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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독서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랜(LAN)선과 독서가 합쳐진 말로, 사회적 이슈와 어울리는 책을 소개하는 <오마이뉴스> 책동네 기사입니다. 이번에는 국정원의 여론 공작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이 지난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시절 저지른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및 정치개입 등이 연일 언론을 통해 불거지고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보수 정권,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을 정권보위부대처럼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글프다. 어느 나라든 정보기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을 감시하고 사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국민들의 안위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수정권 시절 국정원의 행태는 이 같은 존재 의미를 무색케 한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배우 문성근씨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배우 문성근씨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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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정보기관은 어떨까? 영국 BBC의 작가 겸 PD 고든 토마스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역사를 추적한다. 모사드 관련 인물 200여 명을 직접 인터뷰한 최초의 책이 바로 <기드온의 스파이>다. 이 책은 지난 2010년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됐었다. 비교적 오래된 책이지만 국정원의 정치개입으로 떠들썩한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에 훌륭한 참고 사례를 제공해 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재밌다. 1, 2권으로 나뉘어 있어 분량이 많은 편이나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슈프리머시> 같은 첩보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한 번 펼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단순한 재미 차원을 넘어선다.

모사드, '총성 없는 전쟁' 절대 강자 

모사드의 역사를 다룬 고든 토마스의 <기드온의 스파이>
 모사드의 역사를 다룬 고든 토마스의 <기드온의 스파이>
ⓒ 예스위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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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먼저 국제정치 무대 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정보전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물밑에서 벌어지는 두 나라 사이의 정보전 양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난 1997년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때 미국에서 활동을 하던 정보원이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에게 폰섹스를 하려고 자주 전화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부장이던 야톰은 통신기술팀 '야호로민'을 미국에 급파해 르윈스키의 아파트를 도청한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적나라한 통화내용은 고스란히 녹음됐고, 이 테이프는 외교행낭으로 이스라엘 행정수도 텔아비브로 운반됐다. 모사드는 이 테이프를 향후 미국과 외교마찰이 불거질 때 활용하기로 방침을 정한다.

"모사드 본부는 그 녹음테이프의 활용 방안을 검토했다. 녹음 내용은 충분히 협박에 사용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을 협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미국의 대중동 정책 때문에 막다른 궁지에 몰리거나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 할 경우 활용할 여지는 있었다." - 본문 150쪽 

이렇듯 정보전은 제임스 본드나 제이슨 본 같은 첩보영화 주인공이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는 액션활극이 아니다. 그보다 '국익'만이 지상가치인 국제정치 판에서 벌어지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총성 없는 전쟁에서 모사드 요원들은 늘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이들의 활약상은 수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먼저 이 책에 소개된, 지금까지도 스파이계의 전설로 회자되는 엘리 코헨의 예를 살펴보자. 엘리 코헨은 이집트 출신 유대인으로 모사드에 지원했다가 불합격 처리됐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활약할 정보원을 찾던 아미트 부장의 눈에 들어 정보원으로 선발된다. 이후 6개월간의 훈련을 거쳐 시리아에 잠입한다.

"코헨은 무역업자로서 시리아 수도에 순조롭게 정착했다. 고위층 인물들과 빠르게 친분을 쌓아 갔다. 그가 만난 고위층 인사에는 시리아 대통령의 조카인 자레딘도 있었다. 자레딘은 과시욕이 강한 인물이었다. 수시로 시리아가 얼마나 강한지를 자랑하고 싶어 했다.

코헨은 자레딘의 이런 성향을 부추겼다. 자레딘은 얼마 되지 않아 코헨으로 하여금 골란 고원 방어 진지를 돌아보도록 주선했다. 코헨은 그곳에서 러시아제 장거리포들이 콘크리트 벙커 깊은 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았다.

코헨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 러시아 탱크인 T-54 200대가 시리아에 들어온 지 수시간 만에 코헨은 이 사실을 텔아비브에 보고했다. 북부 이스라엘에 대한 시리아의 전략 계획서의 청사진까지도 입수했다. 이 정보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사람의 공작원이 한 개 사단의 가치를 지녔다는 아미트의 평소 지론을 코헨이 입증해 주고 있었다." - 본문 95~96쪽

모사드의 활약상 중에 지금도 유명한 건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작전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모사드는 아돌프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 학살 원흉으로 지목하고 집중 추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목격됐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모사드는 즉각 작전에 돌입했다. 유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아이히만 체포는 정의구현이었다. 또 국제사회에 나치의 학살행위를 다시금 일깨울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미가 깊은 만큼 위험 부담도 따랐다. 아이히만이 목격된 아르헨티나는 나치 잔당들이 다수 은신해 있었다. 체포도 체포지만 그를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당시 부장이던 에이탄은 요원들과 함께 직접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작전을 지휘했다. 일단 아이히만의 동선을 파악한 다음 그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문제는 그를 공항까지 인도하는 일이었다. 에이탄 부장은 꾀를 냈다.

"에이탄은 아이히만에게 사전에 준비한 항공사 엘알의 승무원 복장을 입히고 위스키 한 병을 강제로 먹여 인사불성으로 만들었다. 에이탄과 그 일행도 승무원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술 냄새가 나도록 옷에다 위스키를 뿌렸다. 아이히만의 머리에는 승무원 모자를 눌러 씌운 후 차 뒷자리에 밀어 넣었다. 공군 기지에 대기 중이던 비행기는 이미 시동을 걸고 있었다. 기지 입구에서 아르헨티나 군인들이 깃대를 내리고 차를 세웠다. 차 뒷자리에는 아이히만이 코를 골고 있었다." - 본문 118쪽 

모사드의 작전은 세계를 경악시켰다. 이들은 이후에도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 조직원들을 모조리 제거하는가 하면 1976년 우간다 엔테베 공항 인질구출 작전을 성공시키며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열악한 안보상황, 강한 정보기관으로 귀결 

모사드는 정보력, 그리고 요원들의 잔혹성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무엇이 모사드를 있게 했고 그 조직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만들었을까?

저자는 이스라엘의 열악한 안보환경을 이유로 들었다.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지중해와 아랍권을 연결해주는 지역에 위치해 있던 탓에 아시리아, 페르시아, 로마 등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잦은 외침에 시달려야 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기록이 이스라엘 민족의 고달픈 역사를 말해준다.

이런 이스라엘이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선택한 게 바로 정보전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구약시대부터 정보전에 능했다. 구약성서 <신명기> 1장의 기록을 살펴보자.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유대민족을 이끌고 마침내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있었다. 이때 모세는 12명의 정찰대를 꾸려 가나안 일대의 정찰을 지시한다. 말하자면 현대적 의미의 첩보전이었던 셈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 주변 아랍세계와 전쟁을 벌여야 했다. 개전 초만 해도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아랍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승리는 이스라엘의 몫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하가나'라는 준군사 조직을 꾸려 정보역량을 강화해 왔고, 이들의 정보력이 아랍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고난의 역사를 통해 정보전을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해왔다. 따라서 강인함과 함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무자비함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부대’ 실무책임자로 알려진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국정원 댓글부대' 책임자 이종명 국정원 3차장 검찰 소환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부대’ 실무책임자로 알려진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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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정보기관 국정원을 언급할 차례다. 안보환경이 열악하기로 말하자면 한반도도 이스라엘 못지않다. 한반도는 유사 이래 줄곧 강대국들의 외침에 시달려 왔고, 지금은 미-일-중-러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민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게다가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화끈한 말폭탄 대결을 펼치며 긴장감을 한껏 끌어 올리는 와중이다. 적어도 이런 상황이라면 정보기관의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안보환경이 무색하게 국정원은 엉뚱한 곳에 정보역량을 쏟아 부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문화예술인들을 대중의 시야에서 없애는가 하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폄하하고, 4대강·세종시 이전 등 정부정책 홍보에 열을 올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12년 대선을 즈음해서는 심리전단까지 꾸려 선거 민심을 왜곡하려 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지난 23일 SBS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의 여론 조작 행위를 '반역행위'라고 꼬집었다.

한 국가의 정보기관이 이토록 드러내놓고 국내정치에 개입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국제분쟁 전문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마저 보고서를 통해 국정원이 "정보의 정치화, 정치개입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한반도의 현실을 곱씹으며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미-일-중-러 4대 강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 대한민국이 어떻게 열악한 안보환경을 극복하고 국민의 안위를 지킬 것인가? 이를 위해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 책 <기드온의 스파이>는 위에 적은 문제의식에 답을 줄 것이다. 부디 국정원 직원들이 임무수행 전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아니,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구입해서 모든 국정원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기드온의 스파이 1 - 눈에는 눈

고든 토마스 지음, 이병호.서동구 옮김, 예스위캔(2010)


태그:#기드온의 스파이, #아돌프 아이히만, #모사드, #클린턴 ,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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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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