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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온 산을 하얗게 덮고 또 덮고.. 중봉에서 백암봉 송계삼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눈이 온 산을 하얗게 덮고 또 덮고.. 중봉에서 백암봉 송계삼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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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부대끼는 겨울은 힘겨워도 하얀 눈이 내려앉은 겨울 산은 낭만으로 다가온다. 세상사 온갖 걱정 근심을 다 떨쳐 버리고 그저 눈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 지난 4일 덕유산(1614m) 산행을 떠나는 새송죽 산악회를 따라나섰다.

오전 8시 창원시 마산역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무주덕유산리조트(전북 무주군 설천면)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20분께. 곤도라 승차장으로 바로 이동해 8인승 곤도라를 이용하여 설천봉(1520m)을 향해 올라갔다. 곤도라에 탑승한 지 15분이 지나자 설천봉에 이르렀다.

    곤도라 타고 설천봉(1520m)으로~
 곤도라 타고 설천봉(1520m)으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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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쁜 그림엽서 같은 설천봉의 설경
 이쁜 그림엽서 같은 설천봉의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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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적봉 정상을 향해
 향적봉 정상을 향해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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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라에서 내리자 설천봉의 설경이 너무 이뻐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하얀 겨울왕국에 발을 내딛는 듯한 설렘이 일었다. 나지막한 의자로 가서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한 후 향적봉으로 가기 위해 설천이동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걸어갔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그림엽서 같은 아름다운 풍경에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20분 정도 걸었을까,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산객들로 복작복작한 가운데 반갑게도 연세가 일흔여섯 되시는 일행과 마주쳐 함께 중봉으로 향했다.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서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서
ⓒ 김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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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적봉 정상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에
 향적봉 정상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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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고달프고 서러운 우리들 삶을 보는 것 같았던 고사목을 지나며
 마치 고달프고 서러운 우리들 삶을 보는 것 같았던 고사목을 지나며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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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가서 흰 눈이 지붕에 푹신한 솜이불처럼 소도록하게 쌓인 향적봉대피소가 나왔다. 여기서 중봉으로 가는 길에 주목과 구상나무 군락지가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을 바라보면 오랜 세월을 굳건히 버텨 온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흐느적거리는 듯 외로이 서 있는 고사목 앞에 서자 왠지 고달프고 서러운 우리들 삶을 보는 것 같아 괜스레 슬펐다.

낮 12시 남짓 되어 중봉(1594.3m)에 도착했다. 한곳에 모여 앉아 점심을 하고 있는 산객들의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우리는 쉬지 않고 이내 백암봉(1503m) 송계삼거리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차가운 바람 한 점 없이 꽤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추울까 봐 옷을 몇 겹이나 껴입어서 그런지 도리어 더울 지경이었다.

   멀리 걸어가는 산객들의 모습이 하얀 눈길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멀리 걸어가는 산객들의 모습이 하얀 눈길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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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을
퉁겨내듯 가볍게 잡아당긴다
귓속에서 속삭이는
아니, 발바닥이 직접 듣는 바삭 소리

모든 것을 하얗게
지워버리는 하양

끝없이 점멸하는
일만 가지 색채의 까망.

- 황인숙의 '눈길'

눈이 소복소복 쌓여 온 산이 하얗다. 어쩌면 가장 화려한 색깔이 하얀색이리라. 모든 것을 새하얗게 덮고 또 덮어 보물처럼 꼭꼭 숨겨 놓았다. 평탄한 눈길에서 갑자기 달리고 싶은 충동에 이끌려 콧노래도 나지막이 흥얼거리며 짧은 거리나마 뛰어 보기도 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산객들의 모습이 하얗게 변해 버린 산길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주고, 눈부신 눈길에 취해 걸어가는 내 뒷모습 또한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풍경이기를 소망했다.

모처럼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고
ⓒ 김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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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봉 송계삼거리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송계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횡경재까지 거리가 3.2km, 횡경재에서 산행이 마무리되는 도착 지점인 덕유산국립공원 남덕유분소까지 거리가 또 3km 해서 도합 6.2km라 만만치 않았다.

엄청 눈이 쌓여 있어 말 그대로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갔다. 그래도 앞서 지나간 산객들이 움푹 흔적을 남겨 놓은 발자국 따라 발을 디뎌 괜찮았는데 워낙 눈이 두껍게 쌓인 길이다 보니 다리에 힘을 주어야 해서 훨씬 피곤했다.

더군다나 가파른 내리막이 많아 참 힘든 길이었다. 그럼에도 깊은 고요 속에 모든 것이 멈추어 서 있는 듯한 한가한 겨울 풍경이 이어지면서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원도 한도 없이 눈길을 실컷 걸었다. 그것도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이라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남덕유분소(경남 거창군 북상면)에 오후 3시 40분쯤 도착했다.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함안 군북에 위치한 식당에 들러 따끈한 돌솥밥을 먹었다. 맛난 반찬에 소주 몇 잔 걸치니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듯했다.


태그:#덕유산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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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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