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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의 양심 노암 촘스키, 미국 1세대 환경운동가 웬델 베리, 안타깝게 지난해 타계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 법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환경·반핵·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 물리학자이자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 등.

시대의 화두를 고민했던 세계 지성들과 잇따라 만난 인터뷰어 안희경 작가는 그동안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등 '문명 3부작'을 펴냈다. 최근에는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어크로스 페미니즘>까지. 안 작가가 세계 지성들과 나눈 대화에서 직접 뽑은 '책갈피'를 소개한다.

● <문명, 그 길을 묻다 –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안희경 작가의 '문명 3부작' 두 번째 책인 <문명, 그 길을 묻다>(이야기가있는집, 2015).
 안희경 작가의 '문명 3부작' 두 번째 책인 <문명, 그 길을 묻다>(이야기가있는집, 2015).
ⓒ 이야기가있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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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 감정이 복받쳤다. 인터뷰 당시에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한국인들이 가졌던 통일 열망'이라는 촘스키의 언어가 갖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었다. 정리하며 복기하는 동안, 그 말은 내 기억 멀리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실향민인 외가 어른들을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는 남쪽을 택해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존경하는 김구 선생께 서운함이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리원에 살던 평범한 고등학생이 가졌던 통일의 꿈, 조국에 대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촘스키의 말에서 윗세대의 순정어린 청년기, 책에서 혹은 증언을 통해 들은 통일 조국에 대한 그들의 목숨을 건 열망들이 한꺼번에 덮쳐왔다.

그렇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잊었지만, 촘스키는 기억하고 있었다. 사는 것이 팍팍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못하는 가치들은 뒷전으로 밀린 시절, 통일도 저잣거리 셈으로 헤아려 이문이 남아야 솔깃해지는 팍팍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통일을 속세의 논리로 이해하기에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거라는 그의 말이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차원이라는 그 말에서 또 한 번 가슴을 베듯 현실이 아팠다.

<문명, 그 길을 묻다> 129쪽, 행동하는 지성인의 양심 노암 촘스키

이번 만남에서 나는 촘스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2년 전 그 질문에 내게 보여줬던 눈빛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걸 왜 묻느냐며 애처로이 바라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이미 알고 있어요. 1980년대 그때 한국인들은 잘 조직됐고, 함께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매우 용감하게, 매우 효율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던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무너뜨렸죠. 그 땅에서 대단한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바람을 불러일으켰죠. 그때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해냈습니다. 기회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많아요. 당신들은 오직 당신의 역사만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답은 곧 우리 안에 있고 그걸 찾고자 나선 개인이 모여 큰 합을 이룰 때 시대정신으로, 세상을 흔드는 파도로 일어나 희망은 현실이 될 것이다.

<문명, 그 길을 묻다> 130~131쪽, 행동하는 지성인의 양심 노암 촘스키

그의 말은 북한의 기근에 대해 원톄쥔이 했던 주장을 생각나게 했다. '소련이 붕괴되고 북한에 석유 공급이 끊기면서 경제 위기가 왔을 때, 일찌감치 농업 산업화를 완수한 북한의 농토에는 모든 농기계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람이 들어가서 쟁기질을 해야 했는데, 도시의 노동 인력들은 농사짓는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농촌의 농부조차 쟁기질을 할 줄 몰랐다'라는 말을 웬델에게 들려주었다. 기계화된 영농에 완전히 의존하다 보니 인간 노동으로 농사짓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가뭄이 드니 생산량은 곤두박질을 치고 대기근에 빠지게 되었다. 이 말을 마치자 웬델은 비수 같은 한 마디를 읊조렸다.

"그들은 문화를 잃어버린 겁니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우리가 잃은 것은 생산량이 아니라, 문화였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무능한 루저가 되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수만 가지 소통법을 잃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고받던 언어를 잃었으며, 무엇을 멀리 하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면서 사는 법도 잃어버렸다. 결국 '나'를 잃은 건지도 모른다.

<문명, 그 길을 묻다> 354~355쪽, 미국 1세대 환경운동가 웬델 베리


● <사피엔스의 마음 – 기만당하지 않고 어떻게 당신을 지킬 것인가?>

안희경 작가의 '문명 3부작' 세 번째 책인 <사피엔스의 마음>(위즈덤하우스, 2017).
 안희경 작가의 '문명 3부작' 세 번째 책인 <사피엔스의 마음>(위즈덤하우스, 2017).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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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 :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갑더라도 나에게만은 너그럽다는 그 유일함을 믿으며 사랑에 빠지죠. 까칠한 사람들이 풍기는 매력이 개인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인기 있습니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 신드롬요.

지그문트 바우만 : 그럴 수 없어요. 첫 말다툼이 있고 나면 그냥 멀어집니다. '자, 이제 다른 누군가와 다시 시작하자! 내가 여기서는 얻지 못한 이상적인 사랑을 찾아서 출발!' 바로 오늘날의 파트너십이 깨지기 쉽고 잘 부서지는 이유예요.

사람들은 진실에 머무르려 하지 않아요. 진실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은 발견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중요해요. 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레디메이드(ready-made)도 아니에요. 사랑은 지속적인 작업이에요. 끊임없는 노동입니다. 매일 아침 당신 앞에는 사랑하기 위해 다시 창조하고, 다시 규정하고, 다시 버리고 조정해야 하는 24시간이 놓여요.

<사피엔스의 마음> 130~131쪽

안희경 : 세뇌 당하지 않고 자기 답을 얻으려면 전체 판을 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마루야마 겐지 : 판이 아니에요. 점 하나를 봐야 합니다. 나는 오프로드 바이크를 탑니다. 한쪽이 절벽인 곳을 돌아 달릴 때는 빠르게 급커브를 틀어야 살아 나올 수 있습니다. 아마추어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가늠하려 하지만 프로는 출구 하나만 응시해요.

전체를 보겠다고 두리번거리면 시선이 애매해져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왜 점 하나가 중요할까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장 중요한 한 점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그 지점이 우리 마음을 단단히 다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지식인 중에 외국 신문, 일본 신문을 죄다 이 잡듯 읽는 이들이 있어요. 뭔가 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겠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몰라요. 우리가 자기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사피엔스의 마음> 173~174쪽


● <어크로스 페미니즘 –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주제별 대화를 담은 안희경 작가의 책 <어크로스 페미니즘>(글항아리, 2017).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주제별 대화를 담은 안희경 작가의 책 <어크로스 페미니즘>(글항아리, 2017).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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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 : 오늘 당신이 조국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한 언어들은 꽤 암울한데요.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리베카 솔닛 : 물론이죠. 그 무엇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으니까요. 1990년 새해를 맞아 돌린 제 연하장엔 체코슬로바키아 거리에 있는 스탈린의 흉상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의 목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죠.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희망은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는 전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게 바로 희망이죠. 그리고 세상에는 싸울 가치가 있는 일이 있습니다.

어쩌면 트럼프는 이 나라가 맞을 수 있는 최악의 재앙인지도 몰라요. 반면에 그가 3개월 안에 신경쇠약에 걸릴지도 모르고, 프라이드치킨을 먹다가 목에 걸려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외교관 영부인의 엉덩이를 움켜쥐다 망신당해 하야할 수도 있고요. 탄핵을 당할 수도 있겠네요. 엄청난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으니까요.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최악으로 만드는 데 협력하는 행위라는 것. 참여하고, 참여하지 않는 데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크로스 페미니즘> 64~65쪽

안희경 : 당신은 1인당 GDP가 증가할수록 국민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세계 경제 주체들의 시각을 바꿔냈습니다. 불평등이 심한 국가에서는 경제성장이 전체 국민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데 별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 냈죠. 대안으로 '인간개발접근법'을 제시했고, 지금은 UN과 EU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매년 인간개발지수(HDI)를 발표합니다. 경제, 환경, 자원, 노동여건 등 모든 분야에서 위기가 만연한 시대에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약자들이......

마사 누스바움 : (말을 자르며) 바로 그 모든 약자를 존중함으로써요. 경제적 정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구는 질 낮은 교육을 받아도 되고, 일할 기회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동안, 평등을 추구하는 일은 어떤 분야에서건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인간의 역량을 개발하기란 참으로 복잡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매우 품위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못 끔찍할 수도 있거든요. 저는 노동계급의 삶이 반드시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엄청나게 성 차별적이고, 호모포비아적이었답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의 기본을 보장받는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줄어들 거예요. 두려움이 줄면 서로의 유대가 강화되고 혐오도 줄어들죠. 우리 자신이 취약할 때 다른 집단에게 그 탓을 돌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생기거든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고, 삶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교육의 기회를 모두가 누리게 하는 안전망이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불안은 훨씬 더 줄어들 겁니다. 사람들은 희생물을 훨씬 덜 찾게 될 거예요.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의 성과 장애, 동물에 대한 시선 등 여러 분야에서 느끼는 불안을 각각 분리해서 생각하고, 그에 대처해야 합니다. 인종 갈등에 주거분리 문제가 얽혀있듯, 각각의 갈등에는 서로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대안도 달라질 수밖에요. 그러니 지금 당장 모든 차원에서 진보를 이루자고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며 꾸준히 싸워나가는 겁니다.

<어크로스 페미니즘> 151~152쪽

안희경 : 또 다른 성차별주의 아닐까요? 여성만이 옳고, 여성만이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반다나 시바 : 아니죠. 현실을 직시하는 겁니다. 남성들이 거부감을 가질 일이 아니에요. 그들도 함께 에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에코 페미니즘은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에코 페미니즘은 우리가 가진 마음의 종류입니다. 단순합니다. 알아차리는 거예요. 자연은 살아있고, 창조적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자연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고, 생명이 아닌 원자재이므로 마구 써버려도 된다는 패러다임, 이는 여성은 집에서 놀고 먹는다고 주장하는 구조와 같습니다. "여성은 창조적이지도 않고, 사고할 줄도 모르며, 두뇌도 없다"고 말하죠. "여성은 이류, 남성은 일류이며 여성은 남성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자연과 여성에 대한 이 두 가지 패러다임은 하나로 작동해요. 자본주의식 가부장제입니다.

돈을 벌어오는 이를 맹목적으로 떠받들고, 당연히 그 자리는 남성 권력이 독점하는 이념으로, 시스템으로 자리합니다. 그러는 사이 여성은 모든 인류가 해야 할 일을 도맡도록 강요받아왔어요. 가부장제 국가에서 경제 시스템이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 여성들은 가정에 구속되어 있어야 했죠. 그 과정에서 우리 할머니들은 대부분의 산업화 사회에서 잊힌 원리, 생명이 순환되고 창조되는 원리를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은 천성이 집안일에 잘 맞아서가 아니라, 그 일을 하라고 강요 받았기에 그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실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해온 겁니다. 우리 삶을 돌보고 유지시키는 일이니까요. 여성성은 세상을 바르게 알아차리는 인식 능력입니다. 생태 농사를 짓는 농부가 화학 농사에 빠진 농부를 자연으로 되돌리도록 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어크로스 페미니즘> 223~224쪽


태그:#노암촘스키, #지그문트바우만, #반다나시바, #마루야마겐지, #안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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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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