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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딸에게 건네주는 손 때 묻은 책>이다. 자칫 '어른여자사람'이 '청소년여자사람'에게 건네는 '설교'나 '잔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장담컨대 그건 아니다.

이 집 엄마와 딸 사이에는 대화의 경계가 없다?

우선 엄마인 저자 김항심과 딸인 태은 양과의 평소 관계가 그걸 말해준다. "우리 사이에는 대화의 경계가 없다. 죽이 잘 맞는 친구"라고 저자가 고백한다. 딸은 "며칠 엄마랑 이야기를 못해서 입에 가시가 돋는 줄 알았어"라고 맞장구친다.

"(엄마!)아빠가 첫사랑이야?"
"그럴 리가! 엄마를 무시하는 거냐?"
"그렇지?"
"엄마에게도 아픈 사랑의 추억이 있지."

이게 저자와 딸의 대화다. 저자는 딸에게 자신의 '첫사랑 실패담'도 들려준다. 사실 "엄마를 무시하는 거냐?"란 저자의 말이 우스워, 책을 보다가 뿜었다. 하하하하.

태은 양이 엄마에게 "키스하는 느낌이 어때?" 묻는 장면은 리얼리티의 최고봉이다. 저자는 딸에게 "성행위와 성관계의 차이점, 여성의 오르가슴" 등을 알뜰하게 알려준다. "콘돔 쓰자는 말을 하기가 망설여지는 (성)관계라면 시작도 하지 않기를 부탁"한다. 저자의 직업이 '성교육 강사'다. "오로지 여성을 육체적 대상으로 보는 남자를 조심하라"는 엄마의 당부였을 터.

아! 엄마가 오히려 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니?

<딸에게 건네주는 손 때 묻은 책> 김항심 글, 내일을여는책 펴냄,
▲ 책표지 <딸에게 건네주는 손 때 묻은 책> 김항심 글, 내일을여는책 펴냄,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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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잔소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잔소리란 내가 들을 맘이 없는데도, 내게 들려오는 일방적인 소리'를 말하지 않던가.

이 책은 '엄마의 느낌',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엄마만의 느낌'을 딸에게 진솔하게 들려준다. 잔소리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솔직하게 서로 소통한다. 오히려 저자가 딸에게 배운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자가 딸에게 이렇게 고백하는 장면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엄마, 어젯밤에 술 취해서 한 말 기억나?/"
"무슨 말?"
"엄마가 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댔어."
"너 같은 사람?"
"응, 엄마가 세상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멋있는 사람이 나라던데?"

이러기 정말 쉽지 않다. 좋겠다, 저자는. 저렇게 훌륭한 딸을 뒀어. 아니지 좋겠다, 태은 양은. 저렇게 훌륭한 엄마를 뒀어. 참 바람직한 모녀다.

"엄마가 읽은 책은 모두 물려 달라"는 딸

이 책은 사실 지루할 새가 없다. 우선 한 꼭지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짧다. 그렇게 느낀 건 한 꼭지의 길이보다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는 걸 다 읽고 나서 알았다.

각 꼭지의 구성은 '엄마가 딸에게 주는 편지(2~3쪽), 엄마가 건네는 책 소개(1쪽), 엄마가 해당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문장(1~2쪽)' 등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간접 독서경험과 함께, 또 다른 책을 소개받는 즐거움도 있다.

사실 엄마가 밑줄 친 책을 딸이 또 본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이 집 딸은 "엄마가 읽은 책을 모두 물려 달라"고하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딸에게 건네주는 엄마의 손 때 묻은 책'이란 제목은 빈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앞에서 차례대로 읽어도 좋고, 아무데나 펼쳐서 맘이 가는대로 읽어도 좋다. 모든 꼭지의 입구에 있는 '딸과 엄마의 4줄짜리 간략한 대화'는, 사실 본문보다 더 재미있다.

"내가 줄 그어가며 읽은 책을 물려준다면 아이에게 큰 힘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아이에게 물려줄 '금수저'는 없어도 '책수저'를 물려준다면~"이란 저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따스한 책이다. '엄마가 딸에게 주는 사랑'인데, 어찌 따스하지 않으랴.

이 책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는 책

이 책을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책이라거나, 엄마(아빠)가 딸에게 선물해도 좋은 책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선물해도 좋은 책이다. '책읽기와 글쓰기, 의사소통방법,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방법, 다이어트 철학'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다.

심리학자들은 '내재적 과거아'가 우리와 항상 공존한다고 말한다. 영어로 말하면 'inner child', 즉 '우리 안에 있는 어린아이'란 뜻이다. 그렇다. '상처 받고, 유치하고, 아프고, 혼돈스럽고, 아직 여물지 못한 어린 나'가 우리 모두의 속에 있다.

이런 '어린 나'에게 '나 자신'이 선물해서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도 딸에게 "태은아! 마흔 넘어 살고 있는 엄마도 너와 다르지 않게 여전히 헤매고 있고, 이것저것 재고 있어"라고 고백한다. 이 책으로 인해 딸(자녀)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재개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 책 말미에 "중년의 엄마와 청년의 딸이 읽기를 바란다. 먼저 읽고 딸에게 건네주는 아빠가 있다면 백점"이라고 저자가 말했다.


딸에게 건네주는 손때 묻은 책 - 딸들의 삶을 당당하게 세워 주는 엄마의 책읽기 레시피

김항심 지음, 내일을여는책(2016)


태그:#김항심, #내일을여는책, #딸, #책, #딸에게 건네주는 손 때 묻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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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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