 최종적인 보상'이라는 당시의 협정 문구가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에도 거의 유사하게 거론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놀라게 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협정. 충분한 사과와 법적인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1992년 1월부터 시작한 '위안부' 수요시위는 세계 최장기 시위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끌어가고 있다.
▲ 수요시위 할머니 1992년 1월부터 시작한 '위안부' 수요시위는 세계 최장기 시위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끌어가고 있다.
ⓒ 임안섭

관련사진보기


공부 이후 찾아간 수요시위는 더욱 뜻 깊었다. 1992년 1월부터 시작한 수요시위는 세계 최장기 시위라고 한다. 이 시위를 통해 할머님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해결을 요구하며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시위를 이끌어가고 있다. 또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인권, 평화를 주제로 소수자와 고통 받는 이들을 감싸는 내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후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은 곳이다. 할머니들 건강상의 이유로, 할머니들을 가까이 뵙고 이야기 나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둘러보고, 할머니들 증언이 담긴 사진·녹음·영상자료들을 보는 것으로도 할머니들과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소통을 막는 통제 현실

굵직한 두 번째 주제로 독립운동에 대해 공부했다. 임시정부, 의열단, 조국광복회, 조선건국동맹 등을 다뤘다. 이승만, 김구, 안창호, 김원봉, 신채호, 김일성, 여운형 등 각 단체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너무 피상적으로 알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 인물의 이미지를 곡해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일성일 것이다. 북한에서는 '신'으로, 남한에서는 '가짜 김일성'으로 회자된다.

사실 남북한이 나뉘어져 있기에, 우리의 다양한 독립운동들이 공평하게 다뤄지거나, 그 독립운동단체들이 지향했던 가치들이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 상황이다. 남한과 북한이 각각 정통성을 인정하는 단체를 매우 협소하게 보고, 다른 운동들은 독립운동 역사에서 배제했다.

이 말은 곧 그 단체들이 지향했던 가치들도 우리 사회에서 거부되었음을 이야기한다. 통일 한국을 지향한다면, 어쩌면 가장 우선적으로 시도되어야 할 것은 이런 역사를 정당하고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 제국주의라는 강고한 권력 앞에 자신의 삶을 내걸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생동중 학생들은 독립운동에 대해 공부하며,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서대문형무소 현장에도 가 보았다.
▲ 서대문형무소 생동중 학생들은 독립운동에 대해 공부하며,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서대문형무소 현장에도 가 보았다.
ⓒ 임안섭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서대문형무소도 갔다. 해방 이후에도 서울구치소로 쓰이다가 지금은 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이곳으로 붙들려왔다. 당시 고문의 현장도 가보고, 독방도 가보고, 감옥에서 행해진 다양한 이야기들도 들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곳은 격벽장이다. 감옥은 서로의 소통을 가로막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격벽장은 운동을 하되, 서로 이야기하지 못하게 벽돌로 막은 운동장이다. 그리고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 간수들이 위에서 모든 죄수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운동조차도 함께하지 못하고 격리되어 해야 했던 당시의 비극을 보여준다.

당시 한반도 전체가 일본이라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는 감옥이었다. 감시, 폭력, 통제, 불통이라는 감옥의 철칙은 고스란히 조선사회 전체로 옮겨왔다. 서대문 감옥은 결국 당시 조선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독립운동 정신은 이타성

생동중 학생들은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하여 방학진 사무국장에게 식민지시기, 이미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제국이 아닌 민국(백성의 나라)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방문 생동중 학생들은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하여 방학진 사무국장에게 식민지시기, 이미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제국이 아닌 민국(백성의 나라)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임안섭

관련사진보기


뜻 깊은 단체 두 곳을 방문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평화박물관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아직 우리 안에 남은 일본의 잔재와 과거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온 곳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하시는 방학진 선생님이 강의를 해주셨다.

선생님은 식민지시기, 이미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제국(황제의 나라)이 아닌 민국(백성의 나라)을 세웠다고 하셨다. 비록 일본에 영토를 빼앗겼지만, 백성이 곧 주인인 나라를 꿈꾸고, 그 나라의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또한 독립운동가는 직업이 아니었고, 여운형은 우체부·교육가, 안창호는 교육가, 신채호는 언론인이자 역사가, 김상옥은 철공소 사장이었단다. 독립운동은 일종의 자원봉사 같은 것으로, 이타성·자발성·비대가성·적극성·미래지향성을 지닌 시민으로 살아갈 것을 말씀해주셨다.

마지막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에 방문해, 문학가인 서해성 선생님 강의를 들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평화박물관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당신을 위해 쓰지 않으시고, 전쟁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위한 기금으로 내어놓으셨다. 이것으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전쟁 학살에 관한 내용을 모으고 수집하게 되었다.

"전쟁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이익을 보고 모두에게 피해가 있다"면서, "그래서 '평화가 필요하다'라고 외치고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고 하셨다. "평화는 평화를 방해하는 것들에 저항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편, "역사와 사회를 바라볼 때에는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 내 일상이 세계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배고픈 조카를 생각하며 빵을 가져갔던 장발장 이야기처럼 말이다. 끝으로, "어떤 질문에 바로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길게 자기 질문으로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격려로 강의를 맺었다.

과거를 제대로 해석하지 않으면

과거를 제대로 알고, 해석하지 않으면 결코 참된 오늘,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 역사 공부가 청소년들에게 좋은 질문을 남기고, 앞으로 더 책임있게 공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나눔의집 방문 과거를 제대로 알고, 해석하지 않으면 결코 참된 오늘,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 역사 공부가 청소년들에게 좋은 질문을 남기고, 앞으로 더 책임있게 공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임안섭

관련사진보기


다함께 겨울나기학교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열일곱 명 학생들의 나눔은 몇 가지로 모아진다. 먼저 직접 도서관 가서 자료 찾고 정리해서 발표한 것. 공부하는 힘도 기를 수 있었고 스스로 해서 좋았다는 것. 둘째, 우리가 준비한 손간판 들고 수요시위에 참여한 것, 할머니를 만나고 그 자리에 선 것이 마음에 남았다는 것. 세 번째, 몰랐던 역사, 관심 갖지 않았던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 더 공부하고 이후에도 알아가고 싶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미래를 위해 살아야지, 왜 자꾸 과거에 매달리느냐'는 말을 한다. 하지만 과거를 제대로 알고 해석하지 않으면, 결코 참된 오늘과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 이런 공부가 우리 모두에게 좋은 배움, 좋은 질문을 남기고, 앞으로 더 책임있게 공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태그:#역사교육, #한국사, #위안부, #나눔의집, #생동중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