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당신은 뮤지션 A의 음악을 몹시 좋아한다. 그런데 당신 주위의 사람들은 A를 잘 모른다. 친구들은 낯선 A의 음악을 듣고 좋다고 말한다. 콧대가 높아진 당신은 그 친구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할 것이다. '아, 이거 A 노래야. 노래 좋지?'

음악팬들 사이에서 쓰이는 '나만 알고 싶은 가수' 라는 표현은 이런 심리에서 나오는 말이 아닐까. 일정 수준만큼의 인지도가 유지되길 원하는 심리 말이다. 왜 '일부' 음악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티스트와의 거리감', 혹은 문화적 취향에 대한 묘한 우월감 등을 주요한 원인으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명 앞에서 노래하던 가수, 슈퍼스타가 되다

나는 5년전부터 트웬티 원 파일럿츠(Twenty One Pilots)라는 미국의 2인조 밴드의 팬이었다. 그들이 발표한 앨범도 모두 가지고 있고, 공연을 직접 본 적도 있다.  'Guns For Hands'나 'Holding On To You' 등을 들어보면, 이 듀오의 음악이 정말 재미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청량한 사운드와 적당한 속도감이 귀를 사로잡는다. 보컬 타일러 조셉(Tyler Joseph)은 노래를 할 것 같은 타이밍에 랩을 하고, 랩을 할 것 같은 타이밍에 노래를 한다. 이런 식의 의외성이 그들의 음악을 매번 신선하게 만든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

트웬티 원 파일럿츠 ⓒ 워너뮤직 코리아


'이렇게 좋은 음악이 왜 아직 차트 상위권에 못 들어갔을까?' 하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트웬티 원 파일럿츠는 어엿한 슈퍼스타가 되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공연에 임했던 것이 빛을 발한 모양이다. 한 때 다섯명이 있는 무대 앞에서 노래를 했던 이들은 3개의 노래를 싱글 차트 최상위권에 올렸다. 심지어 지난 2월, 59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베스트 팝 듀오' 상까지 거머쥐면서 명성을 입증했다.

'아는 사람만 알던 가수'가 몇년만에 슈퍼스타로 올라선 것이다. 두 사람은 그래미에서 첫 수상을 했을 때 상당히 재미난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바지를 벗고 팬티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고향 오하이오에서 그래미 시상식을 보다가 언젠가 그래미를 받게 된다면 팬티 차림으로 수상 소감을 하자는 도원결의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유쾌한 성공 드라마였다.  

이 쯤 되었을 때 부러워지는 것이 있다.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성장한 이 밴드가 몇년만에 미국 전역에서 사랑받는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던 환경이다. 이들은 오하이오주에서 공연을 이어가다가 유명 레이블 '퓨얼드 바이 라멘(Fueled By Ramen)에 의해 캐스팅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에는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매체, 그리고 다양한 음악을 수용한 준비가 되어 있는 시장의 역할도 컸다.

혁오 밴드 혁오가 24일 첫 번째 정규앨범 <23>을 발표했다. 더블 타이틀곡 'TOMBOY(톰보이)'와 '가죽자켓'을 포함하여 'Burning youth(버닝 유쓰)', 'Tokyo Inn(도쿄 인)', 'Wanli万里(완리)' 등 총 12곡이 실렸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 가사로 구성된 점이 독특하다.

혁오 밴드 ⓒ 두루두루amc


무명가수는 어떻게 유명가수가 되었나

인지도가 높다고 해서 좋은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인지도가 낮다고 해서 안 좋은 음악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별개로 좋은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듣고 자신의 삶을 채우길 원한다. 그리고 아티스트는 그렇게 성공한 돈으로 더 좋은 음악과 공연을 만드는 식의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음악은 아티스트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과 만나 상호작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이 있다. 우리나라의 음악 소비 방식은 거대 음원 사이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대중들은 자신이 듣는 음악을 음원 차트에서 찾곤 한다. 1위부터 100위까지 나열된 실시간 차트가 음악을 고르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 음원 차트에서는 성공하기 좋은 음악, 혹은 대형 기획사에서 내놓은 음악만이 대우받고, 그 외의 음악은 좀처럼 잘 소개되지 못 하고 있다. 특정 가수의 순위 독점을 억제하고,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자는 명분 하에 음원 차트 개편이 시행되기도 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대중이 음악을 다양하게 소비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매체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콘서트 7080> <스페이스 공감> 등을 제외하면 공중파 프로그램 중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렵다. 2년전, <무한도전>을 통해 혁오가 유명세를 탄 이후, '위잉위잉'과 '와리가리'가 음원 차트를 평정했다. 이런 스타일의 인디 록은 당시 대중들에게는 다소 낯선 음악이었지만 대중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인디씬의 좋은 음악들은 방송에서도, 음원 차트에서도 충분히 소개받지 못했다. 기존의 매체가 음악을 대중들에게 충분히 소개하고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중의 귀를 좁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만 알고 싶은 아티스트'의 역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유명하지 않은 아티스트라도 즐겁게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바른음원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기타리스트 신대철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수들은 아직도 한 곡의 스트리밍당 0.12원 수준의 돈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창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결여된 제도다. 위에서 나열된 근본적인 문제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는 '최애가수'가 몹시 유명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명해지지 않으면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없는 대한민국이다.

 가수 이랑이 지난 2월 28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2017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수상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 트로피를 즉석 경매로 판매한 뒤 기뻐하고 있다.

가수 이랑이 지난 2월 28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2017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수상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 트로피를 즉석 경매로 판매한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얼마 전 지인의 초대를 받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상을 받는 정도의 뮤지션이 생활고를 호소하며 트로피를 50만원에 경매하는 '웃픈'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다.(물론 그녀는 돈과 명예를 챙겼다며 활짝 웃었다.) '나만 알고 싶은 가수'라는 애교는 어쩌면 이기적인 바람일 수도 있겠다.

음악 트웬티원파일럿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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