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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게는 한국 시와 소설, 그 폭을 좀 더 확대해 한국 작가사회와 책 읽는 '소수'의 사람들을 압박해온 '문학 고사론(枯死論)'은 이미 이십 년 이상 극악한 풍문인양 우리 주위를 떠돌았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그 '위기론'이 문단안팎을 불문, 어떠한 사람들에게도 두려움과 걱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미 2400년 전 "인간을 현혹해 이성적이지 못하게 하는 시를 쓰는 시인들을 우리들의 공간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은 플라톤이 태어나고 성장한 남부 유럽 그리스로부터 피안처럼 멀고 먼 2016년 한국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플라톤이 자신의 저서 <국가>에서 '시인을 도시에서 내쳐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는 이렇다.

"시가 지향하는 모방이란 세상사의 진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말이나 앞세우는 시인은 불특정다수 선량한 시민들의 이성적 사고체계를 파괴할 뿐이다. 본성과 진리에서 멀어진 채 구름 잡는 놀이나 하는 시인은 애초부터 열등한 존재이기에, 그들이 구술 혹은, 서술하는 시는 후세를 모범적인 시민으로 성장케 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진리로부터 외떨어져 옛것의 흉내나 내고 있는 것도 모자라, 혹세무민하는 아름다움만을 모방해 시민들의 건전한 사고와 사물을 진지하게 분별하는 능력을 훼손시키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다. 감정을 통제해야 마땅할 이성을 마비시키는 시는 감각적 쾌락 외에는 인간에게 주는 것이 없다. 시인은 제도와 법률로 세워야 할 나라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추방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소 거칠지만 플라톤의 주장을 요약한 위의 문장 속 '시인'이란 단어를 '한국문단' 혹은, '한국의 작가'로 바꾸고, 시를 '한국문학'으로 바꿔보자. 현실과는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과장이거나 뭘 모르는 자가 부러워 함부로 내뱉는 폄훼처럼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참담하다.

일부 메이저 문학잡지, 한국문학의 위기 불러

창간 50주년을 맞은 <창작과비평>. 신경숙 표절사태에 관한 '창비'의 태도는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았다.
 창간 50주년을 맞은 <창작과비평>. 신경숙 표절사태에 관한 '창비'의 태도는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았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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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위기는 좁혀 말하면 계간지와 월간지 등을 망라한 한국 문예지의 위기와 다름없다.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등으로 대표되는 문예지는 한국문단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했던가.

이들 문예지는 각각 개별 잡지의 성격에 부합하는 시인과 소설가를 선별해내고, 문단이란 토양 안에서 그들을 키우고, 각종 문학상으로 격려하고, 동일하고 유사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동아리를 만들어 그 모임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채찍질하고, 선후배 문인들이 인간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사교의 장 역할까지 해왔다. 문단에 끼친 긍정적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잘라 말하자면 이건 기억 저편 '옛날이야기'라는 게 필자의 바꿀 수 없는 생각이다.

지난해 문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언필칭 '메이저 양대 문예지'로 불리는 <창작과비평>과 <문학동네>를 향해 쏟아진 비평가들의 비평과 수많은 독자의 질책은 근거 없는 쓴소리만으로 치부하기 힘들다. 그간 '권력'을 독점하고, 그 독점적 공간 속에서 잡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소수의 (성골)문학평론가들이 몇몇의 (잘 팔리는) 작가와 손발을 맞춰 자신들(문학평론가)의 자장(磁場) 안에 있는 문예지를 통해 이들(작가)을 띄워주고 키워주기를 거듭해 왔다"는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지난번 '신경숙 표절 사태'는 이것이 공론화되고, 표면화된 것일 뿐, 거기서 오간 이야기는 한국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벌써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것들이다. '문학상업주의' '문단권력' '주례사비평' '창비(창작과비평) 혹은, 문동(문학동네) 진영 평론가와 작가'… 이러한 '비문학적'이고 듣기 불편한 단어들이 무시로 오간 '신경숙 사태'라는 화마는 어째서 초기에 진화되지 못하고 마른 나무 가득한 겨울산에 번지는 불처럼 삽시간에 확산됐을까.

그 배경에는 소설가 이응준이 표절했다고 지목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두고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경향신문>인터뷰)이라고 말한 신경숙의 모호한 해명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창작과비평>의 태도에 있었다.

표절 사태에 관한 <창비>와 <문동>의 안일한 현실 인식

<창작과비평>은 신경숙의 작품을 다수 수록함으로써 작가에게 문학적 권위와 함께 독자들의 관심을 선물하고, 신씨의 소설을 출판해 적지 않은 금전적 이익을 얻어낸 잡지다. 그럼에도, 아래와 같은 해명은 상식선에서 제기된 '표절'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불분명한 논리로 회피하고, 세간의 시각에서 '창비 진영 작가'로 분류됐던 신경숙의 입장만을 시종 변호하는 것으로 읽혀질 여지가 충분해 여론의 매운 질타를 받았다.

"언론과 독자분들께 <전설>과 <우국> 두 작품을 다 읽고 판단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중략)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이다. 또한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 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후략)" - 2015년 6월 17일 '창비 문학출판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중에서.

표절문제를 제기한 신문과 방송사 기자들은 물론 평소 창비에서 출간된 책을 읽어온 독자들을 한 수 아래의 '학생'으로 보고 '지도하는' 듯한 어투를 담은 창비 문학출판부의 위 보도자료는 타오르던 논쟁에 다시 한 번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인터넷공간에선 "다시는 창비의 책을 사보지 않겠다" "문학인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는 등의 비난이 비등했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길에 놀란 창비는 부랴부랴 강일우 대표이사 명의로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대표이사의 '사과문'에도 '신경숙 표절 사태'를 보는 창비의 명확한 입장은 드러나지 않았고, 추후 재발방지 대책도 두루뭉술하게 표현돼 있을 뿐이었다.

'신경숙 표절 사태'와 관련 창비와 함께 또 다른 '문단권력'의 한 축으로 지목되며, 곤욕을 치른 문동의 사과와 대처는 구체성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지만, 그렇다고 신경숙과 문동을 향해 있던 문학평론가와 독자들의 비판과 힐난을 온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후 이 사태에 관한 책임을 지고 문동 강태형 대표와 1기 편집위원 6명이 퇴진한 것은 모두가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신경숙의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작이라는 문제 제기는 15년 전 이미 한 차례 있었다. 비록 정문순 평론가의 글이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가 있다고만 단정하고 있어 당시의 감각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해도, 한 번 제기된 문제를 소홀히 넘긴 것에 대해서 나를 비롯한 어떤 평론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중략)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못한 것이 문동 편집위원들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 깊은 실망을 느꼈을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나를 비롯해서 문학동네 편집위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일련의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중략)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신경숙 작가의 개인적인 잘못이 아니라 문학의 타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의 타락에는 문동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도 많았다. 이런 주장들에 응답해야만 한다.(후략)" - 편집위원 권희철이 쓴 <문학동네> 2015년 가을호 서문 중에서.

내·외부적 위기에 직면한 문단... 새로은 길은 없나?

2015년 겨울호(158호)를 끝으로 폐간된 <세계의문학>. '한국문학의 위기'가 현실화된 사례 중 하나다.
 2015년 겨울호(158호)를 끝으로 폐간된 <세계의문학>. '한국문학의 위기'가 현실화된 사례 중 하나다.
ⓒ 세계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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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서술한 것은 한국문단과 한국 작가사회의 내부 문제다. 이러한 내부적 문제가 한국문학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문예지의 위상과 존립근거에 상처를 냈다면, 외부적인 문제는 없을까? 물론 있다. 지난해를 끝으로 적지 않은 문예지들이 폐간 또는, 휴간했다.

<세계의 문학> <솟대문학> <유심> 등이 바로 그것. 군소의 문예지들이 창간 후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던 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사십 년에 이르는 <세계의 문학>과 1918년 만해 한용운이 창간해 지난해까지 시(詩) 전문 월간문예지의 형태로 발간되던 <유심>이 독자들의 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이미 도래한 '인터넷의 시대'와는 별개로 '종이 문예지'를 귀하게 여기던 문학애호가들에겐 비보였다.

"민음사는 <세계의 문학> 2015년 겨울호(158호)를 끝으로 전통적 형태인 문예지는 폐간할 것"이라며 "계절마다 형식이 똑같은 문예지들이 수십 종씩 쏟아지는 상황에서 <세계의 문학>은 생명력을 다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2016년 상반기부터 준비를 해서 새로운 이름과 형태의 전혀 다른 문예지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문예지를 대체하기 위해 웹 포털이나 다른 형태의 종이 잡지를 발행하는 방안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다. 아직 추후 발행 형태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민음사 측은 "최근 불거진 '문학 권력' 논란도 그렇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한국 문학을 찾기 어려운 것을 보면 문학 출판사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긴 역사를 가진 계간지를 접는다는 것이 부담이지만 조금 더 한국 문학과 독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 2015년 10월 8일 <매일경제> 보도 중에서.

매우 완곡하고 원칙론적인 어법으로 폐간의 사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세계의 문학>이 사라지는 저변에는 '자본의 문제'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영화와 텔레비전, 온라인게임 등으로 옮겨간 독자들은 책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력과 돈을 투자해 어렵게 만들어놓은 문예지를 겨우 수백 명의 독자들만이 읽는다면, 그래서 만들수록 눈에 뻔히 보이는 적자를 매번 감수해야 한다면 매월 혹은, 매 계절마다 문예지를 생산해야 하는 출판사의 심경은 어떨까. 굳이 묻고 답을 듣지 않더라도 명약관화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속되더라도 한국문학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문예지 출간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건 일종의 폭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비단 <세계의 문학>만은 아니다.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지만, 여타의 문예지들이 발간을 멈추는 것 역시 이런 필자의 추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말로만의 반성' 아닌 진정한 자기갱신 있어야

내부적으론 공고화된 '문단권력' 외부적으론 '자본의 논리'라는 적을 만나 사면초가의 입장에 처한 한국의 문예지. 물론 회생과 자구의 몸부림이 없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문동과 함께 창비 역시 편집진을 재정비하고 혁신을 약속했다.

부정할 수 없는 한국 문예지의 양대 축 <창작과비평>과 <문학동네>가 아직은 의심과 불신의 눈길을 거두지 않은 다수 작가와 독자들에게 얼마만한 개혁과 자기변화의 모습을 보여줄지 올 한 해 관심 깊게 지켜볼 일이다.

이와 더불어 '백화점식 편집'을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키워드로 지난 한 해 미약하나마 약진하는 모습을 보여준 <미스테리아> <악스트> 등의 신생 문예지도 주목해 볼 만하다.

이제 막 문예지 시장에 진입한 이들에게 남겨진 문제는 변화의 양상을 예측하기 어려운 21세기 한국문학 환경에 얼마만큼 발 빠르게 대응하는가, 그리고 처음에 세운 '편집원칙'의 초심을 어떻게 지켜내는가가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계간 문예지 <문학의오늘> 2016년 봄호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신경숙,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세계읩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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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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