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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8일, 아침부터 전주에는 비가 내렸다. 쌀쌀한 초가을을 맞이한 전주의 지방법원. 이곳에서 한 살인 사건에 대한 재심의 결론이 내려졌다. 1999년에 이미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상태에서 이루어진 17년 만의 재심이었다. 법정 바깥에서 담당 변호사는 빗물과 눈물이 구분되지 않는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 이후 17년 만에 이루어진 재심은 전북 삼례에서 있었던 강도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슈퍼에 쳐들어가 할머니를 살해하고 돈을 빼앗았다는 죄로 감옥에 끌려간 지적장애인 3인에 대한 재심이었다. 재심의 결론은 무죄. 이른바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사건>의 결말이었다.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서 감옥에 끌려가고 인생을 허비한 재심 당사자 세 명은 사회에서 소외된,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이들이었다. 살인범으로 몰린 세 명 중 강인구는 한글도 모르는 지적장애인 아버지와 함께 살아간,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지적장애인이었다. 최대열은 하반신 마비 1급 장애인인 어머니와 척추장애 5급인 장애인 아버지를 모시며 건설 현장에서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었다. 임명선의 어머니는 임명선이 교도소에 간 이후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으며, 그는 교도소에 갇혀 있느라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들의 곁에 한 변호사가 있었다. 경찰도 검찰도, 심지어 법원마저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사회에서 내던져진 사람들의 변호사가 되어, 17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누명을 벗겨준 변호사가 있었다. 청구도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어려운 형사 재심 사건을 맡아서 해결하는 <우리들의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였다.

1999년 2월 6일, 전북 삼례의 나라슈퍼에 강도가 들이닥친다. 이들은 현금을 빼앗고 잠자던 유 씨 할머니의 입을 청테이프로 막아 질식사시킨다. 피해자 최성자 씨는 경상도 말씨를 쓰는 20대 남성이 끼여 있는 3인조 강도였다고 증언했다. 이윽고 경찰은 세 명의 범인을 잡아들인다. 그런데 이때부터 뭔가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경찰은 삼례 토박이인 지적장애인 세 명을 범인으로 잡아들인다. 경상도 말씨를 썼다는 증언을 무시한 것이다. 지적장애인 세 명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데다가 사실상 경찰 감독 아래 연기를 했다. 현장검증 영상은 이들의 자백이 진실한 것인지 의심케했다.

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겁먹은 얼굴로 경찰이 지시하는 대로 방문을 열고, 라이터 불을 켜고 있습니다. "너는 왜 안 앉아? 앉아, 새끼야 빨리. 야 이 씨발놈아, 앉아." 욕설이 난무합니다. 게다가 피의자를 폭행까지 합니다.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니 어디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경찰들은 그게 엄청 짜증나는 모양입니다.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한 대로 해. 찢지 말고 그대로 입에다 대. 할머니 입에다 감았잖아, 새끼야!" 그러자 옆에 있던 경찰이 웃으면서 "네가 감독이냐! 그럽니다. -96P

강압에 의한 '삼례 3인조'의 자백은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훔쳐간 패물의 처리 과정도, 훔쳐간 돈의 액수도, 피해자를 위협한 무기도 계속 오락가락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굉장히 이상한 사건이었다.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가 있었으나 묵살되었고, 1999년 10월 22일 대법원에서 삼례 3인조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된다. 이후 부산 지검에서는 진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례 사건의 진짜 범인들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자백한다. 그런데 진범의 자백 이후 전주 지검으로 사건이 넘어가고, 전주 지검에서는 진범을 무혐의 결정한다. 그리고 삼례 3인조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삼례 3인조는 그야말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그들의 부모는 장애인이었고, 사회는커녕 가족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이들에게 "아이큐는 낮아도 이들에게는 특별한 범죄적 디엔에이가 있다."고 말했다는데,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들의 변호를 맡아 재심을 청구했다. 그의 노력 끝에, 2016년 10월 28일 재심 무죄가 선고된다. 삼례 3인조는 자신들의 누명을 벗게된 것이다. '형사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이들의 누명 벗겨준 변호사,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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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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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변호사는 독특한 변호사다. 형사 재심 사건을 맡기 때문이다. 재심 사건은 이미 확정된 판결을 다시 뒤집는 재판이다. 베테랑 변호사들도 꺼리는 사건이다. 이미 확정된 재판을 뒤집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재심을 돕는 기관도 없고, 당사자나 변호사가 직접 증거를 찾으러 다녀야 하는데 이미 증거가 손실된 경우가 많다. 어렵게 찾은 증거를 법원에 제출해도 법원에서 재심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시간도 5년 이상 걸리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 당사자는 물론 변호사도 정신적으로 탈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재심 사건을 맡아서 해결해왔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사건>뿐 아니라, <익산 택시 기사 살인 사건>,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의 재심도 그가 무죄를 받아낸 사건들이다. 어마어마한 사건을 맡아서 해결해온 그지만, 그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퍽 솔직하고, 소박한 맛이 있다. 군대 선임을 따라하다가 사법시험을 쳤다고 한다.

박준영 변호사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술과 노름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고, 노화중학교에 수석 입학했던 똘똘한 아이 박준영은 점점 엇나갔다. 술 먹고 놀고 담배도 피우고, 공부는 그만뒀다. 수학 점수를 8점 맞기도 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새끼 웨이터'일을 하거나 식당 서빙, 분식집 배달까지 별의 별 일을 했다. 3년 동안 무단결석이 100일이 넘었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라는 아버지의 말에 고등학교는 졸업했다.

생활기록부에 '근면 성실하나 준법성이 요구됨'이라고 적힐 정도의 생활을 보냈으니, '비행 청소년'의 삶을 살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 덕분에 그는 가출 청소년이나 노숙자 사건을 편견 없이, 낙인찍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살던 그는 우연히 군대에서 만난 선임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5년 만에 합격했지만, 특별한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닌 고졸이었고, 그렇다고 무슨 끈이나 연줄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다가, 전남의 작은 섬 출신이었다. 결국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에 연고가 전혀 없는 수원에 가게 되었다.

청소년기 방황 이후 사법시험 합격

당시만 해도 국선 변호하려는 변호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사람 대하기도 힘든데다가 어려운 사건도 많았기 때문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살 길은 국선밖에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국선 사건을 처리했다고 한다. 그는 3, 4년 동안 명절 때 고향에도 가지 않으며 열심히 사건을 맡았다.

그렇게 맡은 사건 중 하나가 변호사 활동의 분기점이 된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이었다.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여자아이가 고등학교 화단에서 발견됐고, 범인으로 노숙인 둘과 가출 청소년 다섯이 지명된 사건이었다. 노숙인과 가출 청소년은 모두 범행을 자백한 상황이었고, 그가 가출 청소년의 재판을 변호하게 되었다. <청소년상담지원센터>의 선생님들의 열렬한 요청이 컸다.

그는 수원역에서 수원고등학교까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죽을 만큼 때렸는데도 아무도 이를 모르기는 어려웠음을 지적한다. 1심은 국선 변호료를 받았지만 2심, 3심은 무료로 했고 결국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따냈다. 가출 청소년 사건은 해결했지만 이미 확정된 노숙인 사건이 남아 있었다.

주요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는 노숙인에다가, 지적장애인이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자백에만 의존해 수사했고, 기소까지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했던 노숙인은 무섭게 추궁하는 형사들에게 겁을 집어먹었고, 때리는 걸 본 사람이 있다는 말에 주눅이 들어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틀 전에 수원역에서 때린 여성을 수원고등학교에서 숨진 여자아이로 착각하고 사건 당일에는 수원고등학교에 가지도 않았는데 살인 혐의를 인정해 버렸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던 노숙인이 경찰이 하는 말의 비논리성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했습니다. -83P

지적장애가 있는 노숙인들은 주눅이 들어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자백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가출 청소년에 이어서 노숙인들의 변호를 맡아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데 성공한다. 누명을 쓴 노숙인들은 처음엔 뭔가를 진행하는 것에 겁을 먹어 재심 청구에 소극적이었지만, 박준영 변호사의 설득에 재심을 청구하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익산 택시 기사 살인 사건> 역시 그가 재심을 담당한 사건이다.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누명을 쓴 15세 소년의 사건이었다. 티켓 다방에서 일하던 소년은 경찰의 강압에 자백했다가 징역형을 살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 사건 역시 박준영 변호사의 노력으로 재심에서 무죄로 결론났다.

그렇지만, 이런 변호사로서의 활약과는 별개로 그의 재정 상황은 악화되어갔다. 박준영 변호사는 삼례 사건의 변호를 무료로 진행했다.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의 변호 역시 2심과 3심은 무료로 진행했다. 그리고 스토리펀딩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으로 모은 돈도 우선 삼례 3인조에게 챙겨줬다. 심지어 실업 급여 신청도 도와주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사건을 수임하고 그 대가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저도 돈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도리어 제가 돈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맡고 있는 재심 사건들의 의뢰인들은 모두 후자에 속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돈 주지 말라는 사람들 이야기 듣기 싫습니다. 자립하게 도와줘야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 듣지 않으렵니다. 사지 멀쩡한 사람도 자립하기 힘든 세상인데 어지적장애가 있고 살인 누명 전과까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립을 합니까? -202P

이런 그의 노력을 박상규 기자가 취재하며 사람들에게 알렸다. 국민들은 박준영 변호사의 변론과 억울한 사건들이 재심에서 무죄로 바뀌는 것을 보며 감격했다. 그가 진행한 스토리펀딩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의 목표액은 1억원이었지만, 사람들의 열렬한 참여에 힘입어 모금액이 5억 6천만원을 돌파하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에는 억울한 의뢰인이 많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지만, 아무리 뛰어나도 그 혼자서 해결하기엔 너무나도 사건이 많다. 그는 많은 이들이 아직도 눈물을 흘려야하는 답답한 현실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서 사법 개혁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에는 재심 문제 연구회가 있다고 한다. <일본변호사연합회>에 재심 사건이 들어오면 사건의 성격, 증거 확보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심의를 거쳐 <일본변호사연합회> 이사회에서 승인을 받으면 재심을 청구한다. 이후 변호인을 선임해 주고, 변론 활동도 전개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모든 일이 언론이나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방송이 억울한 사연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가 모든 사건을 다루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사법 지원까지 담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좋은 일 했다는 칭찬을 듣는 것에 안주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더 힘을 실어 달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의 사무실엔 퇴근하는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정말로 몸이 닳도록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가 정말로 되고 싶은 변호사는 뭘까? 그는 재판을 잘하는 변호사도,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변호사도 되고 싶다고 한다. 재판을 잘해야 억울한 사람들의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고, 말 잘하고 글 잘써야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되고 싶은 변호사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변호사'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눈물은 더 많은 이 변호사, 제발 잘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변호사 - 삼례 나라슈퍼, 익산 택시 기사 살인 사건, 그리고 재심

박준영 지음, 이후(2016)


태그:#박준영, #변호사, #정의, #사법,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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