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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 엠마(틸다 스윈튼 분)는 사랑 앞에 전율하는 딸의 모습에 잊고 있던 '진짜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다.
 <아이 엠 러브> 엠마(틸다 스윈튼 분)는 사랑 앞에 전율하는 딸의 모습에 잊고 있던 '진짜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다.
ⓒ 아이 엠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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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

이탈리아의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현대음악가 존 애덤스의 음악, 이 세상 외모가 아닌 듯한 틸다 스윈튼에 의상은 라프 시몬스가 맡아 모든 것이 우아하게 맞아 떨어지는 영화 <아이 엠 러브>. '화려하지만 억압된 삶을 살던 상류층 부인이 운명적 사랑에 빠져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다소 뻔한 스토리이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옛 이탈리아 영화의 부흥기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고전적인 아름다움으로 꽉 짜여져 신선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다.

방직공장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이탈리아 집안, 그 집안의 아들과 결혼해 고향인 러시아에서 떠나 이탈리아 상류층 사회에 편입된 엠마(틸다 스윈튼 분)는 누구보다 자신의 역할을 우아하게 수행하는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다. 남편은 자상해 보이고 대학에 들어간 아들, 딸도 잘 자랐다.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은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교양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 고전적인 화풍의 가족은 부를 일군 1대 할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그림을 그리라고 대학을 보냈더니 사진으로 전공을 바꾸고 레즈비언으로 정체성을 찾은 딸의 모습은 차라리 클리셰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우연히 딸 이바가 아들 에도에게 보낸,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 메모를 발견하고 엠마가 받는 충격은 호모포빅한 그것이나 자식을 향한 걱정이 아니라, 사랑 앞에 전율하는 딸의 모습에 잊고 있던 '진짜 감정'의 세계에 소스라치는 것에 가깝다는 점이다.

"함께라는 건 혼자라는 것만큼 좋아. 우리 강해지자... 내 모습을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건 오빠 뿐이야, 나 사실 여자를 사랑해. 그녀가 나를 사랑할지는 몰라. 하지만 그녀가 나한테 웃어준다는 것이 중요한 거야."

알기도 전에 빠져버린 '운명적 사랑'

딸의 사랑이 엠마의 마음에 어떤 물결을 일으킨 것인지, 그녀는 아들 에도의 친구이자 셰프인 안토니오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아들의 여자친구 에바의 생일파티에 출장요리를 하러 온 안토니오와 만난 엠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관객은 어떤 감정의 시작을 예감한다.

안토니오의 세계는 엠마가 살고 있는 세계와 정반대다. 시골 출신의 젊고 가난한 셰프인 그는 부르주아층의 미학과는 다른, 원초적인 미를 추구한다. 지금은 아버지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지만 휴일이면 도시와 떨어진 시골 농가에서 농장을 가꾸며 자연에서 온 재료로 요리를 한다. 언젠가는 그 농가에 레스토랑을 열어 사람들에게 자연의 맛을 전해주는 게 꿈이다. 농가에 찾아온 친구 에도에게 건네준 것은 직접 키운 가지와 엘더플라워(딱총나무 꽃) 요리다.

시어머니와 곧 며느리가 될 아들의 여자친구 에바와 함께 안토니오의 레스토랑을 찾은 엠마는 그의 요리를 먹고 강렬한 희열을 느낀다. 절인 달걀 노른자에 완두크림, 호박꽃, 새우를 곁들인 라따뚜이를 먹는 에바의 모습은 오르가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만 같다. 시어머니나 에바 따위는 안 보인 지 오래다. 그 순간 세계엔 그녀와 안토니오의 요리만이 남는다.

엠마와 안토니오는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엠마와 안토니오는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 아이 엠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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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으로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온 딸 이바는 엠마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여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준다. 예쁘다며 감탄하는 엠마는 벅찬 감정에 휩싸인다. 딸이 보여준 진실된 감정의 세계가 안토니오를 향한 감정의 씨앗을 건드리며 엠마를 겉잡을 수 없이 집어 삼키기 시작한다. 그 순간, 격렬한 사랑을 재촉이라도 하듯 화면에 비가 투두둑 떨어진다.

딸의 전시를 간다는 핑계로 운전대를 잡고 안토니오의 농가가 있는 산레모로 가는 엠마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혼란스럽다. 산레모의 길거리에서 마주친 안토니오를 쫓는 눈길은 열병으로 가득찼다. 두세 번 스치듯 보고 몇 마디 나눈 것이 다지만 본인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상대를 채 알기도 전에 엠마는 본능적으로 안토니오에게 끌리고 있다. 운명적인 사랑이란 원래 이유도 모른 채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이니까.

안토니오와 함께 농장으로 향하는 낡은 차 안, 창 밖을 스치는 거친 시골 길을 훑는 카메라는 엠마의 시선이다. 평소라면 그냥 길일 뿐인 그 길이 지금은 어떤 흥분을 가득 안고 있는지, 덜컹거리는 차에 따라 함께 흔들리는 앵글이 충분히 말하고 있다.

안토니오의 농장에서 사랑을 나누고 도시로 돌아온 그녀가 비져나오는 웃음을 막는 모습에 숨길 수 없는 사랑이 드러난다. 그 놀라움과 당황스러움과 약에라도 취한 듯한 기쁨과 달뜬 마음, 모든 것이 뒤섞인 사랑의 시작이다. 하지만 유부녀인 그녀의 사랑, 계급차를 비집고 나온 욕망이 순탄할 리 없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엠마의 아들 에도는 선량한 가치를 믿는 잘 자란 청년이지만 유약하다. 사업을 할아버지에게 넘겨 받은 아버지는 아랍의 거부에게 방직공장을 팔아 넘기려고 한다. 단순히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방직공장을 함께 해 온 직원들과의 의리, 신념, 공동체의 가치를 믿어온 에도는 고통에 빠지고 여동생 이바에게 달려간다.

"공장을 팔았어."
"그래 우리는 더 부자가 되겠네."

에도가 사다준 라뒤레의 마카롱을 먹는 이바는 행복해보인다.

"너가 행복해보이니 나도 좋다."
"행복이란 단어는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해."

여동생 이바는 에도보다 성숙한 것 같다. 자신들의 집이 부자인 것이 좋다고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사실 이 돈 많은 부르주아 층이 생활에 허덕이는 서민들보다 안 행복한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들은 행복할 기회가 더 많고, 돈이 방어막이 되니 불행에 빠질 일도 적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은 다른 사람을 상대적으로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어떡 배덕감이 들기도 한다.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틸다 스윈튼이 이해가 가면서도 그 전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느낌도 크게 안 들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교양있는 것들로 가득차있어 그곳이 감옥이더라도 모른 척 갇혀있고 싶은 감옥이다. 때문에 에도의 고뇌와 고민이야말로 부르주아 적인 것이다.

아들 에도는 고통을 친구 안토니오와도, 엄마 엠마와도 나누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 사이에 안토니오와 엄마는 모든 걸 벗어 던진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다. 안토니오의 농가에서 주로 데이트하는 그들, 예술작품으로 휩싸인 자신의 집이 아닌 안토니오의 낡은 시골농가에 가 있는 엠마는 어느때보다 편한 모습으로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한다. 명품 드레스 대신 안토니오의 낡은 옷을 빌려 입고 결혼하긴 전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머리도 짧게 잘랐다. 야외에서 풀과 꽃, 날벌레에 휩싸여 정사를 나눈다. 그러나 이 이중생활은 곧 끝난다.

사업상의 가족 만찬, 이도는 생선 스프가 나온 것을 보고 혼란에 휩싸인다. 엠마의 특제 러시아식 생선 스프, 이도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 엠마가 특별히 자주 해주던 스프다. 그리고 그날의 요리는 안토니오가 맡았다. 모든 것을 깨달은 이도는 화가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엠마가 따라가지만 엠마를 뿌리치던 이도는 발을 헛디디며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에도가 죽고 절망에 휩싸인 엠마, 절망에 휩싸여있던 그녀는 장례식을 치르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자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상 몰라. 나 안토니오를 사랑해."
"당신은 사라졌어."

비에 흠뻑 젖은 엠마가 남편에게 고백한다. 남편은 엠마가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사실 진짜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영화 제목 그대로 <아이 엠 러브> 내가 사랑이라는 말, 사랑하고 있는 내가 그대로 자아가 돼버린, 사랑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 단순한 제목이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내가 사랑이다.

[씨네밥상 레시피] 러시아식 맑은 생선 스프 우하(Ukah, 4인분 기준)

러시아식 생선 수프 우하(Ukha)
 러시아식 생선 수프 우하(Ukha)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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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쓰이는 생선스프 우하, 엠마의 고향인 러시아의 전통 음식이다. 신선한 생선과 채소만으로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우하는 어떤 생선을 쓰냐에 따라 흰 우하, 검은 우하, 붉은 우하로 분류된다. 이번 레시피에는 흰 살 생선인 가자미와 붉은살 생선인 연어를 썼으니 화이트&레드 우하가 된다.

그런데 영화에서 엠마는 사프란으로 맛을 내는 것이 포인트라고 했다. 붉은 우하에 사프란을 넣으면 수프가 금빛을 돌며 호박색 우하가 된다. 사프란은 금보다 비싼 고급 향신료이니, 이 호박색 우하는 황제의 식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었고 부르주아로 사는 엠마의 식탁에도 어울린다. 때문에 이번 레시피에도 사프란을 넣어 금빛 우하를 만들었지만, 집에 사프란이 없다면 생략해도 된다.

사프란은 남대문 수입상가나 이태원의 포리너마트 등에서 파는데 여기서 파는 것들은 가격대비 질이 별로다. 인도네시아나 동남아,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할 일이 있다면 사두면 좋다. 필자도 만들기 전에는 비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향신료의 힘인지 전혀 비리지 않고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 좋은 깊은 맛이 났다.

마지막에 넣는 딜의 향이 포인트라 웬만하면 딜은 생략하지 않는 걸 추천한다. 향신료 딜은 요즘 마트에서도 보이고 백화점 지하 식품관 등에서 구할 수 있다. 엠마처럼 고급 코스 요리로 즐길 때에는 애피타이저로 제격이지만, 이 수프만 메인으로 먹어도 좋다. 러시아식 파이를 곁들이면 좋겠지만 쉽게 구할 수 없으니 토마토를 올린 빵을 곁들이면 어울린다.

재료 : 생 가자미나 대구 등 흰살생선 400g, 생연어 300g, 감자·양파 1개씩, 샐러리 1대, 당근·레몬 ½개씩, 월계수잎 2장, 통후추 ½작은술, 딜·샤프란 약간씩, 소금 적당량

1. 흰살 생선은 내장 등을 제거해 손질한 것으로 준비해 흐르는 물에 헹군다. 양파는 껍질을 벗겨 반으로 자르고 샐러리는 큼직하게 자른다. 당근도 큼직하게 자른다.
2. 냄비에 물 2L를 붓고 양파, 샐러리, 당근, 월계수잎, 통후추를 넣어 끓인다. 끓어 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10분간 더 끓인다.
3. 육수를 끓이는 동안 감자는 껍질을 벗겨 카레에 들어가는 크기로 자른다. 샤프란은 물을 약간 부어 우러나도록 둔다.
4. 10분이 지나면 흰 살 생선을 넣어 10분간 더 끓인 뒤 생선은 건져 따로 두고 육수를 거른다. 육수를 내는 데 쓴 양파 등 채소는 모두 버리고 맑은 육수만 사용한다.
5. 맑은 육수만 모아 다시 냄비에 붓고 소금을 넣어 끓인다. 끓어 오르면 감자를 넣어 10분간 끓인다.
6.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연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넣어 5분간 더 끓인다. 그 사이 건져 둔 흰 살 생선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7. 연어가 먹기 좋게 익으면 흰 살 생선과 샤프란, 샤프란 우려낸 물을 넣고 모자란 간은 소금으로 더 해 한 번 더 끓여낸다
8. 접시에 보기 좋게 담고 딜을 흩뿌린다. 레몬을 한 조각씩 곁들여낸다. 먹기 전에 레몬즙을 뿌려 먹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



태그:#틸다 스윈튼, #아이엠러브, #스프, #이탈리아 영화, #루카 구아다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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