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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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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수감돼 재판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 모두 사임했다. 6개월 동안 구속돼 재판을 받던 중, 재판부가 관련 사건으로 구속영장을 재발부하자 극렬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상 재판을 거부한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던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제22부는 지난 13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발부했고, 구속기간을 연장했다.

앞서 특검은 구속 연장을 요청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 형사재판 등에 불출석한 사실을 들면서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지 않는 피고인이 구속 만기 후 석방되면 재판에 출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은 관련된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만큼, 만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사건과 관련된 중요 증인에게 영향력 행사해 증거를 조작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특검의 재영장 청구 이유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박근혜 피고인의 유영하 변호사는 "추가 영장 발부는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지 않을 것이며 사법 역사상 치욕적인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무죄추정과 불구속 재판이라는 대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위한 어떤 변론도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모두 사임하기로 결정했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어 지난 16일 열린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직접 입을 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신상 발언에서 "지난 6개월 동안 재판했는데 다시 구속이 필요하다고 한 건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재판을 받는 지난 6개월 동안 참담하고 비참한 시간이었다",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또 "법치에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 마침표가 찍혔으면 한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와 기업인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자신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는 법치라는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에 불과하며, 재판부 또한 그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변호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변호 맡은 유영하 "조사 늦춰야"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변호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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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떼쓰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 중에 언젠가 이런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사실은 예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범죄 혐의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안종범 수석의 수첩에 나와 있는 내용도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적은 것이라 주장할 정도였다. 수석비서관이 받아 적을 수 있는 사람의 말이 누구의 것이겠는가? 그런데도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부인하다 보니 증거 조사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결국 구속기간을 연장하게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들은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재발부한 것에 대하여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법치를 빌려 정치보복을 하는 것이어서 재판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사건의 정치쟁점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한국의 형사 재판 관례에 따르면, 구속영장을 재발부하는 경우는 흔하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그 중대성에 비춰볼 때 구속기간 만료로 곧바로 석방하는 것이 오히려 매우 이례적이다. 박 전 대통령이나 변호인 모두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텐데,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 재발부를 명분으로 출구를 만드려는 속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재판은 어떻게 전개될까.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은 형사소송법상 반드시 변호사가 필요한 사건(필요적 변호사건)에 해당한다. 따라서 변호인이 없는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3조 제1항). 피고인은 법원이 결정한 국선변호인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국선변호인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법원의 허가를 얻어 사임할 수 있다.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된 자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해 재판 준비를 할 수 없고, 사실상 변호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재판을 거부하려는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들고나올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경우 국선변호인은 그와 같은 사유를 밝혀 사임을 요청할 수 있다.

필요적 변호사건은 피고인에게 방어권과 변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피고인이 방어권을 남용하거나 변호권을 남용하는 것까지 허용하진 않는다. 국선변호사를 거부함으로써 재판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법원도 아래와 같이 판시하고 있다.

'필요적 변호사건이라 하여도 피고인이 재판거부의 의사를 표시하고 재판장의 허가 없이 퇴정하고 변호인마저 이에 동조하여 퇴정해 버린 것은 모두 피고인 측의 방어권의 남용 내지 변호권의 포기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수소법원으로서는 형사소송법 제330조에 의하여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재정 없이도 심리판결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피고인과 변호인들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거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제318조 제2항의 규정상 피고인의 진의와는 관계없이 형사소송법 제318조 제1항의 동의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어 있다(대법원 1991. 6. 28. 선고 91도865 판결)'

피고인의 방어권 남용과 변호권 남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필요적 변호 사건이라 하더라도 피고인이 변호사를 거부하는 경우엔 변호사 없이 재판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에는 궐석재판도 가능하다. 궐석재판(闕席裁判)이란 피고인이 출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의 출석 없이 재판을 하는 제도다. 한국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개정하지 못하는 경우에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리에 의한 인치(引致)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77의2 제1항)'고 밝히고 있다.

또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경우에는 출석한 검사 및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77의2 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에 출석해서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갖는 것은 형사재판의 기본이다. 그러나 피고인이 재판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에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결국은 사법질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는 것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인 셈이다.

궐석재판은 피고인이 항변할 기회가 없으므로 매우 불리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고인의 귀책사유로 출석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야 하며 추후 재심 등의 방법으로 방어할 기회를 줘야 한다. 하지만 피고인이 고의로 재판의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까지 재심 등의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복을 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성모병원에서 허리 통증으로 진료를 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나서고 있다.
▲ 휠체어 탄 박근혜 환자복을 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성모병원에서 허리 통증으로 진료를 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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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이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법과 재판제도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본질적 요소다.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거나 재판제도를 거부할 수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 대통령도 취임하면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는 내용의 선서를 하게 된다(헌법 제69조). 법 질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의미다.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거부하면서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미 박 전 대통령은 일반 국민이 누릴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방어권을 행사해 왔다.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지내고 대통령까지 했던 사람이 재판제도를 부정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재판부는 변호인의 사퇴와 재판거부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나머지 재판을 진행하기 바란다. 묵묵히 법에 순응하는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정범 변호사는 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태그:#박근혜재구속, #필요적변호사건, #궐석재판, #박근혜국선변호인, #박근혜재판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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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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