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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규모 3.8 여진이 발생하자 경북 포항시 북구 포항고등학교 관계자들이 학교 밖으로 대피하고 있다.
 16일 오전 규모 3.8 여진이 발생하자 경북 포항시 북구 포항고등학교 관계자들이 학교 밖으로 대피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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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보니 '포항 사람들 이기적이다', '공부 못하는 애들 때문에 몇십만 명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 이런 댓글이 달려있더라고요. 계속 여진이 일어나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는 친구들도 많은데다가, 시험치는 고사장이 다 금이 가고 벽돌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포항만 욕할 수 있나요?"

포항 A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정성호(가명)씨는 지진 대피소에서 '수능 1주일 연기' 소식을 들었다. 포항 학생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무엇보다 SNS와 포털 댓글에서 포항 지역 수험생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마주하는 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포항의 수험생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집이 허물어지거나, 불안감이 커서 대구, 창원 등 인근 지역으로 떠나 공부하려는 수험생도 있다. 성호씨 역시 어쩔 수 없이 이모가 사는 대구로 간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 연기'에 대한 수험생 및 누리꾼들의 '초점 빗나간' 비난까지 듣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좋겠다" 포항 수험생들의 분노

포항 학생들을 향한 악플 댓글들
 포항 학생들을 향한 악플 댓글들
ⓒ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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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학생들을 향한 악플
 포항 학생들을 향한 악플
ⓒ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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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학생들을 향한 누리꾼들의 비난 댓글들
 포항 학생들을 향한 누리꾼들의 비난 댓글들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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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에서 수능 예비소집 중 갑자기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어요. 진원지와 가까워서 체감상으론 작년 경주 지진보다 강도나 진동 기간이 훨씬 심했던 것 같아요. 모두 울면서 짐도 다 두고 신발도 못 신고 운동장으로 나갔고, 선생님들도 당황하셨지만 침착하게 지도해주셨어요."

포항 B여고에 재학 중인 김소정(가명)씨는 "집이 많이 훼손돼, 차나 대피소 등에서 잔 사람도 많다"며 "마음이 불안해서 공부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는 어머니 차 안에서 공부도 하지 못한 채, 마음만 졸이던 도중에 수능 연기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김씨의 마음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친구들이 단체 대화방을 통해 보내주던 '기사 댓글'이었다. "격리해라" "지방 애들 뭐하러 구하냐" "서울도 아닌데 왜 그러냐" 등의 비하 발언들이 가득했다. 그는 공부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피해자인 포항 학생들에게 욕을 하는 상황에 참을 수 없어, 입시 커뮤니티에 '포항 수험생에 대한 욕설을 멈춰달라'는 글을 썼다. 그는 "입시 정보와 무관한 글을 쓴 것은 처음"이라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김씨는 "우는 친구가 많은 건 당연하고, 수능 중요도가 높은 친구들이 정말 힘들어한다"며 "연기된 수능 날도 무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수능시험장으로 예정돼있던 포항의 한 고등학교. 벽돌이 무너져있다
 수능시험장으로 예정돼있던 포항의 한 고등학교. 벽돌이 무너져있다
ⓒ 독자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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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피해가 덜했던 포항 남구 C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이서연(가명)씨도 불안감에 힘들어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용흥동에 있는 친구는 아파트 계단이 들렸다면서 울면서 전화했다"며 "친구들끼리는 전부 다 재수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며 당시 학생들 사이의 초조함을 전했다. 이어 "왜 하필 포항이고 왜 오늘인지 진짜 원망스러웠다"며 "친척들이 고3인데 어떡하냐고 전화해서 더 부담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운동장에 대피해서 '오답노트'를 보고 있다가,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울었다고 한다. 안도감이 들어서였다. 악플에 대해선 화는 나지만 누리꾼들이 포항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에 못 들어가는 친구도 있고, 계속되는 여진 때문에 공부하다가도 놀라고 있어요. 고3이나 재수생분들은 화나겠지만, 그렇게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수능이 끝나기만 학수고대했는데 이런 상황이 와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트라우마' 겪고 있는데... '지역 비하'까지 들어야 하나

포항 한 고등학교의 세면대, 타일이 깨져있다
 포항 한 고등학교의 세면대, 타일이 깨져있다
ⓒ 시민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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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D고등학교에 재학중인 구영진(가명)씨는 누리꾼들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역 비하 악플'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경상도 지역을 싸잡아 비난하는 댓글, '보수꼴통들 다 죽어야 한다'는 댓글도 봤어요. 저희는 경주 지진 때 우리 학교 열람실의 형광등이 떨어지는 바람에 한 명이 다치기도 했거든요. 친구들과 저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고, 진원지가 포항이라 더 두려운데... 솔직히 저희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구씨는 "아침 9시경, 수능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국어영역 시험 중이었을 시간에 또다시 여진이 느껴졌다"며 "포항의 대부분 고등학교는 진원지 인근인 포항시 북구에 집중되어있으므로, 정부의 연기 결정은 현명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수능에서 해방되고 싶은 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지진낸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지역을 욕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발 비방을 멈춰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태그:#포항지진, #포항고3, #포항수험생, #지진,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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