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슬 '저리 좀 비켜' 지난 11월 27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부천 KEB하나은행 여자농구단과 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경기. 1쿼터 KEB하나은행 강이슬(오른쪽)이 우리은행 김정은의 압박 수비에 고전하고 있다.

▲ 강이슬 '저리 좀 비켜' 지난 11월 27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부천 KEB하나은행 여자농구단과 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경기. 1쿼터 KEB하나은행 강이슬(오른쪽)이 우리은행 김정은의 압박 수비에 고전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최근 한국 여자 프로농구에서는 외국인 선수들간에 시비가 붙어 난투극이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10일 경기도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아산 우리은행과 부천 KEB하나은행의 경기 도중 우리은행 나탈리 어천와와 하나은행 이사벨 해리슨이 몸싸움 도중 뒤엉켜 넘어지면서 사건이 벌어졌다.

이미 골밑에서 지속적인 몸싸움을 벌이며 신경전을 펼쳤던 두 선수는 감정이 격해지며 코트에 쓰러진 채로 서로의 머리와 목을 움켜잡고 '진짜 싸움'에 돌입했다. 한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주위에서 달려들어 두 선수를 떼어놓기는 했지만 어천와와 해리슨은 서로를 향해 고함을 치며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두 선수는 곧바로 퇴장당했다.

농구는 신체접촉과 몸싸움이 불가피한 종목의 특성상 경기 도중 시비가 붙는 경우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에 비하여 여자농구는 물리적인 충돌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않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끼리 충돌하는 경우는 남자농구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오히려 외국인 선수들은 인맥과 학연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타향에서 함께 뛴다는 동질감 때문에 소속팀이 달라도 친분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 국적의 어천와는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가장 낮은 2라운드 6순위로 하나은행의 지명을 받았으나 시즌이 갈수록 좋은 모습을 보이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올해는 디펜딩챔피언 우리은행으로 팀을 옮겼다.

미국 출신의 해리슨은 테네시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하나은행의 지명을 받으며 올해가 한국무대 첫 시즌이다. 두 선수는 나란히 WNBA에서도 활약하고 있는데 어천와는 인디애나 피버, 해리슨은 샌안토니오 스타스 소속이다. 나이도 어천와가 92년생, 해리슨이 93년생으로 비슷한 또래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오는 24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예정된 올스타전에서 같은 팀으로 호흡을 맞춰야 할 처지다.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은 지난 11일 재정위원회를 열고 이 사건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어천와는 300만 원, 해리슨에게는 200만 원의 벌금과 함께 나란히 1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해당 경기 심판 3명에게는 사고예방 소홀 및 미흡한 대처 등을 이유로 벌금이 10만 원씩 부과됐다. 하지만 당시 벤치 구역을 이탈한 양 팀 선수와 감독에게는 싸움을 만류하려는 의도였다는 이유로 따로 징계를 내리지는 않았다. 다만 WKBL은 양 구단에 향후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엄중히 문책하겠다는 서면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무대 '적극적인 몸싸움' 추세에 맞춘다고? 선수 갈등 부추길라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랭하다. 일단 싸움을 일으킨 어천와와 해리슨에게 내려진 징계는 당연한 결정이다. 하지만 정작 이날 경기 운영과 관리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데다, 어떤 면에서는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라고 할 수도 있는 심판에 대해서는 고작 '흡연 과태료'나 '쓰레기 불법투기'와 비슷한 액수의 형식적인 벌금 징계만 내려진 것을 두고 팬들의 싸늘한 비웃음을 사고 있다.

여자농구를 오랫동안 지켜본 팬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이 두 외국인 선수 개인간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언젠가 한번 터질 화약고'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올시즌 여자프로농구는 국제농구연맹(FIBA)의 흐름에 맞춘다는 명분으로 코트에서 적극적인 몸싸움이나 신체접촉에 관대한 분위기다. 물론 그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제는 정당한 몸싸움 수준을 넘어서, 파울에 가까운 플레이도 제대로 짚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심판에 따라서는 판정 기준이 지나치게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선수의 감정은 심판의 휘슬에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심판이 어떻게 경기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선수들이 펼치는 몸싸움과 신경전의 수위도 달라진다. 만일 심판의 휘슬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껴지거나, 반칙과 정당한 몸싸움 사이의 기준을 분명하게 잡아주지 못하면 선수들은 불만이 쌓인다. 격렬해진 감정은 자칫 '나만 당할 수 없다'는 보상 심리나, 상대에 대한 거친 '보복성 플레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어천와와 해리슨의 충돌 장면만 해도 그 이전에 불안한 조짐은 이미 몇 번이나 있었다. 난투극 직전에는 두 선수가 아예 노골적으로 공과 상관없이 서로를 팔로 밀치며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도 보인다.

심판이라면 이럴 때 한박자 빨리 휘슬을 불어서 경기를 중단시키고 두 선수를 잠시 진정시키거나 확실하게 주의를 줬어야 했다. 하지만 심판은 기어코 두 선수가 뒤엉켜 멱살다짐을 할 때까지도 분위기 파악은커녕 멀뚱멀뚱 서 있다가 오히려 벤치에서 달려온 감독과 선수들이 어천와-해리슨을 떼어놓을 즈음에야 뒤늦게 휘슬을 불며 퇴장조치를 내렸을 뿐이다. 결국 이번 사태를 이렇게까지 악화시킨 근본적인 책임은 누구보다 심판에게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콰트미 '넣고 말겠어' 지난 11월 27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부천 KEB하나은행 여자농구단과 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경기. 2쿼터 KEB하나은행 콰트미(오른쪽)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콰트미 '넣고 말겠어' 지난 11월 27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부천 KEB하나은행 여자농구단과 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경기. 2쿼터 KEB하나은행 콰트미(오른쪽)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징계'보다 중요한 건 '재발방지' 위한 대책 마련

단발성 징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재발방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다. 판정에 대한 WKBL의 명확한 기준도 필요하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심판들의 경기운영 능력 향상과 자신의 판정에 책임지는 자세가 요구된다. 

어천와와 해리슨은 이번 사건 이전까지 크게 사고를 치거나 성격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례가 없는 선수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번 폭력사태는 선수 개인의 성격이나 인성 문제를 떠나 경기 중 누구에게든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는 의미다.

꼭 이번 사례만이 아니라도 최근 여자농구는 몸싸움이 거칠어지면서 선수들이 신경전이 잦아지거나 부상으로 이어지는 등 위험천만한 장면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FIBA 룰이나 국제농구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차원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태를 단지 어쩌다 발생한 일회성 해프닝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가는 언제 더 큰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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