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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관헌에게 붙잡힌 집 처마에 붙은 말벌집.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관헌에게 붙잡힌 집 처마에 붙은 말벌집.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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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고 한다. 이는 노년을 사는 이에게 아주 좋은 경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즈음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가능한 절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다음 세대에게 전쟁의 비극만은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한국전쟁, 그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복원'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에 대한 비망록이요, 징비록으로 이 땅에 평화 정착을 위한 한 훈장의 유서다.

지난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원주 횡성지구에 역사 답사를 왔기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나는 연구소 회원들이 원주 일대의 민긍호 의병장 기념상, 의병장 무덤, 의병장 전적지, 강림의총 등 일반인들이 별로 찾지 않는 의병장의 유적지를 찾아 묵념을 드리고 헌화하는 갸륵한 정성을 지켜보면서 나라를 위해 의롭게 사신 분은 사후에도 외롭지 않다는 느꺼운 감동을 받았다.

회원들의 1박 2일 마지막 답사지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인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원진녀씨 댁이었다. 회원들이 그곳에 닿았을 때 그 집 처마에는 말벌집이 덩그렇게 매달려 있었다. 그 언저리에는 커다란 말벌들이 '윙윙' 거리며 자기 집을 아주 용감하게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그 말벌들이 밉기는커녕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들은 자기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출동해 하나밖에 없는 대침으로 침략자를 무자비하게 쏘고는 자신은 그 자리에서 죽기 때문이다.

친일의 무리들이여! 당신들은 이 말벌보다 나은 삶을 살았는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의 한 식당에서 열린 '미당 서정주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남호 고려대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편집위원인 최현식 인하대 교수, 이경철 문학평론가, 이남호 고려대 교수, 전옥란 작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와 주연선 은행나무출판사 대표.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의 한 식당에서 열린 '미당 서정주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남호 고려대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편집위원인 최현식 인하대 교수, 이경철 문학평론가, 이남호 고려대 교수, 전옥란 작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와 주연선 은행나무출판사 대표.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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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을 민중시인이라니

지난 21일 열린 '미당 서정주 전집' 완간 기념회에서 이남호 고려대 교수가 "미당이 만약 요절했다면 최고의 민중시인, 민족시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단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고, 아무리 입을 닫고 지내는 게 미덕일지언정 '이건 분명 아니다!'라는 울분이 차올랐다. 그래서 몇 자 적으려고 한다.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몇 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몇 만 리련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 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웃으며 가더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더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 공격 대원.
귀국 대원.

귀국 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어 벌이는 고운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이 어데런가.
몇 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 <매일신보> 1944. 12. 9.
* 레이테 만 ; 필리핀 중부 비사야제도의 만(灣)

이 시는 카미카제 특공대 마쓰이 히데오(松井) 오장(伍長)에 대한 송가다. 미당 서정주는 이밖에도 여러 편의 친일시를 쓰면서 그의 시 <자화상>의 일구처럼 '병든 수캐마냥' 일제강점기를 더럽게 살아왔다. 한낱 말벌(또는 땅벌)보다 못하게 산 그를 응징하지 않고 내버려두자 그는 전두환을 예찬하는 시까지 써서 바쳤다.
                   
서정주, 그가 황천에 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

 전북 고창은 미당 서정주의 고향으로 부안면 선운리에는 미당시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서정주의 시와 친일시, 사진,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전북 고창은 미당 서정주의 고향으로 부안면 선운리에는 미당시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서정주의 시와 친일시, 사진,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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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예찬시
-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그가 2000년에 죽었기 정말 다행이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박근혜 찬가' '최순실 찬가'도 쓰고, '최태민 송가'도 쓰고도 남을 위인일 게다. 그의 작품은 시가 아니라 어린 영혼을 좀 먹게 하는 언어의 유희요, 한낱 교언영색일 뿐이다.

후학들이여! 더 이상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자라나는 영혼을 병들게 하지 말라. 미당, 그는 아마도 여태 이승과 저승 사이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가 황천에 이를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그나마 후학들의 바른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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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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