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동희 강연 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동희 활동가 강연 편. 보수 기독교계의 공격으로 비공개 처리되었다가 다시 공개되었다. ⓒ 세바시


얼마 전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CBS의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아래 <세바시>)과 관련한 이야기다. <세바시> 팀은 23일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의 강동희 활동가가 연사로 출연한 '성 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분명한 구성원입니다'를 공개했다. 이 강연은 제목처럼 성 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일이 어떻게 구체적인 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하지만 문제는 반동성애기독연대와 같은 보수 개신교계 성 소수자 혐오 단체가 항의를 표하며 발생했다. 이들은 <세바시>가 방송되던 CBS가 기독교 방송사라는 점을 들어 어떻게 그런 곳에서 동성애 옹호 방송을 할 수 있냐고 목소리를 냈다. 이 때문인지 <세바시>팀은 결국 온라인에 공개된 해당 강연의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강동희 활동가와 강연에 공감한 이들에게 사과를 표하며 비록 <세바시>의 콘텐츠 기획과 제작이 CBS와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방송 선교를 담당하는 CBS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거나 오해를 받는 것을 바라지 않기에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이와 함께 실제로 CBS가 한국교회 일부 집단과 교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점도 언급했다.

방송이 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이유

미디어가 성 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은 방송과 언론의 중요한 가치인 공공성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소수자를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하고 보편적인 인권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기본적인 사회적 원칙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방송심의규정은 방송의 공적 책임으로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방송법 제6조 5항은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홍석천. 이경규는 처음 그의 출연을 반대했었다가 이후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홍석천. 이경규는 처음 그의 출연을 반대했었다가 이후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 SBS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홍석천이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의 에피소드. 당시 고정 출연진 중 한 사람이었던 이경규는 홍석천의 출연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고 한다. 그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홍석천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얻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꾼 후 이경규는 실제로 동성애자는 어떤 존재인지 미리 공부를 했다고 한다. 또한, 녹화에 들어가 홍석천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후회와 반성을 표했다고 한다. 이경규는 촬영 이후 홍석천에게 '선입견이 있었다. 미안하다'라는 문자를 보냈으며 제작진에게는 '마음으로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경규의 이 같은 사연은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서 가시화의 전략이 매우 중요함을 드러낸다. 실제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편견과 혐오는 대부분 이들에 대한 정보의 부재와 낯섦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커밍아웃했을 때, 나는 많은 경우 '내가 생각하는 게이와는 다르다'며 자신이 가졌던 편견을 깨닫고 성찰하는 반응을 얻고는 했다. 그 때문에 대중에게 광범위한 전파력을 가진 미디어 영역에서의 성 소수자 등장과 재현 방식은 무척이나 중대한 문제다. 방송과 언론이 소수자들의 존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지우거나 그릇된 묘사 방식을 택하는 경우, 이는 당사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바시>가 해당 강연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것 역시 바로 이 '지우기'에 해당할 수 있다.

성 소수자의 목소리를 지켜낸 연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동희 강연 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은 이전부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는 했다. ⓒ 세바시


말하자면 성 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혐오와 폭력을 증언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 팀이 오히려 성 소수자의 목소리를 지워버린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셈이다. 이 같은 부정의한 조치는 <세바시>의 출연진을 포함한 많은 사람의 비판에 직면했다. 가령 강연자 중 한 사람인 손아람 작가는 자신도 성 소수자임을 이야기하며 출연한 영상인 '차별도 비용을 치른다'를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씨 역시 '성적지향을 이유로 성 소수자를 제외하는 처사에 다양성과 존중은 사라졌고,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이 무색해진' 상황은 '누구든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스스로의 신념과 어긋난다고 역시나 자신의 강연 영상 공유를 중단해달라는 의사를 밝혔다. 또한, 다큐멘터리 감독 이선희씨도 차별의 증거가 되는 곳에서 자신이 전한 말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연대에 함께했다.

이 같은 움직임 덕분일까, <세바시>팀은 결국 강연 영상의 재공개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SNS를 통해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며 영상에 내려졌던 비공개 조치를 철회함을 알렸다. 또한, 강연의 내용이 '성 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폭력을 반대'하는 것이니만큼 이를 두고 <세바시>와 강연자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한다면 법적 대응을 포함한 강력한 대처를 해나갈 것을 알렸다. 비록 안타까운 실수는 있었지만 이에 대한 사과와 함께 강연이 지닌 가치에 맞는 후속 대처를 약속한 점은 매우 훌륭하다.

성 소수자 운동에 남을 값진 승리의 경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동희 강연 편.

많은 사람이 연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강동희 활동가로 대표되던 성 소수자의 목소리는 묻히지 않게 되었다. ⓒ 세바시


동성 간의 키스 장면을 등장시킨 <선암여고 탐정단>과 블락비가 출연했던 < SNL >의 스케치는 방송통심심의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았다. 레즈비언들의 삶을 다루었던 KBS의 단막극 드라마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은 혐오 집단의 항의로 다시 보기가 전면 중단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꼭 미디어뿐일까. 성 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한 강연이나 행사들 역시도 반발에 부딪혀 파행을 겪곤 했다. 그리고 서두에서 이야기했듯 이 같은 상황이 만들어 낼 결과는 매우 우려스럽다. 성 소수자는 어디엔가는 있지만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은 사회에서 손쉽게 위협적인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당장 보수 개신교계 성소수자 혐오 단체가 성 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퍼트리며 '국가적으로 위험한 존재'라는 낙인을 찍는 방식을 보라.

언급했듯 미디어에서 성 소수자의 존재와 목소리를 지우거나 억압하려는 시도는 매번 반복됐고 성공한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당사자인 성 소수자로서 이런 문제가 재발할 때마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래서 <세바시>팀의 강연 영상 비공개 철회 결정과 이를 끌어낸 출연진과 지지자들의 연대는 나를 비롯한 성 소수자들에게 소중한 승리의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결정으로 <세바시>팀이 마주할지 모르는 풍파다. 이들에 대한 혐오 세력의 공격은 예견된 일이고 CBS가 관련 직원들을 문책하는 사태도 벌어질 법한 일이다. 비록 실수가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지켜낸 이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이제는 그 용기 있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바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 혐오 세바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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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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