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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언제나 '빛 좋은 개살구'를 좇고 있었다. 왜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언론사(기자) 입사 준비를 그냥 하다 보니 어느 날, 10년을 채웠다. 2012년 10월 11일, 일본 도쿄지방법원에서 만세 소리를 듣기 전의 이야기다.

<아이 캔 스피크>의 모티브 이용수 할머니와의 인연

승소 후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도쿄지방법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이용수 할머니 승소 후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도쿄지방법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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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역사적인 판결이 나온 날이었다. '한일 기본조약 관련 문서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한국 측 소송단이 이긴 것이다. 이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모티브가 된 이용수 할머니로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문제소위 일본군 위안부 관련 청문회에서 증언한 분이었다.

사실, 일본에서 승소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판결 하루 전날 이용수 할머니와 최봉태 변호사,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패소 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판사가 패소 판결을 내리면 법정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오열하다 쓰러지고 혜문 대표가 할머니를 업고 뛰어서 구급차에 태우자는 농담인 듯 진담인 작전을 도쿄 YMCA 호텔에서 짜고 있었다(도쿄 YMCA는 1919년 2월 8일 조선인 유학생들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한 장소로 알려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승소한다면 이용수 할머니가 "내가 민족의 족쇄를 풀었다!"라고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할머니는 승소를 염원하면서 "내가 민족의 족쇄를 풀었다!"를 세 번 연습하고 주무셨다.

"진작 말했으면 내가 판사님을 한번 껴안아 줬지요!"  

한·일 기본조약 관련 문서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 판결에 대한 정보가 쓰여있다.
▲ 703호 법정 개정표 한·일 기본조약 관련 문서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 판결에 대한 정보가 쓰여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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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10시 30분 도쿄 지방법원 703호 법정, 최봉태 변호사가 원고석에 착석했다. 그 뒤 판사가 입장하고 작은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나갔다. 판사의 낭독이 계속되면 될수록 법정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판결문을 다 읽은 판사가 퇴장한 후 사람들은 잠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침묵을 깬 소리가 혜문 대표를 통해 나왔다.

"이거 이긴 거죠?"

그 순간 이용수 할머니가 외쳤다. "아이고, 만세! 만세! 만세!" 법정에서 만세를 외치는데도 일본 경비원은 제지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만세를 신나게 외친 뒤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작아가지고 하나도 못 들었어요. 진작 말했으면 내가 판사님을 한번 껴안아 줬지요!"

승소했다는 소식에 도쿄 특파원들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법원 앞에서 할머니가 승소의 기쁨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전날에 연습한 그 대사를 할 차례였다.

"내가 민족의! 민족의! 족, 족, 아, 그게 뭐더라. 내가 민족의 족발을 풀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과거사 문제 피해자가 승리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일본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큰 충격이었다. 승리에 취해 기뻐하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은 다음날 <한겨레신문> 1면에 실렸다. 그렇게 꿈꾸던 기자 생활을 간접 체험해본 기회였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신문을 바라보며 기자가 되기를 포기했다.

이런 순간을 관찰자 입장에서 기록하고 찍어 전달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이용수 할머니처럼 잘못된 것에 싸워 이기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그 승리의 장소에 초대해주신 이용수 할머니께 정말 감사드린다.

이용수 할머니 목소리에 눈물이 섞인 날을 기억한다

(왼쪽부터) 이용수 할머니,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최봉태 변호사가 명성황후 살해 칼 히젠도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히젠도 환수위원회 발대식 (왼쪽부터) 이용수 할머니,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최봉태 변호사가 명성황후 살해 칼 히젠도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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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일본 대표부를 방문한 이용수 할머니의 모습
▲ 이용수 할머니 유엔 일본 대표부를 방문한 이용수 할머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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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가 한 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된 일뿐만이 아니다. 일본 구시다 신사에 보관 중인 명성황후 살해 칼 '히젠도' 환수(혹은 폐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일본 대마도에서 훔쳐온 불상은 돌려주라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대마도에서 도둑이 훔쳐 한국으로 밀반출한 동조여래입상은 2015년 7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 궁내청 소장 문화재 반환에 꼭 성공하라며 문화재제자리찾기에 일본 민주당 중진의원들을 무려 36명이나 소개해 주시기도 했다(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를 포함한 도서 1205책은 2011년 겨울, 한국에 반환됐다).

수많은 세월 전 세계를 누비며 한일 관계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영화 속 옥분처럼 잘못된 것에 강하게 발언할 줄 아는 여성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유엔 대표부에 가서 일본 공사에게 호통을 쳐 쩔쩔매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방안을 마련하며 합의한 가운데 2015년 12월 29일 오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이용수 할머니께 호통을 듣고 있다.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방안을 마련하며 합의한 가운데 2015년 12월 29일 오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이용수 할머니께 호통을 듣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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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할머니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인 날이 있었다. 2015년 12월 29일, 한일 위안부 피해자 협상 타결안을 들고 외교부 차관이 오자 바로 호통을 치기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당신 어느 나라 소속이냐, 일본이랑 이런 협상을 한다고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고 외치며 영화 속 옥분처럼 "돈은 필요 없다"라고 강하게 소리치셨다.

이용수 할머니는 그날 이후로 졸속 협상 무효를 위해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2년 10월 승리 후 환하게 웃으셨던 그날처럼, 한일 위안부 피해자 협상 타결안을 무효로 만들고 할머니가 원하는 명예를 꼭 회복하시길 바란다. 그래서 다시 만세를 외치면서 웃으시길 응원한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2015년 12월 28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아닌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2015년 12월 28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아닌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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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용수할머니, #아이캔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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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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