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와 함께 간 패키지여행에서는 같은 질문이 무한반복 됐다. "남편과 애는?"
 엄마와 함께 간 패키지여행에서는 같은 질문이 무한반복 됐다. "남편과 애는?"
ⓒ pixabay

관련사진보기


15년 전쯤, 내가 삼십대 초반일 때 엄마를 모시고 뉴질랜드와 호주로 패키지여행을 갔다. 대략 25명이 한 팀을 이루어 이동하는데, 일단 안면을 트고 나면 자연스레 호구 조사가 이뤄진다.

그때만 해도 모녀가 해외 여행을 다니는 게 흔치 않을 때라, 함께 가는 어르신들 눈에는 내가 꽤 효녀로 보였던 모양이다. "착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은 걸 보면. 하지만 그만큼 견뎌야 하는 불편함은 꽤 컸다. 내가 싱글인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걱정과 걱정을 빙자한 어르신들의 잔소리가 이어지곤 했다.

"왜 아직 결혼을 안 했어?"
"더 늦어지면 아무도 안 데려가. 얼른 가야지."
"엄마가 더 나이드시기 전에 효도해. 그래야 얘도 봐주지."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휴식시간 때마다 내 결혼은 종종 대화의 소재가 되어서 점점 가시방석이 되었다. 처음에는 마음을 써주는 것 같아 감사하게 여겼지만 좋은 말도 한 두 번이지, 그분들은 각자 한 마디 얹는 거지만 내 입장에서는 똑같은 말을 계속 들으려니 고역이었다. 더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걱정의 강도가 점점 세진다는 점이었고, 마흔을 넘기면서는 질문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떻게 하고 혼자 왔어?"
"아이들은 몇 살인데 친정 엄마하고만 왔어요?"

어느 순간부터 난 강제로 유부녀, 아이 엄마로 소환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마흔 살을 넘은 여자를 볼 때 생각할 수 있는 옵션에는 '아이가 있는 기혼녀'밖에 없는 듯 했다. 그게 보편적인 정서이니 처음에는 불편해도 참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아니, 남편 있으면 친정 엄마하고 둘이 여행 못 오나? 남편이라는 존재는 아내 없이 며칠도 혼자 못 지내는 모자란 성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결혼 안 했다고 말하면 당황하면서 순간 묘하게 바뀌는 눈빛을 받을 때의 씁쓸함이란. 결국 서로 어색해 하거나 침묵 속에 황급히 다른 주제로 넘어가곤 했다. 왜 그런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대체로 그랬다.

최근 2년간 역시 싱글인 오빠와 나, 엄마가 함께 패키지여행을 했다. 첫 여행 때는 오빠와 내가 부부인 줄 알았는지 별 관심을 안 보였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주던 가이드가 우리가 오누이 사이임을 알고는 일행들에게 대단한 뉴스라도 되는양 말했다.

"이 팀은 '특이하게' 남매가 엄마를 모시고 왔어요."

그 순간 우리는 '보통'에서 '특이한' 사람들로 강제적으로 분류되었다.  '저 집은 뭐지?' 하는 사람들의 표정 변화가 온몸으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소위 말해 '정상'이었다면 절대로 받지 않았을 시선이다. 그러다가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분들은 와서 기어이 엄마에게 슬쩍 물어봤다.

"며느리하고 사위는 어떻게 하고 왔어요?"

엄마 역시 그런 질문들이 불편했는지 여행 가면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사교성 좋은 엄마가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모습을 보면, 공연히 죄송하다가도 스물스물 화가 올라온다. 죄 지은 것 없이 죄인이 되어 버리는 상황에 대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한 것이 없었다.

이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시대다. 부부, 엄마아빠와 아이들이 있는 4인 가족, 시댁식구들과 아들 부부, 처가 식구들과 딸 부부. 이런 가족 형태만이 정상적인 건 아니다. 주류가 아니라서 해서 이상하게 보고 가십의 대상이 되는 건 편협한 시선이 저지르는 폭력이다.

물론 사회는 많이 또 빠르게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난 여전히 싱글(특히 나이든)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에 부당함을 강하게 느낀다. 싱글인 것이 잘못도 아닐 뿐더러,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싱글로 살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닌 것들로 인해 내가 뭔가 '평범하지 않음, 혹은 이상함'을 강제적으로 확인당할 때 이런 생각을 한다. 난 고작 '싱글'인 것만으로도 이러한데 더 큰 편견과 싸우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끔찍할까.

사실 불편한 질문을 받기 싫어서 유부녀인 척 할 때도 있었다. 남편은 어떻게 하고 왔느냐는 질문에 "회사 일이 바빠서 그냥 엄마하고만 왔어요" 하면 호기심과 의심 어린 눈빛은 금세 휘발되었다. '아, 드디어 이제는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천만의 말씀.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필수 옵션처럼 따라 붙는 질문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몇 살인데 두고 왔어요?"

거짓말로 꾸며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버버' 하면서 당황했고,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가까스로 상황을 모면해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 싫으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불편해지고 여행의 재미도 떨어졌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당당하게 불편한 쪽을 선택해서 싱글임을 밝힌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드러내는 만큼, 나이 많은 싱글을 보는 편견 가득한 시선에 대해 가끔은 정색하며 이야기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말하지 않으니 이해 못한 채로, 함부로 오해되어지는 것 같아서 나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 것에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쏟느니 그냥 차를 렌트해서 우리 가족끼리만 다녀야 하나 갈등하기도 했으나 난 악착같이 패키지를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하겠지만, 부당한 불편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내 나름의 저항이다. 누가 아나? 몇 년 뒤에 이런 형태의 가족 여행이 유행하게 될지.


태그:#비혼, #해외여행, #패키지, #결혼에대한질문, #비혼일기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