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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올 중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부장관 직속의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오태규 위원장이 5개월간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및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발표되었다.
▲ 박근혜 정부 강행한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문제점 발표 27일 오후 서올 중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부장관 직속의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오태규 위원장이 5개월간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및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발표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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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올 중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부장관 직속의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오태규 위원장이 5개월간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박근혜 정부 강행한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문제점 발표 27일 오후 서올 중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부장관 직속의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오태규 위원장이 5개월간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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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논란에 휩싸였던 지난 2015년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이하 위안부 합의)는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이 주도했던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이 발표한 이 합의가 사실은 이 국정원장이 주도하고 외교부는 조연에 그쳤다는 의혹이 그동안 제기된 바 있으나 정부 조사 결과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이전을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당시 한국 외교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공개 합의 부분에서 일본 측이 그렇게 오해할만한 여지를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 산하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이하 TF)는 27일 오후 3시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위안부 합의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TF는 보고서를 통해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일반적인 외교 현안처럼 주고받기 협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TF는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진전 없는 정상회담 불가'를 강조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 전반과 연계해 풀려다가 오히려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 또 국제환경이 바뀌면서 '2015년 내 협상 종결' 방침으로 선회하며 정책 혼선을 불러왔다"면서 "고위급 협의는 시종일관 비밀협상으로 진행되었고, 알려진 합의 내용 이외에 한국 쪽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발표는 외교장관이 했지만... 주연은 이병기 국정원장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받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지난 11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 검찰 소환된 이병기 전 국정원장 “심려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받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지난 11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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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군위안부 관련 한일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군위안부 관련 한일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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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에 따르면, 위안부 합의의 한국 쪽 대표는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였다.

이 국정원장의 투입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장급 협의가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2014년 말부터였다. TF는 "한국정부는 국장급 협의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2014년 말 고위급 협의를 병행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때부터 협상의 중심이 고위급 비공개 협의로 옮겨가게 되었다"면서 "일본 쪽이 협상 대표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을 내세움에 따라 한국 쪽은 대통령 지시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대표로 나섰다"고 밝혔다.

이 국정원장이 나선 1차 고위급 협의는 2015년 2월 열렸고, 이후 8차례 협의 끝에 그 해 12월 28일 위안부 합의가 발표된다. 2차 협의 직전인 2015년 2월 이 국정원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지만, 고위급 협의 대표로 끝까지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들러리일 뿐이었다. 협의 결과를 청와대로부터 받아 검토해 다시 의견을 전달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잘 반영되지 않았다.

이 전 국장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5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주일 대사를 역임한 일본통이다. 현재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십억 원을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로 상납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중이다.

"불가역적" 표현은 한국이 먼저 제안, 하지만…

큰 비판에 직면했던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먼저 제안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 측이었다. TF에 따르면, 고위급 협의에서 한국 측은 "기존에 밝힌 것보다 진전된 일본 총리의 공식 사죄가 있어야 한다면서, 불가역성을 담보하기 위해 내각 결정을 거친 총리 사죄 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같은 요구를 한 이유는 그동안 일본이 사죄를 한 후에 번복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피해자 단체의 요구가 반영된 "불가역적"이라는 요구사항은 2015년 4월 4차 고위급 협의를 하면서 왜곡된다. 이 협의에서 일본 쪽의 요구가 반영되면서 잠정 합의가 이루어지는데, 그 내용은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잠정합의 직후 외교부는 이런 방식의 '불가역적' 표현은 삭제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청와대는 잠정 합의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는 2015년 위안부 합의였다("…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 당시 한국 쪽 발표 내용)

오태규 TF 위원장은 "사죄의 불가역성, 즉 사죄를 한 번 하면 다시 사죄를 되돌릴 수 없게 한다는 그 얘기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그런데 처음에 그렇게 주장을 했으면 끝까지 관철해서 따내야 하는데, 결국 그 뜻과 맥락이 전혀 다르게 바뀐 것에 대해 우리 위원들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비공개 합의에 나타난 '소녀상 이전' 문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굴욕적인 한일협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지난 2015년 12월 31일 오후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 주위에서 한일협상 반대와 소녀상 이전 반대 밤샘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 "대를 이은 매국적 한일협정 규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굴욕적인 한일협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지난 2015년 12월 31일 오후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 주위에서 한일협상 반대와 소녀상 이전 반대 밤샘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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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추모하며 300개의 의자에 헌화를 하는 '빈의자에 새긴 약속' 퍼포먼스가 진행 되고 있다.
▲ '빈 의자에 새긴 약속'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추모하며 300개의 의자에 헌화를 하는 '빈의자에 새긴 약속' 퍼포먼스가 진행 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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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이전을 약속한 적 없다는 한국 정부의 해명도 정확한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2015년 합의 발표 당시 소녀상을 이전하는데 합의한 것이 맞냐는 질문에 한국 정부는 시종일관 "노력한다 이상의 약속은 따로 없다"라던 답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이보다 더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공개 합의 외에도 비공개 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고 명시했다. 문구 자체는 공개 합의와 비공개 합의가 동일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TF는 "한국 쪽은 공개 부분에서 소녀상 관련 발언을 한 것과 별도로, 비공개 부분에서 일본 쪽이 소녀상 문제를 제기한 것이 대응하는 형식으로 같은 내용의 발언을 다시 반복했다"면서 "특히 비공개 부분에서 한국 쪽의 소녀상 관련 발언은 공개 부분의 맥락과는 달리,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구체적인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묻고 싶음'이라는 일본 쪽의 발언에 대응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TF는 또한 "소녀상은 민간단체 주도로 설치된 만큼 정부가 관여하여 철거하기 어렵다고 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쪽은 이를 합의 내용에 포함시켰다"면서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기로 약속하지 않은 의미가 퇴색했다"고 비판했다.

TF 조사 어떻게 이루어졌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는 지난 7월 3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직속으로 위안부 합의의 경위와 내용을 검토하고 평가하는 TF를 구성했다. TF에는 오태규 전 관훈클럽 총무(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를 위원장으로 한일관계, 국제정치, 국제법, 인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9명이 참여했다. 약 5개월간 TF는 외교부 문서를 포함해 청와대와 국정원 자료를 검토했고, 협상의 주요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TF는 (1) 피해자 중심적 접근 (2) 보편적 가치와 역사문제를 대하는 자세 (3) 외교에서 민주적 요소 (4) 부처 사이의 유기적 협력과 소통을 통한 균형 잡힌 외교 전략 마련이라는 4가지를 기준을 중심으로 내용을 파악하고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향후 이 위안부 합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외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할머니 32명 전원에게 해법을 듣고 학계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향후 정부 정책 방향에 있어) 모든 옵션을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태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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