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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30일, 개포8재건축 단지, 용역들이 분사한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쓴 세입자들이, 집행 차량을 막고 있다.
 2017년 5월 30일, 개포8재건축 단지, 용역들이 분사한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쓴 세입자들이, 집행 차량을 막고 있다.
ⓒ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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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촌 궁중족발에 세 번째 강제집행이 실시됐다. 서촌 궁중족발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월세를 300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올린다는 '임대료 폭탄'을 맞았고, 강제퇴거 과정에서 용역 폭력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 연말,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뉴타운 개발 지역 중 하나인 장위 뉴타운 7구역에서는 서울시의 동절기 철거금지 원칙이 무색하게 수차례의 철거가 진행됐다.

뿐만 아니다. 청량리 4구역 도시환경정비 사업 지역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지난해 12월 개발사업에 뛰어들어 40억 원가량을 챙긴 지역 조직폭력배 두목이 구속되면서 개발업자와 공무원까지 연계된 '재개발 비리백화점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주민 중 90% 가까이가 세입자인 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 지역에선 한밤중에 용역들이 문을 두드리면서 이사를 종용하고 겁박하고 있다. 개포8단지 강제집행 때는 400여 명의 용역들이 상가 세입자 10명 모여 있는 좁은 공간에 소화기 8대를 난사하면서 끌어냈다.

강제집행이 있는 곳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여기, 사람이 있다"... 9년 뒤

2009년 1월 19일 밤. 서울 용산로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지역 5층 건물 옥상에 철거민들이 농성을 위해 설치한 가건물이 들어서 있는 모습.
 2009년 1월 19일 밤. 서울 용산로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지역 5층 건물 옥상에 철거민들이 농성을 위해 설치한 가건물이 들어서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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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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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전 혹은 몇 개월 전에 발생한 폭력적인 강제퇴거의 현장 그리고 그 속의 절규 앞에서 우리는 1월 20일 '용산참사 9주기'를 맞는다. 2009년 1월 20일, 수많은 시민들은 '지금 시대에 어떻게 이런 폭력적인 강제퇴거와 야만적인 진압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국회 등 정치권은 '용산참사 재발방지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가족과 생존 철거민들의 한 맺힌 시간이 2009년 1월 20일에 갇혀있는 것처럼,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폭력적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삶터에서 내몰리는 사람들의 시간은, 청소차량에 실려 강제 이주당한 1971년 광주대단지에, 20여 명이 불타죽고, 맞아죽고, 건물 잔해에 깔려죽은 1980년대에 그리고 2009년 1월 20일 용산에 멈춰져 있다.

'재개발' '재건축' '도시환경정비'라는 이름으로, '계약갱신' '월세폭등'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이름만 다를 뿐이었다. 철거민들은 삶과 생존의 공간에서 대책 없이 내몰리며 벼랑 끝으로 등 떠밀렸다. 쫓겨날 수도, 쫓겨날 곳도 없다고 버티면 어김없이 '집행'이라는 법적 이름으로 포장한 용역깡패의 '폭력'이 따라왔다.

"여기, 사람이 있다."

2009년 용산 철거민들의 이 절규는 단 한 차례의 대화조차 없이 진압당했고, 죽임당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과 법원은 그 비인륜적인 진압과 참사를 '법 질서의 수호'라고 기록했다. '법 집행'이라는 이름을 단 폭력적 강제집행은 소수의 개발 기득권 세력이나 한 사람의 건물주의 탐욕만을 위해, 공권력과 사적 폭력의 결탁한 명백한 폭력이고 인권침해였는데 말이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강제퇴거를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규정하고 있고, 국가는 강제퇴거를 예방하기 위한 입법·사법·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유엔 사회권위원회(ICESCR)에서도 한국 정부의 사회권 심의에서 "퇴거에 대해 적절한 절차상의 보호 장치를 법률을 통해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거주민에 대한 '테러'는 없어야 한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철거민들을 제압하고 있는 모습.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철거민들을 제압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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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잘못된 법을 바꿔야 한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의 재산권 수호 논리로 짜인 현행 관련 법(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행정대집행법, 민사집행법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제도 아래서 '쫓겨날 수 없다'면서 저항한 용산 철거민은 '법 질서에 도전하는 도심 테러리스트'라 명명됐다. 우리는 아직까지 이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쫓겨날 수 없어 버티는 데서 끝나선 안 된다. 대책 없이 폭력적으로 쫓아내는 것이 불법이라고, 거주민에 대한 테러라고 법률로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용산 참사 이후 퇴거 당사자들과 인권시민사회에서 만든 '강제퇴거금지법'은 몇 차례의 국회 입법 발의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강제퇴거는 집이나 가게에서 쫓겨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생계와 사회적 관계, 삶의 전반을 후퇴시키는 문제다. 그렇기에 '강제퇴거금지법'은 퇴거 이전 수준과 동등한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재정착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강제퇴거를 금지하자는 것을 기본 골간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이 법은 개발사업에서의 '인권영향평가' 제도 실시를 명시하고 있다. 현재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개발사업으로 인해 교통·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리 예측·분석해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처럼, '인권영향평가'는 개발사업 계획 수립에 앞서 사업이 주민의 인권에 끼칠 영향을 미리 헤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인권영향평가는 무엇보다 강제퇴거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반영해 거주민들의 재정착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도 그 역할을 할 것이다. UN의 <개발로 인한 퇴거와 이주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들>(2007, 주거권특별보고관)에서도 '퇴거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모색하는 것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계획 수립 전에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영향 평가를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다른 용산'은 안 된다

2017년 12월 장위뉴타운7구역 폭력적인 동절기 강제집행 현장.
 2017년 12월 장위뉴타운7구역 폭력적인 동절기 강제집행 현장.
ⓒ 장위7구역가옥주-상가세입자철거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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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최소한 폭력적인 강제퇴거만은 막아야 한다. 1987년 국제주거연맹(HIC)은 한국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게 강제철거를 집행하는 나라로 지적했다. 그로부터 30년의 시간이 흘렀고, 9년 전 용산 참사를 겪었지만 여전히 폭력적인 용역깡패들이 동원되는 강제퇴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강제퇴거가 주로 '용역깡패'라고 불리우는 사적 폭력에 의해 집행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의 폭력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용역 폭력을 규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집행 관련 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의 명도집행형식으로 이뤄지는 강제퇴거 현장에서 집행관과 배치·신고된 집행 용역 외에 건물주·개발조합이 동원한 사설 용역이 '인부'라는 형태로 동원돼 집행법의 사각지대에서 폭력을 주도한다. 이런 폭력만이라도 막기 위해서는, 집행관련법의 개정을 통해 최소한 법원 집행관 외에 불법적인 사설 용역이 동원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

9년이 지난 용산 참사. 하지만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우리들의 절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절규에 이제 정부와 국회는 올바른 법과 제도로 답해야 한다. 개발세력과 건물주의 탐욕에 의해 쫓겨나는 사람들의 생존 공간이 '또 다른 용산'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일상을 빼앗아가는 개발, 하늘 끝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강제퇴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건물은 철거해도 삶은 철거할 수 없다'는 철거민들의 구호처럼, 그곳에 그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원호씨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용산참사, #강제퇴거, #철거민, #강제철거,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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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빈곤사회연대, 주거권네트워크, 도시연구소 등에서, 주거권 관련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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