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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간 국정농단 조연들이 이번엔 국정원이라는 '막다른 길'을 만났다.

각종 의혹에도 사법처리를 면한 '박근혜 문고리' 2인방과 블랙리스트 1심 무죄 선고로 석방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구속영장이 두번 기각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향해 검찰이 수사망을 죄고 있다.

자취 감췄던 '문고리', 국정원으로 구속 위기 


박근혜 정부 시절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 비서관이 지난달 31일 오전 국정원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 '문고리 3인방' 안봉근 긴급체포 박근혜 정부 시절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 비서관이 지난달 31일 오전 국정원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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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재판이 시작된 이후 자취를 감춘 '박근혜 문고리' 3인방 중 2명이 느닷없이 검찰에 나타난 건 지난 10월 31일 오전이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 받은 혐의로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체포했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약 1시간 간격을 두고 각각 검찰청으로 이송된 두 사람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후 쭉 함께한 이들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다. 이들을 통하지 않으면 대통령을 만나기도 어렵다는 뜻에서였다. 이런 말이 나돌 정도로 세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청와대 실세로 자리 잡았다. 국정농단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도 경찰과 공기업 등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등 의혹이 불거졌지만 재판에 넘겨진 건 정 전 비서관 한명이었다. 나머지 '2인방'은 국회 국정조사에 불출석한 혐의만 적용받았다.

그렇게 국정농단은 피해갔지만, 이번에 불거진 의혹을 불식시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두 비서관이 먼저 요구해 국정원장 몫으로 할당된 특수활동비가 이들에게 흘러갔다. 전달자는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 돈을 '007 가방'에 담아 청와대 인근 도로에서 은밀히 전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넘어간 돈의 규모는 매달 1억 원씩, 최소 40억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역대 국정원장 모두가 같은 날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점으로 봤을 때 이런 상납은 관행처럼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두 사람 모두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상납 받은 사실은 시인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돈의 '사용처'다. 박근혜 정부 '화이트리스트'(특정 보수단체 지원 강요) 의혹을 수사하던 중 혐의점을 발견에 인지수사에 착수한 검찰도 이를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건 두 갈래다.

먼저 청와대의 '비공식 활동'에 돈이 집행된 정황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비공개 여론조사를 수차례 실시했는데, 대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청와대 관계자가 국정원에 요구해 특수활동비 5억 원을 현금으로 받았고, 그대로 업체에 전달했다. 이 혐의는 이재만 전 비서관의 체포영장에도 포함됐다. 또한 2015년을 기점으로 이전 2년 동안은 안 전 비서관에게, 이후 2년 간은 이 전 비서관에게 전달된 점도 돈의 최종 목적지가 '문고리' 개인이 아니었다는 정황을 뒷받침 한다.

종착지가 이들 개인이었을 걸로 보이는 국정원 돈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안봉근 전 비서관이 다달이 돈을 건네받은 것 외에 개인적으로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게 또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 안 전 비서관은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돈의 최종 목적지가 어느 곳이든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사건에 쓰도록 제한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로 흘러간 데에선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검찰 관계자는 "안봉근·이재만 두 비서관의 관여 정도가 의미 있는 수준"이라며 "두 사람의 처분 방향을 정하고 보완 수사를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윤선 압수수색, 우병우는 두 번째 출국금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불구속 상태인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한 뒤 점심식사를 위해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조윤선, 블랙리스트 항소심 첫 재판 출석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불구속 상태인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한 뒤 점심식사를 위해 법원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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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1심 결심 공판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한 조윤선 전 장관도 다시 검찰의 수사선에 올랐다. 1심 뒤 석방된 지 석달 만이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오전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해 10여 곳을 압수수색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조 전 장관 자택이었다. 조 전 장관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며 매달 현금 500만 원씩을 상납 받았다고 알려졌다.

조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리스트)를 작성·실행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 부분이 무죄로 선고되면서 지난 7월 27일에 풀려났다. 1심에서 유일하게 유죄로 판명 난 국회 국정감사 위증 부분도 '당일에 선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중이다. 압수수색 당일 법원에 출석한 조 전 장관은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변론을 맡은 남편 박성엽 변호사가 대신 "지난 압수수색에서 다 가져가서 이번에 가져간 것 별로 없다. 화이트리스트 관련으로 안다"고만 했다.

검찰은 조만간 조 전 장관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오랜 기간 내부 보안을 유지하며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을 보이는 상태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정농단방조' 19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정농단방조' 19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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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묵인·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끝까지 '최순실을 모른다'며 결백을 주장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다시 출국이 금지됐다.

앞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 전 수석과 긴밀한 관계였던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은 국정농단 사태 2년 전 이미 최순실씨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도 정식 보고 라인에 누락한 채 우 전 수석에게만 비선으로 보고했다. 추 전 국장이 우 전 수석과 최씨 사이 연결고리였다는 정황은 또 있다. 그는 2016년 직원들에게 우리은행장 비리 첩보를 수집하라고 지시하고 그 결과를 우 전 수석에게 보고했는데, 이 문제는 최씨의 관심사였다.

국정원 개혁위는 "우리은행장 연임이나 비리 문제가 이슈화되지 않았음에도 비리첩보를 집중 수집하도록 지시한 배경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특검 조사 결과를 비춰봤을 때 최순실씨 등이 새로운 행장 후보 추천을 위해 당시 우리은행장 연임을 저지할 명분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우 전 수석과 최씨의 관계 규명이 또다시 검찰 몫으로 넘어간 셈이다. 

추 전 국장은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 검사)에 출석해 17시간에 걸친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이후 수사팀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비선보고하였다는 내용 등에 대한 국정원 추가 수사의뢰를 중심으로 수사한 결과, 혐의가 인정되고 구속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됐다"라며 1일에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나아가 검찰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누구든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태그:#이재만, #안봉근, #문고리, #조윤선, #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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