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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신입생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과의 첫 만남은 새내기 새로 배움터(아래 새터)이다. 이름을 익히고 선배의 번호를 '따고', 술을 마시고 앞으로 대학생활을 함께할 동기들을 만난다. 새터는 꼭 가야 한다던데, 너무 중요하다던데. 왜 대부분의 신입생은 잔뜩 겁을 먹고 긴장해야 할까?

새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폭력성과 위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폭력성과 위계는 성별 차이로 인해 나타나기도 한다. 범위를 넓혀 대학 내에 존재하는 새 학기 문화를 살펴보면 여학우들에 대한 외모품평, 줄 세우기, 술자리로 이어지는 남성 중심적 문화까지 많은 사람을 배제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는 배제된 새터문화

새터 문화의 문제점은 술을 마신다는 데 있다. 현재의 술자리 문화나 회식문화를 떠올려보면 자연스럽게 사회 속의 남성 중심적 문화가 대학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새터 문화의 문제점은 술을 마신다는 데 있다. 현재의 술자리 문화나 회식문화를 떠올려보면 자연스럽게 사회 속의 남성 중심적 문화가 대학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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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의 문제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2박 3일 동안 지내면서 '술을 마신다는 것'에 있다. 술 문화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현재의 술자리 문화나 회식문화를 떠올려보면 자연스럽게 사회 속의 남성 중심적 문화가 대학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류문화에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이나 여학생에 대한 고민/성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흐름은 누군가를 항상 배제시키고 결국에는 그들을 '잘 놀지 못하는', 혹은 '공동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술자리에 등장하는 혐오발언, 선후배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위계질서는 공동체 내의 남성연대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여성주의 감수성을 '산통 깨는 이야기'로 취급하며 배척한다.

이러한 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형성되는 분위기는 어느 정도의 '재미'를 요구하고 그 결과에는 대상화되는 여학생/소수자가 있다. 실제로 새터에서 술자리 이후에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 여학우들에 대한 외모 품평, 장애인을 희화화하는 '병신샷', 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게이샷', '레즈샷'(동성끼리의 러브샷)이 만연한 것이 그 반증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학의 공동체는 알콜조/논알콜조를 나누거나 장기자랑을 하지 않을 자유를 주는 등의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전통이라는 이름을 조금만 바꿔 폭력을 모호하게 잠시 감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입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실제적 자유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입생에게 요구되는 태도나 자세도 위계질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문화를 '자연스러운 것' 혹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성차별적인 대학문화가 매년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때 배제되는 집단은 높은 확률로 여학생이고, 특히 여자 신입생들은 선배들의 잠재적 연애대상이 되거나, 성별을 지우고 남성문화에 편입할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안적인 문화를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여남이 함께 존재하는 공동체에서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감수성의 필요성에 대해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자

실제로 대학 문화 속에서의 여성주의 담론은 언제나 있었고, 2016년을 전후로 가시화가 되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사라지기 시작했던 여성주체, 여성주의 관련 공개세미나, 여학생회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고, 페미니즘 네트워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각 단위에서 여성주체를 세우고 규약을 만드는 것은 공동체를 성평등에 지향을 두고 운영하겠다는 일종의 '선언'같은 것이다.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고 무의식적인 행동들이 누군가를 상처 주는 일이 아닌지, 누군가를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어 배척하는 것이 아닌지를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계속해서 수면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성주체/여학생회를 통해 실질적인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하는 방법으로 사후처리를 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에서 새학기/새터를 맞아 배포한 '학생회를 위한 성폭력 대처 매뉴얼'과 같은 노력은 사고를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성폭력 사건이 터졌을 때 공동체 내에서 사건을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이 과정을 통해 피해를 온전히 감내해야 했던 피해자들의 고통을 나누고 공동체의 문화를 올바르게 작동시킬 수 있다. 따라서 학내 단위에서 연대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간 분리는 필수

새터를 진행하다 보면 술자리를 비롯해 여남이 함께 공간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고, 공간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따라서 몇몇 단체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같은 화장실/샤워실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여남은 신체구조가 다르고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생리하는 여학생들이 화장실을 찾아 전전하거나 편하게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 공간문제에서 더 많은 불편함을 겪는 것이 여학생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술을 마시고 같은 공간에 있게 되면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도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일을 막고 최소한의 생활공간을 보장하기 위해 공간분리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선후배가 아니라 사람-사람의 만남으로

새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새학기를 '선후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새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새학기를 '선후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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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술자리이다. 여성주체를 세우는 것도 술자리 문화 개선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선후배라는 위계에서 비롯되는 술에 대한 강요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질서를 유지한 채 행사가 계속된다면 '술 잘 먹고 재밌는 남성'이 기준이 되고 그것이 관계를 맺는 시작이자 정상성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배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술 안 먹는 테이블'의 수를 늘리고, 계속 해서 자치규약을 상기시키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선후배라는 경직된 위계에서 술을 주고 받으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간의 만남으로, 새로운 관계맺기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여성주의적 감수성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획일화된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것, '불편하다'는 사람을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것, 모두의 목소리를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화 개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계속 균열을 내자

사실 새터 문제의 대안을 내놓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면 매우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대안이란 이름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반대급부를 찾고, 균열을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고 다른 것을 계속해서 제안할 때 그 변화의 움직임이 전제되고 성평등한 문화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모색하기까지 힘든 점은 너무나 많을 것이다. 실제로 공동체 내에서 합의가 되더라도 해결이 어려운 성폭력 사건이 많음에도 학내 반발로 인해 여성주체 자체가 세워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공동체 내 여성주의 담론을 만드는 주체들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에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공동체 내에서 논의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고,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모색할 때, 우리는 대학문화를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주의 담론과 대안문화는 항상 '정도'를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난 목소리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세상을 바꿔왔듯, 우리의 목소리도 그렇게 지속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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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고학번들에게 감히 드리는 글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여성주의 교지 석순 44호 [기획] 캠퍼스 페미니즘, 토닉처럼의 글 '이 넓고 큰 고려대학교에서 나의 둥지를 찾으며' 그리고 일세의 글 '고려대, 괜찮아요?'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태그:#새터, #새학기, #대안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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