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오마이스타는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리더의 조건'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영화 <히든피겨스> 포스터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이겨낸 세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 영화 <히든피겨스> 포스터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이겨낸 세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미국 나사(NASA)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숨겨진 인물들'(Hidden Figures)에 대한 이야기다. 그 숨겨진 인물들은 흑인 그것도 여성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인 1960년대 미국 버지니아 주. 당시엔 백인만 교육받는 학교, 백인만 치료하는 병원은 물론, 버스 안 좌석 흑백 분리, 음수대 흑백 분리, 화장실 흑백 분리, 도서관 흑백 분리 등 별의별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성별 차별도 존재했다.

하지만 인류를 우주로 쏘아 보낼 정도의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나사라면 어땠을까. 최고의 두뇌집단이 모인다는 그 곳에서도 설마 구시대적인 인종차별이나 성별차별이 자행되었을까? 실망스럽게도 영화 속에 묘사된 1960년대 나사는 실력만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선진적인 기관이 아니었다.

미처 몰랐던 특권

'나사는 다를 줄 알았는데...' 두뇌가 우수하다고 꼭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도 이번에 뼈 아프게 배우긴 했다..

▲ '나사는 다를 줄 알았는데...' 두뇌가 우수하다고 꼭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도 이번에 뼈 아프게 배우긴 했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사 안에서도 다양한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존재했다. 천재 수학자인 캐서린이 출근 첫 날 흑인여성이라는 이유로 청소부로 오인 받았고, 메리는 백인남성이 아니기에 엔지니어직에서 배제되었다. 실질적으로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도로시는 더는 승진할 방법이 없었다. 흑인 인력을 위한 영구관리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분리되어 있어야할 유색인종(Colored)이 백인(White)들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 일어난다. 캐서린이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되어 나사 본관에 들어섰을 때, 그녀를 괴롭힌 문제는 선임인 백인남성의 텃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실질적인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유색인종의 화장실은 800미터나 떨어진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결국 캐서린은 임계점이 올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변을 참다가 결국 터질듯 한 방광을 부여잡고 종종걸음으로 달려 유색인종 화장실로 향한다. 심지어 여성의 근무복장은 하이힐에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로 정해져 있기에 건강한 배뇨를 향한 캐서린의 여정은 더욱 힘들기만 하다.

결국 어느 비 오는 날. "어째서 자리를 40분씩이나 비우냐"는 상관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의 비난에 그녀는 복장이 터져 소리 지른다. 이 건물엔 유색인종인 자신을 위한 화장실이 없다고.

가까운 거리에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백인들은 캐서린의 문제를 인식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인에게는 별 것 아닌 일상이 흑인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것이다. 소변이 마려울 때 눌 수 있는 권리. 이 아무 것도 아닌 권리가 흑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부러운 백인들의 '특권'이었다.

노루발못뽑이 한 자루

 해리슨은 노루발못뽑이(쇠지레, 일명 빠루)를 휘둘러 유색인종 화장실 푯말을 부순다.

해리슨은 노루발못뽑이(쇠지레, 일명 빠루)를 휘둘러 유색인종 화장실 푯말을 부순다. ⓒ pixabay


팀원의 불성실함을 탓하려다 뜻밖의 사자후를 들은 팀의 리더 해리슨. 그는 이제 자신의 유능한 직원이 화장실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리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흑인으로 태어난 주제에 어디 감히 백인과 같은 화장실을 쓰길 바라냐'며 캐서린을 윽박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지금은 러시아에 대항할 유인 우주선 개발이 시급하니 너의 불편은 '나중에' 해결하자며 달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리슨은 어디선가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 쇠지레)를 구해 유색인종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흑인과 백인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힘세고 강한 노루발못뽑이를 휘둘러 유색인종 화장실 푯말을 부숴버린다. 그리고 이런 대사를 남긴다.

"이제부터 나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같은 화장실을 쓴다. (Here at NASA, we all pee the same color)"

직역하자면 "이곳 나사에선 우린 모두 같은 색의 오줌을 눈다"라는 뜻이다. 그렇게 나사에서 화장실 차별은 사라졌고 캐서린은 맘 편히 업무에 집중하게 되었다.

 히든 피겨스

"이제부터 나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같은 화장실을 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속 유색인종의 화장실처럼, 차별은 '차별받지 않는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지점에 존재한다. 백인들에겐 당연한 일상이 흑인들에게는 부러운 특권이 되듯이, 내가 누리는 평범한 삶은 누군가에겐 넘지 못할 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종교, 사상 등 도처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차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영화 속 리더 해리슨은 노루발못뽑이를 사용해 차별을 앞장서 해결했다. 사실 그는 차별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거나 차별 없는 세상을 약속하는 따뜻한 리더는 아니었다. 오히려, 최첨단 우주기술로 인류가 달에 가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 고작 화장실 따위로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상사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의 결단은 캐서린이 소변을 오래 참아 방광염에 걸릴 위험을 예방했을 뿐 아니라, 우주인이 귀환할 궤도 방정식을 구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했다. 흑인여성 캐서린에게는 타고난 천재성과 노력도 있었지만, 그녀의 활약에는 '차별금지'에 대한 리더의 결단도 작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단은 소수자 차별에 대한 근본적 처방까지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합리적이었다. 

'숨겨진 영웅'을 찾을 수 있는 리더

연일 대선주자에 대한 이슈가 생산되고, 대선주자들은 누구나 더 나은 대한민국을 약속하고 있다. 당연히 유권자들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느 곳에든 불의가 있는 한 그것은 세상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차별로 가득하다. 이 차별은 사회 곳곳에 존재해 우리 모두의 통합과 전진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마치 유리벽처럼 차별받지 않은 이에겐 보이지도 않는다. 남 몰래 발을 동동 구르며 소변을 참는 캐서린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차별로 인한 서러움과 불편함을 삼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 <히든피겨스>의 세 주인공 왼쪽부터 메리 잭슨,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 영화 <히든피겨스>의 세 주인공 왼쪽부터 메리 잭슨,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렇게 누군가 차별과 불평등에 시달릴 때,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 역시 나아가지 못할 때 이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다. 리더의 합리적 결단은 우리 사회 곳곳의 '숨겨진 인물들'(Hidden Figures)의 활약을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흑인 여성들의 활약처럼 말이다. 때문에 우리에겐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출신국가, 인종, 종교, 성적지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리더의 결단이 필요하다.

'나중에'가 아닌 바로 '지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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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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