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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노회찬 총선후보(창원성산)는 선거운동원 조끼에 '야권단일후보'라고 새겼다가 선관위로부터 수정을 요구받고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단일후보' 스티커를 제작해 붙여 바꾸었다.
 정의당 노회찬 총선후보(창원성산)는 선거운동원 조끼에 '야권단일후보'라고 새겼다가 선관위로부터 수정을 요구받고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단일후보' 스티커를 제작해 붙여 바꾸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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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일 오전 10시 8분]

"선관위 말을 따랐을 뿐인데 어떻게 선거법 위반인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의 '오판'이 야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위기에 빠뜨렸다. 검찰이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단일후보'였던 홍영표, 송영길, 신동근, 박남춘(이상 더불어민주당), 노회찬(정의당) 당선인 등을 상대로 선거법 위반 혐의 조사하고 있어서다. 법원에서 '야권 단일 후보'라는 표현을 허위 사실로 보고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확정하면 의원직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선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애초 국민의당이 빠지고 양당 후보만 단일화해도 '야권단일후보'라던 중앙선관위에서 이달 초 이에 반하는 법원 결정이 나오자 자신들의 유권해석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야권단일후보 지워라? 선관위 따랐을 뿐인데...)

선관위의 달라진 지침에 따라 인천지역 13개 선거구를 비롯한 전국 단일화 후보들은 '(더민주+정의당) 단일 후보' 등으로 표현을 모두 바꿨지만,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상대 후보들은 당선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실제 선관위의 잘못된 유권해석 때문에 의원직을 잃는 사례가 나올 수 있을까?

합의 없는 '단일후보'는 '허위사실' 인정... 당선무효 사례는 없어

<오마이팩트>에서 지난 법원 판례를 확인했더니 '범야권단일후보'나 '보수단일후보'라는 표현이 허위사실이라고 본 경우는 있었지만 실제 당선 무효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더구나 당시 허위사실공표죄가 인정된 후보들은 이번 20대 총선 당선자들과 달리 선관위 유권해석을 거치지도 않았고 다른 정당이나 후보자들과 합의조차 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당선자는 아니지만 문용린 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보수단일후보'란 표현 때문에 선거비용 32억여 원을 물어낼 위기에 처했다. 당시 문 전 교육감은 '대한민국 올바른 교육감 추대 전국회의'란 단체에서 진행한 보수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했다며 스스로 '보수단일후보'라고 밝혔지만, 역시 보수 성향인 고승덕 후보와 이상면 후보 쪽에서 반발했다.

당시 서울시선관위는 문 전 교육감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민주진보 단일후보'인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은 다른 민주-진보 성향 후보가 없어 문제 삼지 않았다. 지난해 1, 2심 재판부도 "'보수 단일 후보'라는 표현은 보수 성향의 고승덕, 이상면 후보들을 아우르는 단일 후보로 이해될 가능성이 높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1심 재판부가 벌금 200만 원 형을 선고한 반면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지난해 10월 문 전 교육감이 선관위 지적을 받고 공보물을 고친 점,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이 적은 점 등을 감안해 벌금 200만 원 선고유예 판결했다. 덕분에 문 전 교육감은 선관위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32억여 원을 지킬 수 있었다.

유종필 서울시 관악구청장도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사전선거운동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 2심에서 유죄가 인정됐지만 벌금 100만 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유지했고 지난 2014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당시 유종필 구청장은 자신이 속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 야 4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한명숙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한 점을 들어 자신도 '범야권단일후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기초단체장은 야4당 사이에 따로 단일화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허위사실이라고 봤다. 다만 당시 야4당에서 출마한 다른 후보가 없었던 점 등을 감안해 당선 무효형은 피했다.

당시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피고인이 사용한 '범야권 단일후보'라는 표현이 모든 야당이 참여한 협상에 의한 후보자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앞서 본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사이에 이들 정당을 대표하여 한 명의 후보자만을 입후보시키기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을 전제로 위 합의에 따라 입후보한 후보자를 의미하는 취지로 위 표현을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 결정 뒤 '야권단일후보 고쳐라'... 선관위도 사실상 책임 인정

20대 총선에서 인천 남구을에 출마한 김성진 정의당 후보의 홍보 현수막이 지난달 31일 남구 학익동에 내걸려 있다.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야권단일후보로 결정됐다.
 20대 총선에서 인천 남구을에 출마한 김성진 정의당 후보의 홍보 현수막이 지난달 31일 남구 학익동에 내걸려 있다.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야권단일후보로 결정됐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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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관위는 이 판례를 근거로 지난 2012년 4월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후보만 단일화해도 '야권단일후보'란 표현을 쓸 수 있다고 유권해석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3월 말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질의에도 같은 지역구에 국민의당 후보가 있더라도 '야권단일후보'라고 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단일화한 정당 이름을 함께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한 게 화근이었다.

앞서 법원은 '범야권단일후보'란 표현을 "단순한 정치적 평가 또는 가치판단에 관한 수사가 아니라 후보자의 신분 등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봤는데 선관위는 이를 '정치적 수사'내지 '정치적 주장' 정도로 본 것이다.   

결국 인천지방법원(민사21부)은 지난 1일 유권자들이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단일화 협상이 진행 중이던 국민의당까지 포함한 '야권단일후보'로 오인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인천 남구을 안귀옥 국민의당 후보가 제기한 '야권단일후보' 현수막 철거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당시 인천 남구을 김성진 정의당 후보는 현수막에 단일화 정당 표시 없이 '야권단일후보'라고만 썼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바로 다음날 국민의당 후보가 출마한 선거구에선 '야권단일후보'란 표현 자체를 쓸 수 없고 단일화한 정당 이름을 반드시 함께 표기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다만 선관위는 이를 지난 5일까지 고치도록 유예하는 한편, 그 이전에 제작된 선거 공보물이나 벽보 내용은 허위 사실로 보지 않고 추가 선거비용도 모두 보전해 주기로 약속했다. 사실상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

인천시선관위도 지난 8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은 국민의당까지 야권단일후보 정당으로 표기한 한 후보자를 검찰에 고발하긴 했지만, 이는 기존 선관위 유권해석에도 어긋난다.

인천시선관위 관계자는 18일 "유예 기간인 5일 이후 '야권단일후보' 표현만으로 고발한 후보는 없다"면서 "(5일 이전 표현 관련 고발 건은) 기존 선관위 유권해석을 따랐다는 게 정상 참작되면 위법성 조각 사유가 될 수 있겠지만 최종 판단은 법원에 달렸다"고 밝혔다.

법원 "정당명 함께 표기하면 문제 없어"... '정상 참작' 가능성도

야권연대에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인천시당은 남구을 야권단일후보로 김성진 정의당 인천시당 위원장을 출마시켰다. 지난달 30일 열린 김성진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송영길 전 인천시장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위원장 등이 함께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야권연대에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인천시당은 남구을 야권단일후보로 김성진 정의당 인천시당 위원장을 출마시켰다. 지난달 30일 열린 김성진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송영길 전 인천시장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위원장 등이 함께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한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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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앞서 국민의당 빠진 '야권단일후보' 표현을 문제 삼았던 인천지법 민사21부도 단일화 정당 이름을 함께 표기한 수정 문구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인천지법은 지난 7일 나머지 국민의당 후보들이 더민주-정의당 후보 9명을 상대로 제기한 '야권단일후보' 표현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미 양당 후보들이 '야권단일후보' 대신 '단일후보(더불어민주당+정의당)'나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단일화 후보자' 등으로 수정해 쓰고 있어 선거 공정성을 해치거나 국민의당 후보에게 손해를 끼칠 우려가 적다고 봤다. "위 표현을 접하는 일반 유권자들이 주요 야당인 국민의당을 포함한 야권의 유일한 후보자 내지는 야권을 대표하는 정당한 후보자로 오인할 개연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천지역 13개 선거구 가운데 홍영표(부평을), 송영길(계양을), 신동근(서구을), 박남춘(남동갑), 박찬대(연수갑), 유동수(계양갑), 윤관석(남동을) 등 모두 7명이 당선한 더불어민주당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 후보들이 지난 11일 홍영표, 송영길, 신동근, 박남춘 후보 등을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각각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더민주 인천시당 관계자는 "당선자들은 미리 선관위 유권해석을 받아 '야권단일후보'란 표현을 썼고, 이달 초 달라진 선관위 해석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단일화 후보' 등으로 모두 바꿨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 문제가 될 건 없다"면서 "검찰에서 이 문제로 당선 무효형까지 몰고 간다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대비해 시당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기로 하고 법률 대응팀도 꾸렸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성산 노회찬 정의당 당선자도 지난 2일 '야권단일후보' 표현 때문에 강기윤 새누리당 후보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지만, 역시 선관위 지침에 따라 홍보물 내용을 모두 고쳤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이제 공은 선관위를 떠나 검찰로 넘어갔다. 중앙선관위의 '오판'이 초래한 '야권단일후보' 허위 사실 공표 논란이 실제 당선 무효로까지 이어진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야당 당선자들이 아니라 이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이다. 앞으로 검찰 기소 여부와 사법부 판결에 따라 정부와 선관위를 상대로 한 줄소송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태그:#야권단일후보,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 #노회찬,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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