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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부엌과 거실을 연이어 가로질러 건넛방으로 옮겨 갔다. 살며시 문을 연 뒤 딸로부터 손자를 넘겨받았다. 사위는 조용하다. 품에 안은 손자의 숨소리만이 낮은 진동음으로 느껴질 뿐이다. "오늘도 요 녀석이 황홀한 선물을 줄까?"

생후 두어 달이 돼가면서 손자는 어렴풋이나마 낮과 밤을 가리기 시작했다. 밤잠을 자면서 몸을 계속 뒤척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보통은 한 차례만 깨어나 젖을 찾는다. 손자는 새벽 3시경에 젖병을 거의 비웠다고 딸이 말했다.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들어 목이 뒤집히듯 돌아간 손자를 조심스럽게 내 배 위에 얹는다. 녀석과 내가 배를 맞추는 시간이다. 벽에 등을 대고 몸을 서서히 방바닥을 향해 내려 눕힌다. 배 위에 엎드려 있는 손자의 몸무게가 내 가슴과 복부로 제법 묵직하게 전달된다. 7kg쯤 될까? 태어날 때 2.9kg에 혈변으로 중환자실 신세까지 져야했던 걸 감안하면, 2개월 여 만에 폭발적으로 무게를 늘렸다.

생후 50일 정도까지만 해도 연필 끝 지우개처럼 톡 튀어나와 있던 배꼽이 최근 쏘옥 들어가버렸다. 더이상 배꼽 스킨십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생후 50일 정도까지만 해도 연필 끝 지우개처럼 톡 튀어나와 있던 배꼽이 최근 쏘옥 들어가버렸다. 더이상 배꼽 스킨십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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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몸에서 요구르트 냄새 같은 게 내 코를 향해 올라온다. 손자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배와 가슴언저리로 간지럼 같은 게 느껴진다.

최근 들어 손자의 배꼽은 제 배를 향해 시나브로 함몰돼 가고 있지만, 탯줄을 떼어낸 지 얼마 안 된 시점에는 1cm 가량 돌출돼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배꼽이 통통한 배 위에 연필 끝 뭉툭한 지우개처럼 솟아 있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손자의 배꼽이 어쩌다 한 번씩 내 배를 뭉근하게 찌르는 순간은 내 평생 최고의 스킨십에 다름 아니다. 녀석의 숨소리 말고는 적막강산이나 다름없는 새벽 시간인지라, 비록 미동일망정 손자의 배꼽 찌르기 혹은 간지럼은 선명하게 짜릿하다.

다 알다시피 배꼽은 생명줄의 흔적기관이기도 하다. 오롯이 탯줄 그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하고 몸집을 키워왔을 테니까. 헌데 흥미롭게도 배꼽은 어미의 몸에서 독립한 순간부터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신체 부위로 전락한다. 눈이나 입, 코는 물론이요, 손가락 발가락까지도 '누구를 닮았네'하며 관심이 대상이 되지만, 배꼽 얘기는 도통 없다. 신생아는 물론이요,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이다.

퇴근 길 자신이 사온 모자를 쓰고 있는 손자를 외할머니가 안아 어르고 있다. 외할머니는 손자가 예정된 날짜에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듯 말문을 한동안 열지 못했다. 그래서 딸은 예정일자보다 2주뒤로 상경일을 미뤘다.
 퇴근 길 자신이 사온 모자를 쓰고 있는 손자를 외할머니가 안아 어르고 있다. 외할머니는 손자가 예정된 날짜에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듯 말문을 한동안 열지 못했다. 그래서 딸은 예정일자보다 2주뒤로 상경일을 미뤘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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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손자의 배꼽이 우리 둘을 이어주는 둘도 없는 소중한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이번 육아를 통해 '발견'했다. 찌르는 것도 간질이는 것도 아닌, 말로는 설명이 불가한 손자 배꼽의 꼬물거림.

스킨십이 내겐 언제인가부터 싸구려 몸동작 가운데 하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 반갑다"며 서로 어깨를 껴안을 때, "잘 좀 부탁한다"며 비즈니스 상대의 손을 내 두 손으로 움켜잡을 때, 접촉의 여운이나마 느꼈던가?

제스처 과잉의 시대. 일상은 물론 직장에서도 제스처는 넘쳐난다. 오죽하면 축구장에서 할리웃 액션에 카드를 내밀까? 겉으로는 화려하고 떠들썩하지만 속은 빈, 인스턴트 스킨십이 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킨십이 가장 인간적인 몸동작이라는 걸, 이번에 손자를 키워보기 전에는 사실 몰랐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스킨십은 철저히 시원적이고 물리적이며 솔직담백한 행위이다, 아니 행위여야 한다. 세상의 모든 아가들은 이런 측면에서 스킨십의 달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위가 어둑한 새벽 4시 딸이 손자를 내게 인수인계했다. 내겐 손자와 배꼽 맞춤이 더 없이 황홀한 시간에 다름 아니다.
 사위가 어둑한 새벽 4시 딸이 손자를 내게 인수인계했다. 내겐 손자와 배꼽 맞춤이 더 없이 황홀한 시간에 다름 아니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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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접촉면이 클수록 더 큰 만족, 궁극적으로는 더 큰 소통이 가능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손자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손자를 안을 때든 배 위에서 재울 때든 접면이 클수록 손자는 대체로 편안해 했다. 나 역시 그 면적에 비례해 만족감이 컸고, 사랑스러운 감정 또한 증대됐다.

이제 12월, 손자가 나의 시골집으로 내려온 지 두 달이 다 돼간다. 원래 계획으로는 열흘 전쯤에는 서울의 제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당초 예정된 상경 날짜가 임박해 딸이 올라가겠다고 하자, 아이 엄마는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얼어붙은 듯 입을 떼지 못했다. 이미 다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짐을 싸겠다고 하자, 일종의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난,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고 무관심한 척 말했다, 그러나 더 이상 손자를 껴안을 수 없을 걸 생각하니 내장이 다 빠져 나가 몸 전체가 텅 빈 느낌 같은 게 밀려왔다. 손자와 나는 스킨십만으로도 이미 넉넉하게 소통해 온 사이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진정성 있는 스킨십이 전제된다면, 스킨십이 많은 상대일수록 그에 비례해 헤어지기 또한 그 만큼 어렵다.

아이 엄마가 충격을 먹는 바람에, 손자와 딸의 상경 날짜는 결국 보름 가량 미뤄졌다. 그럼에도 상경할 날이 가까워오자, 딸이 심심치 않게 놀리듯 한마씩 건넨다. "아빠는 틀림없이 울 것 같아." 하지만 난 아예 손자가 집을 떠난 뒤 상황을 애써 상상하지 않으려 하는 까닭에 딸이 이런 말을 하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곤 한다.

손자와 지난 두 달은 몸으로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50대 후반인 내가 손자를 전업으로 돌보다시피 한다면, 남들이 보통 하는 첫 마디는 "힘들겠다"는 거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힘든 건 몸일뿐이다. 몸이 힘든 걸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정서적 정신적 만족감은 크다.

"우리 영감은 자기가 막노동 나가서 돈 벌어오겠다고, 그 돈으로 도우미 고용해 쓰라고 말해요." 얼마 전 보건소에 가서 손자 예방접종을 시키는데, 딸과 함께 왔다는 어떤 친정어머니 한분이 내게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줬다. 글쎄, 친정아버지가 외손 양육을 도와주는 게 대단한 일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확실한 건 양육의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말고 꼭 잡으라고 주변의 할아버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서 영육이 가장 맑은 아가들과 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같이 살 기회는 평생에 걸쳐 그리 많지 않다. 내 손자도 한 살 두 살 해를 더하면 지금과는 달라지고, 누구 말대로 세 살 네 살이 되면 온갖 미운 짓을 다 할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어림잡는다면, 한 인간이 지고로 순수할 수 있는 시간은 태어나서 6개월? 길어봐야 1년 미만일 수도 있다.

불가 등에서는 묵언 수행을 최고 수행법 가운데 하나로 치지만,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부득불 허위와 허세가 끼어들 확률이 높아진다. 바꿔 말해 몸으로만 소통하는 출생 후 그 수개월이 너무도 귀중한 시간이라는 뜻이다. 진실 되고 순수하기로 친다면 한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시쳇말로 두 번 오기 힘든 '골든타임'이 신생아 시기이다.

신체접촉은 모성을 자극, 유발, 강화하는 가장 구체적인 행위일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모성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존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손자와의 '배꼽 스킨십'에서 황홀함을 느낀 건 내 안의 모성이 잠을 깨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거의 20년 가까이 돼 가는데 과거 외국에서 홀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생전 처음으로 묘한 감정, 어쩌면 모성일지도 모를 느낌을 가져보긴 했다. 아이들의 옷과 양말들을 꿰매려 바느질을 해야 했는데, 그 때 그 느낌이 너무도 좋았다. 바느질을 하다 보면 서서히 차분해지고 평소와는 다른 자애로운 마음 같은 게 들어서기 시작한다고 해야 하나.

바늘을 손에 쥐면 지금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대체로 좋다. 여느 남자들이 바느질 정도로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져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가들과 스킨십을 해보시라, 내 손녀 손자 기저귀도 갈아주고 몸도 씻겨 주고 안아서 배 위에 올려 놓고 재워 보시라. 너무 좋다. 세상에 그만한 복도 없다.

덧붙이는 글 | 마이공주 닷컴(mygongju.com)에도 실립니다.



태그:#손자, #배꼽, #스킨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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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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