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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와 하모니카로 열창하고 있는 조박
▲ 재일동포 가수 조박 라이브 기타와 하모니카로 열창하고 있는 조박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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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e is over 이미 늦었지만 이제는 끝내줘요 Abe is over 이유 따윈 묻지 마요
Abe is over 아 기뻐라 나가줘요 뒤돌아 보지 말고 Abe is over 안녕
- <아베 이즈 오버> 중

20여 명의 관객들이 작은 의자를 의지 삼아 둥그렇게 둘러앉은 정면에, 어깨에는 통기타를 메고 목에는 하모니카를 걸친 재일동포 노래꾼 조박이 일본의 총리 아베의 퇴진의 촉구하는 노래 <아베 이즈 오버>를 불렀다다.

<아베 이즈 오버>는 1980년대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고, 한국에서도 가수 조장혁이 부른 적이 있는 'Love is over'라는 곡을 조박이 아베 퇴진의 내용을 담아 가사를 바꿔 담은 곡이다. 원곡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듣는 이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듯한 매력을 갖고 있는 원곡의 추억에 잠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일 계속되는 각종 스캔들과 일본사회를 침략전쟁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아베정권에 대한 풍자로 통쾌함도 느끼는 분위기였다.

다함께 '공모(共謀)'하는 밤

조박의 14번째 앨범 '우리들은 천진난만 비국민'
▲ 재일동포 가수 조박 라이브 조박의 14번째 앨범 '우리들은 천진난만 비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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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박이 지난 17일 오후 나고야의 한적한 주택가 입구에 있는 는 '산산도(山山堂)'라는 카페에서 이야기가 있는 라이브 공연을 열었다. 그는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을 비롯해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받고 권력에 의해 배제당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종회무진 누비며 노래와 1인극 등으로 때로는 사회를 풍자하고 권력을 호통치고, 상처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재일동포노래꾼이다.

라이브 제목은 '다함께 '공모'하는 밤'. '공모'는 테러방지를 구실로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방해하고 감시할 우려가 있어 많은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아베 자민당 정권이 강행처리한 '공모법'을 풍자하는 말이다. '공모법'으로 시민의 목을 죄어 오더라도 굴하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모'하여 저항하겠다는 불복종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우리들은 천진난만 비국민 전쟁따위 절대 하지 않아
죽이지 않아 죽임을 당하지도 않아 죽이게 하지도 않아
우리들은 천진난만 비국민 국가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속이지 않아 속임을 당하지도 않아 속이게 하지도 않아
- <우리는 천진난만 비국민> 중

노인들이여 국회를 향하라

그래서 조박이 이번에 새로 낸 14집 앨범의 타이틀곡 제목도 '우리는 천진난만 비국민'. '비국민(非国民)'이란 표현은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 시기에 반체제, 반전활동을 하거나 국가의 시책에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을 불렀던 것으로, 그런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고립시키기 위한 아주 모욕적인 멸칭이다.

하지만 전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의 우익들은 외국인이나 반정부 활동을 하는 이들을 '비국민'이라고 부르며 비난하고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두렵지 않다'고 조박은 노래한다. 아니, 두렵지만 않은 것이 아니라, 심지어 노인들을 선동해 '국회를 포위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전국 방방곡곡 산골짜기에서 도시 빌딩 틈에서
휠체어에,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인들이 국회를 향한다
그날 밤 일본 전국에 문자가 돌았다
'노인들이여, 버려진 이들이여, 국회를 향하라, 정부를 타도하자'
할머니와 병사들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국회의사당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 <노인들이여 국회를 향하라> 중

다음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노래도

'다음에는 세월호 노래도 만들어 주세요'
▲ 재일동포 가수 조박 라이브 '다음에는 세월호 노래도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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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까지 떨어진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최악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대안세력이 될 만한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일본 정치의 현실을 생각하면 파시스트정권이라고까지 불리는 이 정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처지에서 보면 여전히 한숨이 나오고 미래는 비관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이날 저녁, 조박과 함께 한 시간은 한편으로는 비장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풍자와 웃음으로 모든 것을 날려보 내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권력 앞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설 수 있는 용기를 얻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공연 뒤 가진 사인회에서 약간은 들떠 있던 기자는 팔에 끼고 있던 세월호 팔찌를 건네고 '다음에는 세월호 노래도 꼭 만들어주세요'라고 청탁 아닌 청탁을 했다.

둘로 나뉜 조국과 일본, 이 세 사회 사이에 걸쳐 있으면서 때론 무시당하고 차별당하고 탄압당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온 재일동포 사회. 철저히 차별받으면서 그들의 정신과 삶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어떠한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반골정신과, 차별받는 자만이 겪는 설움과 아픔을 이해하기에,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 싸우도록 만드는 나눔과 섬김의 정신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지금도 '조선 놈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이고 전부 죽어버려'라고 서슴없이 떠들어대는 이들이 존재하는 일본사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일본인, 조선인 따지지 않고 약하지만 선한 이들과 연대하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재주를 사람들과 나누며 오늘도 거리에서, 카페에서, 공연장에서 절규하는 조박. 그와의 다음 만남이 더욱 기대된다.

이날 라이브가 열린 나고야의 카페 '산산도'
▲ 재일동포 가수 조박 라이브 이날 라이브가 열린 나고야의 카페 '산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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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뒤 사인회
▲ 재일동포 가수 조박 라이브 공연 뒤 사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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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박, #재일동포, #라이브, #나고야 , #아베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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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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