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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이 말은 가톨릭 교회에서 미사가 마무리됐다는 것을 뜻한다. 미사는 스스로 죄를 짊어지고 죽음을 받아들인 예수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신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에 들어와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고 평화와 사랑을 나누며 인간 사회의 여러 갈등들을 기도를 통해 인식하고 극복하려 노력한다.

가톨릭의 미사는 대략 1시간 정도다. 그 1시간의 미사를 마치며 복음을 전하자는 인사를 하는데, 신자들은 고개를 숙이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가톨릭에서는 이렇게 미사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파견'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일상으로 '파견'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죄를 짓고 일요일에 성당으로 돌아와 고작 그 1시간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이 신앙심의 전부라면 복음을 전하자는 그 인사가 다 무슨 소용일까.

"요새는... 일반 여자들이 더 술집 여자 같다"

성탄절인 지난 25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신도들이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성탄미사 행렬 성탄절인 지난 25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신도들이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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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4일, 명동성당 성가대의 지휘자가 성가 연습 중에 '소리를 예쁘게 내야 한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요새는 술집 여자가 일반 여자들보다 더 고상하고 일반 여자들이 더 술집 여자 같다."
"술집에 가본 적 있냐고? 있다. 우리는 갈 수밖에 없다. 업무상 주로 접대를 하는 쪽보다는 받는 경우가 많다."

이 발언을 들은 명동성당 성가대 단원 한 명이 이메일을 통해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며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의견을 용납하신다면 향후 이런 말씀을 주의하시겠다고 연습시간 중 한 번 언급해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발언에 문제가 있으니 주의를 부탁한다는 정중한 메일에 해당 지휘자가 보낸 답장은 놀랍게도 다섯 글자였다.

"할 말 없어요."

지휘자의 발언, 심각한 문제 두 가지

그렇게 이 발언은 <연합뉴스> 등을 통해 기사화됐다. 문제제기를 했던 단원은 가톨릭 교회의 보수성과 답답한 싸움을 해야 했다. 결과를 보면 그 싸움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단원은 성가대에서 나와야 했고 성희롱 및 여성혐오 발언을 한 지휘자는 명동성당에서 계속 지휘를 하게 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성당 측은 이 지휘자에 "패널티(불이익)이 갔다"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내부의 일"이라는 이유로 답하지 않았다.

필자는 해당 지휘자의 해명 등을 토대로 발언의 취지를 추적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의 취지가 무엇이든 '술집 여자'와 '일반 여자'를 구분했다는 점부터 잘못이다. 둘째, 업무상의 이유로 '여자가 나와 옆에 앉아서 술을 따라주는' 술집에 드나드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라고 인식한다는 것도 잘못이다. 종교와 신앙이라는 카테고리를 빼더라도 문제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다.

성가대 지휘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1월 19일, 소리를 이해시키려고 예를 들었던 말이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에 마음 상한 분들께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초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는 성희롱·여성혐오 발언보다는 다른 부분에 사과의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입장이다.

종교와 신앙의 측면에서는 어떨까? 필자는 이런 식으로 비판하고 싶다. 1년은 52주. 가톨릭의 다른 대축일들은 일단 차치하고 52번 미사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미사 시간이 1시간 정도니, 8760시간 중 고작 60시간 정도만 깨끗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살고 남은 8700 시간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다. 과연 하느님은 이런 이들을 좋아하실까?

종교 집단도 어차피 인간이 모이는 '사회'다. 사회는 언제나 이런 저런, 크고 작은 문제와 갈등을 빚어낸다. 진짜 문제는 이런 문제나 갈등을 마주한 종교 집단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있다. 이번 문제를 놓고 명동성당이 보인 태도는 폐쇄적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해당 성가대를 지도하는 박아무개 신부는 문제를 제기한 단원을 불러 "다른 단원은 불편해하지 않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일을 전체 문제로 확대할 이유가 없는데도 생각 없이 일을 처리했다"라고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로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됐는가

그들의 폐쇄성은 성희롱을 '주관적인 일'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의 폐쇄성은 성희롱을 '주관적인 일'로 만들어버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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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묻고 싶다. 지도신부와 상의를 했으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지를 먼저 묻고 싶고, 과연 이것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일, 교회 일부의 일일까 묻고 싶다. 숱하게 죄를 짓다 딱 1시간 동안 고해하고 기도하면 그만인가?

종교단체들이 내부 문제에 대해 이런 식의 폐쇄적 태도로 일관하는 이유는 문제가 밖으로 향해 불거질수록 종교 공동체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의 공론화 자체를 꺼리는 것이다. 때문에 지휘자의 발언을 문제삼고 공론화한 단원은 단체 내에서도 각종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성가대로부터 휴단 권고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성가대 복귀 시엔 오디션을 다시 봐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는 사실상 퇴단 권고로 볼 수 있다.

성희롱·여성혐오 발언을 했던 지휘자는 명동성당 성가대에 남았다. 그리고 그 발언에 대해정중하게 사과를 요구한 단원은 성가대를 떠났다. 사건을 밖에서 바라보며, 지난 성탄 미사에서도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하자'는 인사에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답했을 명동성당과 박아무개 신부, 성가대 지휘자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파견'돼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됐는가.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성경 구절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보았다, 공정의 자리에 불의가 있음을, 정의의 자리에 불의가 있음을."<코헬렛 3장 7절, 16절>


태그:#크리스마스, #명동성당, #여성혐오, #성희롱, #성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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