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독서가들이 띠지를 두고 하는 영원한 고민거리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띠지는 애물단지다. 왜 띠지를 만들어서 버릴 것인지 말 건지 고민을 하게 만드냐는 것이다. 그냥 두자니 책을 읽을 때도 불편하고 오래 두면 표지의 다른 부분과 띠지로 덮인 부분의 색깔이 달라진다. 버리자니 돈을 주고 산 상품의 원형이 손상되는 것 같아서 찜찜하다.

많지는 않지만, 책을 읽을 때는 띠지를 벗겨 놓았다가 다 읽으면 다시 띠지를 씌우는 독자들도 있다. 띠지에 적힌 홍보문구가 재미있으면 따로 보관한다는 사람도 있고 책을 읽을 때 띠지가 구겨질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읽고 나면 모두 따로 파일에 소장하는 독자도 있다. 띠지를 보관하는 경우는 대체로 띠지를 책이라는 완성품의 부속품으로 생각하거나 띠지 자체가 책 디자인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다.

각종 책 띠지들
 각종 책 띠지들
ⓒ 최은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띠지를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편인데 띠지가 있는 책을 사면 띠지를 즉시 벗겨서 책갈피로 사용한다. 물론 책을 다 읽으면 따지는 버린다. 가끔 띠지가 원래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거나 띠지가 표지 디자인의 일부가 되는 경우는 다시 씌우기도 한다.

나보다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은 띠지를 몇 조각으로 잘라서 편지 모양처럼 접은 다음 책갈피로 만든다. 상황에 따라 유연함을 발휘하는 독자는 예쁜 띠지는 보관하고 못생긴 띠지는 가차 없이 버린다.

국내 1세대 북 디자이너인 정병규씨에 따르면 띠지가 처음 시작된 곳은 프랑스라고 한다. 출간된 책이 공쿠르상이나 노벨상을 받으면 띠지를 따로 만들어서 상을 받았다는 내용을 홍보했다는 것이다. 띠지를 처음 만들기는 했지만, 요즘에는 띠지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띠지를 빈번히 사용한다.

띠지를 여간해서 제작하지 않는 요즘 서양 출판계의 생각은 이렇다. 공을 들여서 표지 디자인을 멋지게 했는데 괜히 띠지를 씌워서 디자인을 망칠 필요가 뭐가 있냐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확실히 서양의 표지 디자인은 우리 책보다 더 세련되고 창의적이다.

원조도 포기한 띠지를 우리나라 출판계가 포기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열악한 국내 출판계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내가 출판계 인사도 아닌지라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마도 책을 내고서 별다른 홍보 수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띠지에는 보통 수상 내용이나 판매 부수 그리고 그 책을 홍보하는 강렬한 문구 등이 들어간다. 이런 띠지를 씌우면 그나마 독자들이 한 번이라도 눈길을 더 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일 게다.

띠지는 독자들도 귀찮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불리한 구석이 있다. 서점에서 책을 사는 독자들은 띠지가 조금이라도 손상이 되면 파손된 책이라고 생각을 하고 사지 않는다. 당연히 출판사로 반품이 될 터이고 바쁜 출판사 직원들은 일삼아 띠지를 새로 씌워야 한다. 그런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달리 책을 홍보할 수단이 부족한 출판사는 띠지를 포기하지 못한다.

신문이나 잡지의 신간 소개란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달리 마케팅을 하려고 해도 영세한 대부분의 출판사 입장에서는 엄두도 못 낸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띠지가 마냥 미워할 수는 없다. 서점을 둘러보다가 예쁜 띠지를 발견하면 "나 사주세요!"라고 외치는 것 같다.

독일에 있는 한 서점은 좀 색다른 띠지를 만든다. 출판사에서 일괄적으로 띠지를 만든 것이 아니고 서점에 근무하는 직원이 띠지를 만든다. 직원들이 먼저 책을 읽고 보고 그 책에 대한 평이나 추천하는 이유를 띠지에 적는 방식이다. 띠지에 빼곡하게 추천 평을 적는 예도 있고 '이 책을 페미니스트에게 권합니다'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적기도 한다.

모든 띠지에 작성한 직원의 이름을 적는다. 띠지에 적힌 추천 평을 읽고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 직원에게 질문을 하게 하는 방식이다. 지성적인, 지극히 지성적인 띠지다. 이런 띠지라면 그야말로 소장 가치가 넘친다.

띠지에 관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읽은 책을 중고로 팔 생각이 있는 사람은 띠지를 잘 보관해야 한다. 중고 책을 사놓고선 띠지가 없다고 반품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태그:#띠지, #책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