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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가 서지현 검사에게 2010년 성폭력 피해 당시에 관해 질문하고 있다.
 손석희 앵커가 서지현 검사에게 2010년 성폭력 피해 당시에 관해 질문하고 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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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한 데 이어 당일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했다. 서 검사는 떨리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했고, 같은 입장에 있을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위안과 지지를 건넸다. 그리고 그 용기 있는 고백은 '미투(Me too) 운동'으로 이어져 묻혀있던 많은 목소리들을 끌어내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뉴스룸과 손석희 앵커에게도 칭찬이 쏟아졌다. 서 검사의 폭로글이 시작점이었다면 뉴스룸 인터뷰는 이를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논했고, 다른 누군가는 인터뷰어로서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앵커의 뛰어난 능력을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보는 동안 손석희 앵커의 질문 하나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서 검사가 2010년 피해 당시의 기억을 힘겹게 더듬어 이야기 한 직후의 물음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물론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겠죠?"

이 질문에는 '성폭력 피해자는 당연히 바로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성폭력이 발생하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그 순간에 피해자가 이를 제지하고 잘못을 지적하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일단 놀라고 당황스럽기도 하거니와, 약자인 피해자가 결코 '말할 수 없게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서 검사도 아래와 같이 답했다.

"주위에 검사들도 많았고 또 바로 옆에 법무부 장관까지 있는 상황이라서 저는 몸을 피하면서 그 손을 피하려고 노력을 하였지 제가 그 자리에서 대놓고 항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질문은 잘못 나아가면 자칫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기도 한다. 성폭력 이슈를 대할 때 우리가 흔하게 마주하는 두 가지 반응이 있다. 하나는 '왜 미리 조심하지 않았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 그때 더 강하게 문제제기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전자는 원인 제공의 책임을, 후자는 사후 처리의 책임을 모두 피해자에게 떠넘긴다. 이렇게 손쉬운 책임 전가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도록 만든다. 

서 검사가 검찰 통신망에 업로드한 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만약에 괜한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기에게 그런 오지랖을 보이지 않았더라면...만약에 그날 검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서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강의에 가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계획대로 콘서트장에 갔더라면...(중략)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물론 손 앵커는 특별한 의도 없이 그저 서 검사의 대처가 궁금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독 그 질문이 무례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에게 "이건 잘못됐다"고 말했는지 여부는 우리가 궁금해야 할 지점이 아니다. 만약 손 앵커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것이고, 알면서도 '피해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걸' 듣기 위해 한 거라면 더 문제다. 다른 표현으로도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었다.

질문 한 줄에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손 앵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중 한명이며, 이 발언이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고, 이후에도 후속보도를 비중있게 이어가는 그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쏟아져 나오는 또 다른 서지현들의 무수한 고백 앞에서 우리는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때로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존중이자 배려일 수 있다.


태그:#서지현, #손석희,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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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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