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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이은영 '너나우리' 공동대표를 만나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이은영 '너나우리' 공동대표를 만나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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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마주하자 눈물을 쏟았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 거리에서 도움을 호소했던 절박함, 자신이 가족의 건강을 해치고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다는 자책감과 미안함,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아야 했다는 억울함까지 복받친 울음이었다.

문 대통령과 피해자들의 만남은 그야말로 울음바다였다. 문 대통령은 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9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 그동안 미흡했던 정부 대책에 사과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피해자들을 만난 문 대통령은 이날 초청한 15명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복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는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힘드십니까? 울지 마십시오. 같이 해 나가십시다"라며 어깨를 다독이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만성 폐 질환을 얻어 산소통을 항상 달고 다녀야 하는 임성준(14)군 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야구를 좋아하는 임군에게 프로야구 선수의 피규어를 선물했고 "꿈을 잘 키워나가야 한다"라고 격려했다. 산소통 호스를 코에 끼고 있는 임군은 문 대통령을 향해 웃음을 보였다.

임군 어머니 권은진씨는 "피해자들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리포트>를 문 대통령에 전달했다. 다른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도 문 대통령에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동안 너무 힘이 들었다, 이렇게 대통령을 만나 뵙게 돼 너무 감사하다"라며 마음을 표현했다. 또 피해를 입은 가족의 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정부를 대표한 문 대통령의 사과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동안 피해 어린이인 임성준 군이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고 '전국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 연합회' 백현정 공동대표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동안 피해 어린이인 임성준 군이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고 '전국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 연합회' 백현정 공동대표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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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간담회 시작에 앞서 "아이와 가족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거꾸로 건강을 해치고 또 목숨을 앗아갔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부모님들이 느꼈을 고통, 그리고 자책감, 억울함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라며 참석자들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결과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피해 사례들을 빨리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라며 "오늘 제가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서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는 지난 1994년 국내에 처음 시판됐다. 이후 지난 2006년 2월부터 십여 명의 아이들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급성 폐 질환을 집단으로 겪게 됐고, 일부는 목숨까지 잃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현상이 2007년까지 이어져 2008년 질병관리본부가 원인 규명에 나섰지만 당시에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가 발병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2011년 일이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이 "중환자실에 중증 폐렴 임산부 환자가 갑자기 늘고 있다"고 신고하자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에 나섰다. 당시 임산부 7명이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입원했는데 그 가운데 4명이 사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그해 11월 가습기 살균제 수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피해 조사와 가해 기업들에 대한 제재는 터무니없이 미약했다. 제대로 된 피해자 통계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부가 내린 제재는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살균제를 허위로 안전하다고 표시했다는 이유로 옥시에 5000만 원, 홈플러스에 1000만 원, 버터플라이이펙트(세퓨)에 100만 원 등의 과징금을 내린 게 전부였다.

이날 문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질병의 원인규명, 피해 방지 조치, 가해 기업에 대한 조사와 제재 등 그동안 정부가 책임졌어야 할 부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고 그동안 정부를 대표해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했다.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해 이 문제에 직접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적어도 우선 치료 혜택받을 수 있게 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의 면담에서 울먹이는 피해자 조순미 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의 면담에서 울먹이는 피해자 조순미 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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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과 피해자들의 간담회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어떤 위로와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막막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피해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깊은 공감을 표했다"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책임져야 할 기업이 있는 사고이지만, 그간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음은 물론 피해 발생 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라며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재차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다.

이에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은 "그냥 마트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사다 썼을 뿐인데 우리 아이가 죽었다"라며 "20년 동안 마트에서 가습기(살균제)를 팔아 왔는데 국가가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인가? 우리가 비속 살인자인가?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다는 말인가? 죽고 싶지만 남아 있는 아이를 위해 살고 있다. 사망자 1222명은 그냥 숫자가 아니라 목숨"이라고 절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피해자 발언이 시작되면서 간담회가 전부 울음바다였다"라며 "(문 대통령도) 눈이 충혈됐다. 굉장히 (울음을) 참으시려고 애를 많이 썼다"라고 말했다. 또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가장 많이 울었을 것"이라며 "피해자 가족들 요구사항 중에 환경부만으로는 힘에 부치는 요소들이 있다고 하자, 대통령이 청와대 각 수석들이 책임지고 뒷받침하라고 지시했다"라고 전했다.

이날 면담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 재수사 ▲ 피해구제 재원 확대 방안 추진 ▲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통령 또는 총리실 직속의 전담기구 구성 ▲ 피해자 인정 판정 기준을 현행 1·2단계에서 3·4단계로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 국가 차원의 화학물질중독센터를 설립해 감시와 예방은 물론 사후 원인 규명과 치료 시스템 구축 ▲ 국민안전기본법을 제정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징벌제 강화 ▲ 집단소송제 도입 ▲ 살인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 ▲ 피해자의 피해 입증에 관한 책임 완화 등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확실한 원인 규명과 의학적 조사 판정을 제대로 하는 것이 우선 과제로 보인다"라며 "이 문제를 원점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치료 혜택이라도 우선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가해 기업이 도산해 소송이 불가능한 경우라도 특별구제계정을 확대해 지원폭을 늘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 단체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소통해 다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 추진에 만전을 기할 것이며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통령이 직접 끝까지 챙겨나가겠다"라고 말했다.


태그:#문재인, #가습기, #가습기살균제, #청와대, #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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