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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기자회견 현장에서 만난 리베카 솔닛
 25일 기자회견 현장에서 만난 리베카 솔닛
ⓒ 진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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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식의 질문을 받는 데 무척이나 익숙했다. 십 년 전, 내가 쓴 정치 관련 책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되어 있던 자리에서, 나를 인터뷰하던 영국 남자는 무대에서 내게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를 캐물었다. 내가 어떤 답을 내놓아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출판사의 홍보 담당자는 열 받아서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저 사람은 남자한테는 절대로 그런 걸 안 물을 걸요." - 리베카 솔닛,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발췌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리베카 솔닛이 신간을 출간했다. 2014~2017년 솔닛이 쓴 글을 모은 페미니즘 에세이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원제: The Mother of All Questions)>는 <어둠 속의 희망>,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함께 리베카 솔닛의 '희망 3부작'으로 불린다. 25일, 창비서교사옥에서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 중인 리베카 솔닛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오래된 이야기를 깨뜨리다

성공한 남성에게는 '성공'의 비결을 물을 뿐,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비결 같은 건 묻지 않는다. 성공한 여성들은 늘 가정에서의 역할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남성에게는 묻지 않는 특정한 질문들을 여성에게만 자꾸 하는 것은 여성을 '사람'이 아니라 '여자'로 환원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리베카 솔닛은 여성의 삶에 일종의 '정답'이 강요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것은 '좋은 아내, 좋은 엄마의 역할을 다하라'는 요구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는 일련의 과정을 여성에게 적합한 삶의 방식으로 여기는 것이다.

 25일 강연회 현장에서 만난 리베카 솔닛의 모습
 25일 강연회 현장에서 만난 리베카 솔닛의 모습
ⓒ 진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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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서 솔닛은 "여성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념에 물음을 제기하고 싶었다"며 "책에 수록된 '침묵의 짧은 역사'라는 글에서 여성의 역사가 침묵의 역사였음을 이야기하고 그 침묵을 깨어 낸 여성들이 어떤 변화를 쟁취해왔는지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신의 저서가 'breaking story(오래된 스토리들을 깨뜨림)'의 역할을 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혐오의 시대, 페미니즘은 승리하는 중이다"

페미니즘이 부상하면 안티 페미니즘도 부상하기 마련이다. 여성을 멸시하는 통념을 깨고 유구한 역사의 성차별에 맞서는 과정에서 반발이 거세다. 여성혐오가 극단적인 형태로 가시화되면서 각종 사회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도 남성 유튜버들이 여성 게임 유튜버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교사에게 사이버불링이 자행됐다.

이날 현장에서는 미국에서도 한국과 유사한 안티 페미니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솔닛은 이에 대해 "남성들이 이런 반응(혐오)를 보인다는 건 그들이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페미니스트들이 해온 일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페미니즘이 힘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젊은 남성들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들로 여성혐오를 강화하는 반면, 여성들은 더 이상 남자가 필요 없다는 쪽으로 가면서 젠더 갭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솔닛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안에 대한 정확한 규정'과 '이름 짓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당시 해당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하는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었다. 가해자가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직접 언급했는데도, 몇 시간 동안 화장실을 찾은 남성들은 다 놔두고 여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는데도, 여자라서 죽은 게 아니라는 반응이 많았다.

솔닛은 "성범죄 등을 개별 사건으로 치부하지 말고 문화적 패턴을 보게 하는 진실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솔닛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우리가 승리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수가 늘어나고 계속 우리의 힘이 커질 것이라는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걷기의 저항이 세상을 바꾼다

 리베카 솔닛의 '희망 3부작'
 리베카 솔닛의 '희망 3부작'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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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출간과 함께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인문학>과 <어둠 속의 희망> 개정판이 출간됐다. 솔닛은 세 책의 공통점으로 '걷기'와 '저항'을 다룬다는 점을 꼽았다.

솔닛에게 걷기란, 천천히 여기저기를 누비는 과정에서 지금껏 가려져 있던 이야기들을 탐색해나가는 것이다. 즉, 걷는다는 것은 저항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솔닛은 "역사적으로 걷기라는 행위가 혁명의 시발점이 되어 왔다"며 "한국의 촛불 집회와 같이 걷기로 상징되는 비폭력 저항과 동기의 움직임을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어둠 속의 희망>을 쓴 배경에 대해 "평범한 시민들이 세상을 바꿔왔음을 이야기하고 미래가 확정되지 않았으니까 행동할 여지가 있다고 북돋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좌절될 때 쉽게 절망과 무기력에 빠지는데,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의 궤적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솔닛은 페미니즘 운동에 관해서도 "수천 년간 지속해 온 여성차별의 문제를 불과 50년 사이에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인식하고, 좌절하면 안 된다"며 "궁극적으로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해방이고 다양한 사회 문제와 교차하는 지점이 있어서 페미니즘이 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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