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담령이라는 사람이 흡곡현의 현령이 되어 해변 어부의 집에 묵었다. 어부에게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 물어보니 '낚시를 하다 인어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그중 둘은 창에 찔려 죽었고 나머지 넷은 살아있습니다' 하였다. (중략) 담령이 가련하게 여겨 어부에게 놓아주자 청하자 어부가 아까워하며 '인어 기름은 품질이 좋아 고래 기름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담령이 어부에게 인어를 빼앗아 바다로 돌려보내니 그들은 마치 거북이나 자라가 유영하는 것처럼 헤엄쳐 갔다."

<푸른 바다의 전설>(아래 <푸른 바다>)의 모티브가 된 조선 시대 설화집 <어우야담> 인어 편의 내용이다. 담령(이민호 분)과 세화(전지현 분)의 전생 이야기와, 허준재(이민호 분)와 심청(전지현 분)의 현생 이야기가 맞물려 진행되는 <푸른 바다>에서 전생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어우야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안데르센 아닌, 우리의 인어 이야기

 SBS <푸른 바다의 전설> 한 장면.

SBS <푸른 바다의 전설> 한 장면. ⓒ SBS


많은 이들이 '인어'하면 가장 먼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어우야담> 외에도 우리 설화 곳곳에 인어의 흔적이 남아있다. 인어의 눈물이 진주가 된다든지, 인간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던 선한 인어의 모습 등 세화와 심청으로 연결되는 <푸른 바다> 속 인어의 모습은 안데르센의 인어가 아닌, 우리 설화 속에 등장하는 인어의 전설을 바탕으로 탄생한 '박지은만의 인어'다. 하지만 <푸른 바다>는 첫 회부터 때아닌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여러 장면이 인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플래쉬>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1984년 개봉한 영화 <스플래쉬>는 바다에 빠진 알렌(톰 행크스)을 인어(대릴 한나)가 구해주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된 인어가 알렌을 찾아 뉴욕으로 오게 되면서 펼쳐지는 로맨스를 그린 코미디물이다. 단지 인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표절'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두 작품의 인어는 모두 사랑을 찾아 먼 거리에서 뉴욕(스플래쉬)과 서울(푸른 바다)까지 왔다는 점, 인간의 언어를 TV(스플래쉬)와 동영상(푸른 바다)을 통해 배웠다는 점, 어릴 때 바다에 빠진 남자 주인공을 구해주며 시작된 인연, 매디슨-심청이라는 익숙하지만 코믹한 이름을 갖게 되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

<스플래쉬>의 인어와 <푸른 바다>의 인어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는 <푸른 바다>가 <스플래쉬>를 표절했다기보다, 왕자를 사랑해 기꺼이 물거품이 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동물과 함께 자라 인간의 예절도 언어도 모르고 동물적 본능만 있는 <정글북>의 모글리를 베이스로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극 중 손으로 게걸스럽게 파스타를 먹는 인어에게 "늑대 소녀야?"라는 허준재의 대사를 보면 박지은 작가가 심청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모글리를 참조했음을 알 수 있다.

표절? 오마주?

 신호등을 처음 본 두 인어의 반응을 두고 표절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신호등을 처음 본 두 인어의 반응을 두고 표절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 SBS, 론 하워드


하지만 박지은 작가가 <스플래쉬>의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푸른 바다> 곳곳에 <스플래쉬> 오마주(Hommage, 다른 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서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일)인 듯한 장면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신호등을 보고 '예쁘다'고 감탄하는 매디슨과 신호등 속 그림을 흉내 내는 심청, 헤어졌다 쇼핑몰에서 재회하게 되는 두 사람, 알렌/허준재 모르게 혼자 TV를 보고 언어를 배운 매디슨/심청, 알렌/허준재가 다른 이에게 매디슨/심청이 '말을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갑자기 말문을 터트리는 장면, 이후 드라마에 푹 빠진 매디슨과 심청 등이다.

이 같은 유사성이 있음에도 이를 표절보다 오마주에 가깝다고 보는 이유는, 신호등, 쇼핑몰, TV 등 평범한 장치나 장소 등을 통해 <스플래쉬>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스플래쉬>의 대표 장면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들은 전체 스토리에 영향을 미친다기보다, 순진하고 천진한 인어의 특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됐다. <스플래쉬>를 연상시키지 않고도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계속 진화한다

 <인어공주>와 영화 <스플래쉬>.

이야기는 계속 진화한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디즈니의 <인어공주>로 진화했듯, <어우야담>은 <푸른 바다의 전설>로 진화 중이다. ⓒ 월트디즈니, 론 하워드


"인어공주는 다시 한번 희미해져 가는 눈으로 왕자를 바라보고는 바다로 몸을 던졌어요. 그리고 자기 몸이 거품으로 변해가는 걸 느꼈어요."

8일 방송된 <푸른 바다> 8회. 심청은 <인어공주> 동화책의 결말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 <인어공주>의 인어는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꿔 왕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용기 있게 나서지도 못했다. 그저 왕자의 행복을 위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스플래쉬> 매디슨과 디즈니 <인어공주>의 애리얼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게는 없는 발랄함과 용기를 가졌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를 발전시켜 새로운 인어를 만든 것이다.

박지은 작가의 세화와 심청이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인어공주> <스플래쉬> 등 알려진 인어 이야기에 더해,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각지에서 내려오는 인어 이야기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계속 진화한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디즈니의 <인어공주>로 진화했듯, <어우야담>은 <푸른 바다의 전설>로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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