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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6일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4개 면을 털어 김영란법의 모호함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6일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4개 면을 털어 김영란법의 모호함을 비판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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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이 '김영란법'에서 자유롭지 않다.'

'농수축산물, 화훼농가 살리기'만으로는 부족했을까? <동아일보>가 이른바 '김영란법 공포감' 만들기에 나섰다. <동아>는 6일 1면 머리기사(김영란법, 너무 큰 그물… 구멍은 숭숭)를 비롯해 4개면에 걸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기획 기사에서 '걸면 걸리는' 법 규정의 모호함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부정부패 방지라는 법 취지는 좋지만 법 적용 대상과 기준이 모호해 모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마이팩트>는 <동아>에서 제시한 모호한 법 적용 사례들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지 검증했다.

대학병원과 일반병원 의사 스테이크 식사도 차별?

제약회사 주최 학술포럼 만찬에 참석한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5만 원짜리 스테이크 정식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사는 2만9000원짜리 비빔밥 정식이 나온다.

<동아>는 대학병원 의사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지만, 삼성서울병원처럼 공익재단에서 운영하는 일반 병원은 대상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 관련자(제약회사)가 제공하는 식사는 3만 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여기까지는 <동아> 지적이 맞다.

그런데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날 오후 보도 해명 자료에서 "학술포럼 만찬이 법 제8조 제3항 제6호의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가격을 차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실제 김영란법에는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의 금품 등"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직무 관련자가 주최하는 행사라도 학술포럼처럼 공식적인 행사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식사는 1인당 3만 원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행사라도 <동아> 보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주최쪽에선 모든 의사에게 똑같이 2만 9천 원짜리 식사를 제공한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번째 사례는 '대체로 거짓'.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안 공청회'가 5월 24일 오후 국민권익위 주최로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중앙우체국)에서 열렸다.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안 공청회'가 5월 24일 오후 국민권익위 주최로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중앙우체국)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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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먹은 식사값은 무조건 1/N로 계산한다?

정부에서 연구용역을 의뢰한 기업체 식사 접대 자리에서 공무원은 5만 원짜리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었지만, 기업체 직원이 9000원짜리 감자 수프를 먹어 2인 식사비 상한선 6만 원을 넘지 않아 과태료 대상이 아니다
대기업 홍보팀 직원과 기자가 저녁 식사를 하는데 2만8천 원짜리 요리와 5만 원어치 술을 시켜 상한선을 넘었지만, 기자는 술을 안 마셨기 때문에 1만4000원 접대만 받았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사례는 서로 상반된 경우다. 공직자와 언론인은 직무 관련자에게 1인당 3만 원이 넘는 식사 대접을 받을 수 없고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할 경우 1/N로 계산한다.

하지만 권익위는 "공직자 등이 소비한 비용과 제공자가 소비한 비용을 가려낼 수 있는 경우에는 공직자 등이 소비한 비용이 수수 가액"이라고 밝혔다. 가려낼 수 없을 때만 1/N로 나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 5만 원짜리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은 공무원은 명백한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다만 술을 안 마셨다고 주장하는 기자는 이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술도 안 마시는 기자에게 술자리를 권하는 홍보팀 직원이 과연 있을까? 이번 사례도 '대체로 거짓'.


같은 반 생일파티에 초대된 '언론인' 학부모도 밥값 계산?

학부모가 자녀 생일에 선생님과 자녀 친구 학부모들을 무작위로 초대해 참치회, 랍스터 등 비싼 음식을 대접했다.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선생님은 물론, 학부모 가운데 언론인도 자신의 밥값을 따져야 한다.
전형적인 '김영란법 공포감' 조성 사례다.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공무원이 아니라도 누구든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유포한다.

물론 교사는 학부모가 직무 관련자여서 생일 음식처럼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도 1회 3만 원을 넘어선 안 된다. 하지만 무작위로 초대한 같은 반 학부모들 가운데 공무원이나 언론인이 있다고 해도 초대한 학부모와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권익위 관계자는 "같은 반 학부모를 무작위로 초대했다면 (언론인 등이 포함돼 있어도) 직무 관련 접대 의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다만 처음엔 모르고 갔더라도 서로 직무 관련자인 걸 알았다면 신고 대상"이라고 밝혔다.

공무원 외부 강의에서 먹은 뷔페도 사례금에 포함?

공무원이 외부 강의를 나갔을 때 행사장에서 제공받은 뷔페 음식 가격도 강의료에 합산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공무원이 외부 강의를 나갈 경우 일정 금액이 넘는 사례금을 받아선 안 된다. 하지만 외부강의 사례금에는 강의료, 원고료 등만 들어가고 식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권익위는 "(외부 강의에서) 제공받은 식사는 법 제10조(외부강의등의 사례금 수수 제한)가 아니라 법 제8조(수수 금지 금품 등)에 의해 규율되므로 직무관련성이 있는지, 예외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앞서 사례로 든 의사들 학술포럼처럼 외부 강의에서 제공된 뷔페도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음식물"이라고 본다면, 김영란법 적용 예외 대상이다.

민간인 사찰에 악용? '김영란법 공포감' 부풀리는 까닭

모든 법이 그렇듯 '김영란법'도 완전하지는 않다. 여러 가지 허점과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어서 법 시행 과정에서 조금씩 고쳐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우리 사회에 필요한 법인지, 불필요한 법인지 따지는 게 더 중요하다. <동아>는 "김영란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된다'면서 여러가지 '모호한 사례'를 들었지만 대부분 법률 유권해석만으로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결코 '모호하지 않은'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동아>를 비롯한 보수 언론에서 유독 '김영란법'의 부작용과 모호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겠다는 법에 (공직자가 아닌) '언론인'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동아> 자신도 대기업 홍보팀 직원의 기자 술 접대 사례를 직접 언급했고, 학술포럼처럼 고급 호텔에서 열리는 각종 기자간담회와 해외 공짜 취재 관행도 앞으로 '김영란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동아>는 김영란법이 수사기관의 '민간인 사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과거 MB정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국군 기무사의 시민단체 활동가 불법 감시 등을 사례로 제시한다.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정작 과거 공권력의 민간인 사찰을 앞장서 고발했던 진보 매체가 김영란법에 우호적이고, 당시 공권력 편에서 민간인 사찰을 외면했던 보수 언론이 김영란법에 더 비판적인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태그:#김영란법,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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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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