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의 한 장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항일영화 불패의 신화는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박열>이 2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항일영화 흥행 공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항일영화의 선전이 돋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최근 3년간 <암살> <해어화> <대호> <밀정> <귀향> <동주> <덕혜옹주> <아가씨> 등이 개봉됐다. 이 작품 중 특히 독립운동 등 항일투쟁을 소재로 하거나 당시의 아픔을 그린 영화의 흥행 성적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으로 친일파를 처단하는 <암살>은 1270만을 기록하며 천만 영화가 됐고, <밀정> 역시 750만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덕혜옹주>는 역사 왜곡 논란 속에 560만을 기록했다.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해 358만을 기록한 <귀향>이나, 일본에 희생당한 민족시인 윤동주를 다룬  <동주>는 117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는 성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박열>의 뒤를 이어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을 다룬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가 여름 흥행 시장에 나설 예정인데, 감독이 전작들이 크게 주목받아 흥행한 전력 탓인지 개봉을 앞두고 천만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다. 항일영화 불패 신화가 이어질 조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늘어난 항일 영화

 2000년에 제작된 <아나키스트>. 항일 영화의 계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2000년에 제작된 <아나키스트>. 항일 영화의 계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 씨네월드


사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항일영화는 한국 초창기인 1960년대 주요 흥행 코드였다. 최초의 항일영화는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만들어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였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며 봇물이 터지듯 했는데, 1959년 전창근 감독의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이 크게 주목받았다. 1962년 임권택 감독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 정창화 감독의  <대지여 말해다오>와 <대지의 지배자>, 1963년 정진우 감독의 <국경 아닌 국경선>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충무로의 한 원로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무협과 액션은 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였고, 흥행에서도 대부분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후 1970년대는 반공영화로 넘어갔고 최근에는 검사와 조폭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무협 액션 영화의 주요 변천사이다.

주춤하던 항일영화는 1991년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고, 2000년에는 이준익 감독이 제작하고 유영식 감독이 연출한 <아나키스트>가 개봉했으나 이후로는 긴 시간 동안 눈에 띄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영화 <암살>의 한 장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항일 영화 제작 붐에 불을 붙였다.

영화 <암살>의 한 장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항일 영화 제작 붐에 불을 붙였다. ⓒ 쇼박스


오랜 시간 잠자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영화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암살>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정치 환경 속에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흥미 있는 부분이다. 영화를 통해 나오는 친일파 척결은, 역사적으로 친일파 청산을 못 해 굴곡졌던 현대사의 아쉬움을 해소해주며 대리만족을 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의 현실이 보수 정권 내내 이어진 시민사회의 저항을 떠올리게 했다.

감독들이 현실에 대한 발언을 과거사 통해 하는 듯

항일영화가 제작이 늘어난 가장 큰 요인은 우선 잇따른 흥행 성공이다. 비슷한 소재들의 영화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흥행에 성공한 원동력은 작품의 완성도 등 내적 요인도 있지만, 정치 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른 외적 요인도 많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의 경우 흥행 가능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투자를 받지 못했으나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 문제가 주목받으면서 흥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이준익 감독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이준익 감독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강성률 광운대 교수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민족주의 정서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며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페미니즘적으로 식민지 피해를 고발하면서 위로하는 형식"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암살>의 주인공이 여성이고, <동주>도 여성적인 영화로 볼 수 있다"라면서 "민족주의 정서와 피해자 정서와 작용하는 것 같고, <밀정>은 조금 방식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강 평론가는 또한 시대적 배경이 같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 대해서도 "제국주의적 폭력성이 강한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해어화>의 경우는 성적인 수탈과 일제의 강압과 폭력이 부각되면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상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맹수진 평론가 역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가 부각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가 드러나는데, 일제 강점기 항일영화들이 기존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난 측면이 있는데, 희생자로서 여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맹 평론가는 항일영화의 잇따른 등장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역할이 있었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자기 아버지 역사를 미화하려는 과정에서 코드를 맞춰주는 쪽도 있었으나, 감독들이 현실에 대한 발언을 과거사를 통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열 일제강점기 항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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