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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라고 맞이하는 듯 활짝 열려있는 상냥한 문들도 있고, 시간이 되면 열리고 또 다른 시간이 되면 사정없이 닫히는 조금 냉정한 문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은 이 세상에선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이 굳게 닫혀 있어서 알 수 없는 신비로움과 공포감까지 주는 문도 있습니다.

이지현 <문> 표지
 이지현 <문> 표지
ⓒ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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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문의 모습이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가지는 '문'에 대한 동일한 기대가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떤 문을 보든 문이 열리면 펼쳐질 그 공간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과 다를 것이라 것입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친 하루를 쉴 편안한 집이 있고, 대문을 열고 나가면 험한 세상살이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길고 긴 취준생 시절을 넘어 회사의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탄탄대로의 나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게 되지요. 굳게 닫힌 교도소 문이 열리면 죄값을 치르고 이제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됩니다. 이렇게 '문'은 지금과 다른 어떤 곳을 '꿈'꾸게 합니다.

이지현의 <문>은 이런 문들을 방긋이 열어 보여줍니다. 오래 열지 않아 거미줄이 가득 쳐진 문, 조금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꼭 열어보고 싶은 그 문을 삐끄덕 열어줍니다.

책장을 몇 장 넘기면 거리에는 모두 흑백 사람들만 분주히 움직입니다. 무엇에 화가 났는지 잔뜩 서로를 경계하며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만 같은 표정들로 거리를 걷습니다. 그 무심한 거리에 빨간 날개를 파닥이며 열심히 날아가는 모기만한 녀석이 있습니다. 혼자 색깔을 가지고 있어 흑백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작지만 눈에 쏙 들어옵니다.

이지현/ 이야기꽃
▲ <문> 내지 그림 이지현/ 이야기꽃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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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이 우리의 주인공 소년을 이끕니다. 면지에서부터 땅에 떨어진 열쇠 앞에서 오롯이 앉아 주위를 끌며 소년을 부르는 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유혹에 소년은 자석에 이끌리듯 끌려오고 합니다. 빨간 날개가 소년을 데리고 온 곳은 거미줄로 가득 덥힌 채 굳게 잠긴 '문' 앞입니다. 소년은 주워 온 열쇠를 들고 망설이다 망설이다 살며시 문을 열어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일에 두려움과 망설임을 느낍니다. 내가, 우리 가정이, 우리 동네가, 대한민국이 낡고 고루 했다면 어둡고 낡아빠진 내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찾아갈 '문'을 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가진 것들을 잃게 되면 어떻게 하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문을 어떻게 열지, 하고 주저앉아 있었겠지요. 그래서 빛을 잃고 생명력을 잃은 세상으로 주저앉아 있는 게지요.

이지현/ 이야기꽃
▲ <문> 본문 그림 이지현/ 이야기꽃
ⓒ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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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 곳은 정말 소년이 사는 곳과 다른 세상입니다. 그 곳은 색깔을 가진 세상이며 소년과 부딪힌 존재는 낯설고 이상한 모습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소년은 이 낯선 존재와 만나 잠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그 곳은 편견이 없는 곳, 소년을 반갑게 맞이하며 소풍에 초대하고 들판에서 즐겁게 어울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합니다.

문 안의 세상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녀보니 그 곳은 정말 이런 저런 문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존재들이 어울리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여행의 즐거움을 안고, 누군가는 밤의 낭만을 타고, 누군가는 하늘을 나는 기구를 타고, 또 누군가는 결혼의 신성함을 품고, 또 누군가는 책의 신비로움을 타고 그 세계로 들어 온 것입니다.

이지현/ 이야기꽃
▲ <문> 본문 그림 이지현/ 이야기꽃
ⓒ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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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문도 열지 않는다면 나는 문 없는 이 세상에 갇혀있는 무기수가 되고 말 것입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다른 문'을 열면 다른 즐거움, 다른 경험으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독신을 선택합니다. 문을 열거나, 열지 않거나 그것은 자신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도 결혼식이 열렸네요. 쪼그만 신랑과 덩치 큰 신부가 행복한 미소로 결혼을 합니다. 키 차이나 생김새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 함께 축하하고 모두 함께 행복하게 어울립니다. 문 안의 세상은 소년이 왔던 흑백 세상과는 다른 세상입니다. 저마다의 색을 알록달록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지현/ 이야기꽃
▲ <문> 본문 그림 이지현/ 이야기꽃
ⓒ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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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남을 뒤로 하고 소년은 문을 열고 소년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미 소년은 예전의 소년이 아닙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흑백이던 소년이 색깔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년을 변하게 한 그 무엇인가가 그 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소년을 행복하게 한 '휴식'이었든, '꿈'이었든, '즐거움'이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문을 열고, 각자가 경험할 다른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디뎠을 때 우리는 모두 예전과는 조금 다른, 조금 자란, 내가 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소년은 '문'을 닫고 열쇠를 채워두지 않습니다. 누구든 들어가 보라고 활짝 문을 열어둡니다. 문 안의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구든 찾게 되길 바라는 고운 마음을 열어둔 '문'에 담았겠지요.

자, 앞을 보세요. '문'이 보이나요? 대한민국도 새로운 '문'을 열어젖힌 것 같네요. 나의 '문'은 무엇인가요? 열쇠를 들고, 거미줄을 걷어내고 활짝 열어봅시다. 모두의 '문'을 응원합니다.


이지현 글.그림, 이야기꽃(2017)


태그:#문, #이지현,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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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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