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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의 탯줄을 직접 자르고, 발도장 찍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첫째의 탯줄을 직접 자르고, 발도장 찍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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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생긴 걸 알게 된 건 1월 중반이었다. 큰 아이가 규칙적으로 밤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여유가 생기나 싶더니 우리 부부는 또 다시 임신 모드로 돌입해야 했다. 풋내기 부부가 다 그렇듯 육아 경험이 없던 우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첫째를 힘들게 키웠다. 그 고생을 해놓고도 다시 임신을 하니 주 수별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까맣게 잊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서가에 묵혀둔 임신 대백과를 펼쳐보기도 하고, 산부인과 홈페이지에 등록된 초음파 영상과 사진을 단체 대화방에 띄워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흥미로운 건 첫째 때와 달리 축하의 인사말만 쏟아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이 서른하나에 둘째라니. 빨리 고생하고 나중에 놀아."
"둘째까지 어떻게 키울래? 나는 하나로 만족하련다."


학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쁜 소식을 크게 환영하면서도, 먼저 아이들을 키운 선배들은 아련한 표정으로 위로를 건넸다. 그 표정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회식 술자리에서 선배들은 장가 안 간 후배의 손을 꼭 잡으며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해라",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진심 어린 덕담(?)을 건네곤 했는데, 덕담의 배경에는 육아의 고충과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책임감이 깔려 있었다.

옆에서 육아 경험담을 듣던 교감선생님이 '고작 둘째 가지고 뭔 호들갑이냐'고 핀잔을 주셨다. 딸 셋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신 교감선생님 말씀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멋쩍게 웃었다. 고작 둘째라, 나는 '고작'이라는 말이 한참이나 입에 맴돌았다. 아마 우리 부모님이나 장인 장모님이라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과거 세대보다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첫째를 안고 곤히 자는 아내를 보며 다른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가 백일 무렵, 아내는 가벼운 우울증을 앓았다. 아이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밤마다 칭얼대고, 삶아 빨아야 하는 아기 세탁물과 온갖 장난감들이 집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기 엄마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양이었다. 우리 부부는 먹는 시간도 줄여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지속되는 노동과 수면부족으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아."

아기를 10개월 동안 품고 있던 배에는 튼 살이 가득했고, 머릿결은 푸석했다. 무엇보다 아내를 슬프게 하는 건 이제 더 이상 당당하고 자유로웠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쁜 내 새끼지만 내 새끼가 선사하는 엄마, 아빠로서의 새 삶이 예쁘지만은 않았다. 퉁퉁 부은 아내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차올랐다. 으애앵! 아기가 깼다. 부둥켜안고 함께 울 짬도 없이, 아내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러 들어갔다. 그사이 나는 아기 용품을 소독하고, 방을 닦았다. 잠시도 쉴 수 없었던 100일 무렵이었다.

'고작 둘째'와 '무려 둘째' 사이의 간극

둘째의 초음파 사진. 출산율 1.17명의 나라에서 둘째는 희귀해져 간다.
 둘째의 초음파 사진. 출산율 1.17명의 나라에서 둘째는 희귀해져 간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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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아내가 교직에 있었던 탓에, 언제든 돌아갈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휴직 후 최초 1년간 얼마 간의 돈이 지급되었다. 본봉의 40%에 해당하는 그 돈에서 이것저것 공제한 뒤 남은 금액이 매달 17일 통장에 들어왔다. 월급날이 되면 우리는 기분전환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아내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나 육아휴직수당의 액수보다도 자기가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으며 더 행복해했다.

아내에게 일터와 사회생활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부분이었다. 만일 원하는 기간과 방식으로 휴직을 할 수 없고, 복직이 보장되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낳겠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었을까? 결코 아니었으리라 본다. 아내 없이 며칠 아이와 지내본 아빠들은 알겠지만 가사와 육아의 강도는 상상보다 훨씬 세다. 더구나 열심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고, 끝없이 일감이 쏟아진다.

만약 내가 출산이라는 이유로 오랜 시간 근무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가야 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남자인 나는 거의 그런 가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잠깐씩 아내가 자리를 비우고, 가사노동의 힘겨움이 밀려올 때가 되어서야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의 고통을 간간이 짐작할 뿐이었다.

모성애든 부성애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한 쪽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며 희생하는 삶은 슬프고 고달프다. 그런데도 선택의 여지 없이 또는 은근한 강요에 의해 경력이 단절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보았다. 이러니 '고작 둘째'가 아니라 '무려 둘째'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희생과 부담으로 점철된 육아는 고달프다

아이를 낳으면 낳기 전보다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둘째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러 산부인과에 다녀온 날, 지인 부부와 식사자리를 가졌다. 그쪽은 같은 또래인데 벌써 다섯 살, 세 살 먹은 두 딸을 키우고 있었다. 자녀교육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SBS <영재 발굴단>에 나오는 부모 소식이 화두에 올랐다. 지능지수가 상위 0.01%를 찍은 아이의 엄마 양육 태도 점수가 100점이라더라, 아빠가 95점 나오면 거의 2000명 중에 한 명이라더라 등의 말들이 오갔다.

대화 내내 평범한 아빠 둘은 뒤통수가 뜨거웠다. 방송에 출연한 부모님들이 우수한 양육 태도를 객관적으로 확인받고 얼굴 환해지는 것은 축하할 일이나, 자녀가 부모의 성적표라도 되는 양 점수를 매기고 '1등 엄마'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강조되는 화면이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아내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첫째의 아토피가 자기 탓인 것 같다고 자책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도 큰 애가 동생을 괴롭히는 게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엄마의 과실이라며 셀프 비난 타임이 시작되었다.

교육학을 석사씩이나 공부한 사람들이, 밖에서는 이성적으로 원칙에 따라 잘 살던 사람들이 자녀 문제에서는 마음이 약해져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사람 구실 하며 살려면 자녀를 어떻게든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애를 안 낳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미 낳은 입장에서는 키우는 것이 더 문제였다. 우리는 답이 나오지 않는 대화를 찝찝하게 마무리지었다.

집에 돌아와 산부인과에서 나눠준 둘째의 산모수첩을 펼쳐보았다. 이제 겨우 4cm를 넘긴 작은 꼬물이가 초음파 사진 속에서 춤추고 있었다. 아이의 심장박동 파형에 손을 대고 리듬을 느껴보니 절로 마음이 환해졌다. 아이가 나오면 우리 부부에게 다가올 지옥 같은 육아의 고통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이 기쁨을 세상의 어느 부모가 누리고 싶지 않겠냐마는 그러기 힘든 사정을 알기에 문득 씁쓸해졌다. 아래로 추락하는 출산율 그래프는 정말 슬픈 그림이다.


태그:#저출산, #육아, #출산,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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