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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고래'하면 동해나 울산, 장생포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홍어로 유명한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있습니다. 흑산도와 고래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을까요? 왜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생긴 것일까요? 대체 흑산도에선 고래와 관련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연재는 흑산도와 고래의 연관성을 좇는 '해양문화 탐사기'입니다. - 기자 말

전남 신안군 흑산도 예리에 있는 고래공원.
 전남 신안군 흑산도 예리에 있는 고래공원.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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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객선이 들어올 때까지 시간이 났나 보다. 여행객들이 오색꽃잎처럼 흑산도 예리 선창길 여기저기에 흩어져 유쾌한 흥정을 벌인다. 간만에 파시(波市)가 다시 선 듯 선창이 들썩인다.

여행객들이 흥정을 벌이는 것은 마른미역이나 다시마, 말린 생선, 흑산도에서 양식한 전복 등이다. 특히 연근해보다 수온이 섭씨 2도나 낮은 흑산바다에서 양식한 전복은 육질이 쫄깃해 인기가 좋다.

하지만 여행객들을 들뜨게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홍어다. "흑산도에 왔으니까 흑산홍어 맛은 보고 가야지"라며 노천 주점이나 식당에서 흑산홍어 시가를 묻고, 흥정을 벌이다 맛을 본다. "역시 달라"하는 감탄사가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 흑산도는 홍어의 섬이다.

'흑산홍어'의 정식 이름은 홍어목·홍어과에 속하는 '참홍어'다. 흑산홍어는 아래로는 흑산도, 위로는 대청도를 오가며 오징어나 새우, 게 등을 먹고 산다. 흑산홍어의 살에선 특유의 붉은 빛깔이 나는데 이 때문에 붉을 홍(紅)자를 써서 '홍어(紅魚)'라 부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넓을 홍(洪)자를 써서 '홍어(洪魚)'라 한다. 생김새 따라 이름을 지은 경우다.

흑산도에서 유배살이를 하며 한국 최초의 해양생물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쓴 손암 정약전. 그는 <자산어보>에서 홍어를 '분어(鱝魚)'로 분류해 설명했다. 그리고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은 '홍어(洪魚)'"라며 소개를 시작한다.

흑산도는 홍어로 유명하다. 선착장길에 홍어를 말리고 있는 풍경.
 흑산도는 홍어로 유명하다. 선착장길에 홍어를 말리고 있는 풍경.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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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은 너비가 6∼7자이다. 암컷이 크고 수컷이 작다. 몸은 연잎을 닮았고, 색깔은 적흑색이다. 연한 육질의 코가 머리 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코의 바닥은 풍성하고 끝은 뾰족하다. 입은 코 아래쪽에 있고, 가슴과 배 사이에 가로로 입이 있다. 등 위에 코가 있고, 코 뒤에 눈이 있다. 꼬리는 돼지꼬리와 같으며, 꼬리뼈에는 어지럽게 가시가 나 있다.... 중략 ....

동지 이후에 잡기 시작해서, 입춘전후에 살이 오르고 커지며 맛이 좋다. 3∼4월이 되면 몸이 마르고 맛도 떨어진다. 회로도, 구이도, 국으로도, 포로도 모두 맛있다. 나주근읍의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잘 먹는데, 사람들의 기호에 차이가 있어서이다. 가슴과 배에 혹이 나는 병을 오래 앓은 사람이 홍어 삭힌 것으로 국을 끓여 먹으면, 능히 그 병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홍어는 숙취를 푸는 데 가장 좋다. 뱀은 홍어를 기피하므로, 홍어 씻은 물을 버린 곳에는 뱀이 접근하지 않는다. 뱀에게 물린 곳에 홍어 껍데기를 붙이면 효험이 있다."
- 정약전 <자산어보> 중에서

정약전의 흑산홍어에 대한 설명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듯 묘사가 구체적이다. 그리고 해양생물의 생김새에 대한 설명을 넘어 생활문화사 측면에서 참고할만한 여러 지식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어느 철에 홍어가 맛있는지,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효능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등 가히 백과사전이라 부를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흑산홍어. 정부에서는 한 해 어획량을 정해 관리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1999년부터 참홍어를 비롯 11개 어종에 대해서 한 해 동안 잡을 수 있는 양을 정해 발표하는데 이를 '총 허용어획량(TAC)'이라 한다. 총 허용어획량을 해마다 정하는 까닭은 갈수록 줄어드는 어족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2017년 참홍어의 총 허용어획량은 203톤으로, 흑산도 어부들에게 할당된 어획량은 180톤이다. 전국 참홍어 허용어획량의 89%를 차지하는 규모다. 2016년에는 흑산도에 모두 158톤의 참홍어 허용어획량이 할당돼 약 44억원의 어획고를 올렸다.

홍어잡이배에 홍어 주낙을 올리고 있는 흑산도 어부들.
 홍어잡이배에 홍어 주낙을 올리고 있는 흑산도 어부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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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0년 동안 홍어잡이를 하고 있는 영진호 심동열 선장이 선장실에 모시고 있는 '처녀 서낭'. 처녀 서낭은 배의 안전과 선원 생명을 지켜주고 풍어를 이뤄지는 역할을 한다.
 만 30년 동안 홍어잡이를 하고 있는 영진호 심동열 선장이 선장실에 모시고 있는 '처녀 서낭'. 처녀 서낭은 배의 안전과 선원 생명을 지켜주고 풍어를 이뤄지는 역할을 한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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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에는 모두 6척의 홍어잡이 어선이 있다. 영진호도 그 중 한 척이다. 영진호를 모는 심동열 선장은 1986년부터 흑산홍어를 잡고 있다. 홍어잡이 만 30년, 심 선장은 아직도 선장실에 '처녀 서낭'을 모셔두고 있다. '배 서낭'의 일종인 '처녀 서낭'은 1986년 배 진수식을 할 때 무당이 만들어준 것이다.

'서낭(당)'이 마을을 지켜주는 구실을 하듯 배서낭은 배의 안전을 지켜주고, 선원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풍어를 이뤄지는 기능을 한다. 홍어잡이배를 타는 어부들은 조업을 나가면 짧으면 나흘, 길면 일주일을 바다에서 생활해야 한다.

서남해 먼바다의 기상은 인간이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바람이 한번 터지면 드넓은 바다가 격랑의 회오리에 휩싸인다. 만선은커녕 사람 목숨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바다 한가운데, 선장과 선원들은 무사귀환의 간절한 기도를 처녀 서낭에 바친다. 간절한 바람은 기도를 만들어내고, 기도는 구원의 신뢰를 품은 형상을 지어낸다. 어부들에게 처녀 서낭은 간절한 바람이 빚은 바다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영진호의 처녀 서낭에게 인사를 건네고 '흑산도 아가씨 상'이 세워져 있는 예리 방파제 방향으로 약 50미터나 걸었을까. 누우런 빛깔의 고래 형상물이 보인다. 그 앞엔 '고래공원'이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에 홍어공원이 아닌 고래공원이 있다니....

흑산도 고래공원 가는 길에 타일 사진으로 전시돼 있는 고래 사진. '1980년대 흑산도 근해에서 포획된 고래'라고 씌여 있다.
 흑산도 고래공원 가는 길에 타일 사진으로 전시돼 있는 고래 사진. '1980년대 흑산도 근해에서 포획된 고래'라고 씌여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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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다시 길을 살피니 고래공원으로 가는 길가 타일 벽에 몇 장의 사진이 부착돼 있다. 그리고 고래공원으로 조성된 곳엔 FRP로 제작한 누우런 색의 고래 형상물 한 개와 몇 가지 고래 종류를 소개한 부조물 8개가 잡초들과 함께 널브러져 있다.

타일에 인쇄된 사진은 모두 흑산도 고래잡이 풍경 사진이라는데 시기나 작업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고래공원 앞에 짧은 안내문이 있지만 그것만으론 하필이면 흑산도 예리에, 하필이면 고래공원이 만들어진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고래공원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보았다. 한결같이 "잘 모르겠다"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예전에 이곳에 고래 해체장이 있었다"고 했다. 고래해체장은 포경선이 잡아온 고래를 부위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언제쯤이었냐고 묻자 더 이상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대체 왜 이곳에 고래공원이 있는 것일까?

깊어지는 궁금증은 유사한 기억들을 모두 불러내 편집을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흑산면 예리에 있는 '자산문화관'에도 고래 관련 사진과 고래 뼈가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 곳 역시 전시하고 있는 고래뼈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어떤 고래 종의 뼈인지, 이 곳에서 전시되기 전에 이 고래뼈는 어디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를 설명하는 글 한 줄이 없기 때문이다.

흑산도 예리 자산문화관에 전시돼 있는 고래뼈.
 흑산도 예리 자산문화관에 전시돼 있는 고래뼈.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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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는 바다에 서는 장인, 파시의 섬이었다. 1월부터 4월까지는 조기 파시가 섰다. 흑산도 조기 파시는 위도·연평도 파시와 함께 서해안 3대 파시로 꼽혔다. 추자도와 청산도 바다를 건너온 고등어가 흑산바다에 이를 즈음인 6월부터 10월에는 고등어 파시가 섰다. 그리고, 2월부터 5월엔 흑산도에 고래 파시가 섰다고 한다. '고래 파시'라니....

도대체 흑산도와 고래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흑산바다에 고래가 살기나 했던 것일까. 고래가 살았다면 어떤 고래였을까. 그 고래들은 지금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대체 고래와 흑산도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흑산도 고래공원에 설치된 고래 형상물 뒤로 해가 지고 있다.
 흑산도 고래공원에 설치된 고래 형상물 뒤로 해가 지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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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기사 "고래 잡아오라는 미친 왕이 있었다" 이어집니다.


태그:#흑산도 , #홍어, #고래, #정약전,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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