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8주기가 가까워 오지만 그가 잠들어 있는 봉하마을에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상관없이 추모객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아직까지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가벼운 걸음으로 나들이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는 이 세상에 없지만 "노무현"이란 이름은 아직 살아있다. 역대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대부분 조사에서 1등을 차지한다. 재임 기간 그렇게 그를 비난하던 국민들이 언제부터인가 노무현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방문객들을 상대로 농담처럼 말하던 그의 말이 진짜 현실이 된 것이다.

"일할 땐 욕을 그렇게 하더니 놀고 있으니까 내가 좋대요."

새벽녘 산책길에 만난 동네 주민과 이야기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
▲ 생전 봉하마을에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 새벽녘 산책길에 만난 동네 주민과 이야기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
ⓒ 노무현재단 노무현사료관

관련사진보기


"친노"라는 단어의 상징성

문재인이 정치권에 등장하면서 "친노"라는 단어는 "친문"이란 단어에 일정 부분 자리를 양보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친문"이라는 단어보다 "친노"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또한 "친노"라는 단어가 애정의 깊이도 깊고 "친노"가 아닌 사람들에게 공격당하는 경우도 아직은 더 많다. 자연인 노무현이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지만 정치인 노무현의 영향력과 "친노"라는 단어의 파급력은 아직도 살아있다.

지난 2월 10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심 대표는 참배 후 방명록에 '친노(親勞) 정부 수립하여 사람사는 세상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친노(親盧)라는 단어의 음을 차용해서 '노동자 정부'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남긴 방명록
▲ 정의당 심상정 대표 방명록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남긴 방명록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심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노 전 대통령께서 퇴임 후 쓰신 '진보의 미래'를 보면 재임 중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 비정규직 문제"라며 "장시간 일하고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안타까운 청년들의 삶, 대통령께서 못 이룬 그 꿈을 친노동자 정부를 통해 꼭 이루겠다"라고 밝혔다.

친노(親盧)와 친노(親勞)

그러자 일부 "친노"들이 발끈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고인의 방명록에 "친노"라는 단어를 이용해 말장난 같은 표현을 써야 했느냐는 비판을 하며 심상정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이승훈 PD도 심 대표를 비판했다. 이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사람들한테 건드리면 안 되는 마음속의 상처가 있는데 심상정은 노무현의 죽음이란 상처를 건드렸다"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박근혜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보다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이다. 돈과 권력 앞에 시멘트처럼 단단해지는 집단 앞에 진보는 언제나 작은 생각의 차이와 눈앞의 작은 이익 앞에 분열을 거듭하며 보수라고 부를 수 없는 집단들에게 권력을 헌납해 왔다. 인정하기 싫지만 "친노"라는 단어도 언제나 분열의 단초를 제공해 왔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친노"라는 단어로 진보는 분열되고, 야당도 분열한다. 가끔은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끼리도 "친노"라는 단어로 서로를 비난하기도 한다. 보수 집단 내에서 "친노"는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고 진보진영에서 "친노"란 단어는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왕따"인 것이다. 그런 왕따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노무현"이란 이름은 그리움의 대상이자 내 몸 안에 있는 아프고 민감한 상처이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말들과 행동이 노무현을 지지하는 "친노"에게는 발끈할 수밖에 없는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는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친노패권이라는 단어는 친문패권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민주당 내에서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고, 같은 친노라고 하는 문재인과 안희정의 지지자들은 이곳저곳에서 잡음을 내고 있다. 경쟁은 치열해야 하지만 공정해야 하며 그 경쟁이 끝난 후 상처가 없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친노"는 아프고 민감한 상처이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부터 서거 이후까지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상처가 아물 때가 되었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반론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이번 심상정 대표의 방명록에 쓴 "친노(親勞)"에 발끈하는 대응은 너무 조급해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노"들에게 부탁드린다. 조금은 쿨해야 한다. 사소한 문제에 집착해서 자기만의 울타리를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탁드린다. 남들의 민감한 상처는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 때려놓고 뭘 그리 아프냐고 호들갑이냐고 하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아직까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끝나지 않았다. 본인이 누구를 지지하든 간에 비판은 하지만 비난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만이 진보이고 나만이 진리이고 나만이 진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확인되지도 않은 과거의 사실을 굳이 들추어내어 상처를 주는 것은 공멸의 시작일 뿐이다. 경쟁은 치열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태그:#친노
댓글2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