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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매서운 한파가 불어 닥친 바깥과 달리 경기장 내부는 열기로 후끈했다. 남북 여자아이스하키단일팀(코리아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 단일기(한반도기)를 들고 웃음과 울음으로 얼굴이 범벅된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다. 실로 오랜만에 맞는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사람들을 때 이른 봄으로 이끌었음을 실감했다. 혹독한 입춘(立春)추위가 물러나고 있지 않을지언정, 이토록 간절한 뭇사람들의 염원에 힘입어 한반도에 완연한 봄은 찾아올 것이다.

경기의 시작은 오후 6시. 오후 4시가 되기 전 경기장 앞에 이르러 여러 뒤섞인 장면들을 마주했다. 사실 "태극기를 들고 가는 사람들을 봤다"는 후배의 말에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곧 배치된 경찰버스들과 경찰들이 보이더니 곧 웅성웅성한 소란을 목격했다. 과격한 구호와 성조기와 태극기가 모인 진입로는 시끌시끌했다.

얼마 전 평창겨울올림픽을 비판하며 논란이 된 노래 <평창유감>의 노랫말도 드문드문 들려왔다. 경찰력에 통제당한 올림픽 반대집회는 경기장 바로 앞까진 다다르진 못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경기장 쪽에선 평화통일과 남북단일팀을 환영하는 온갖 환희들이 어려 있었다. '평양올림픽'을 부르짖으며 일그러지고 과잉된 길 건너편의 험악한 분위기가 이곳에 이를 여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아이스하키팀의 경기장면을 선보이는 퍼포먼스가 끝나고 "전국을 평창으로 만들자"를 앞세운 민중당의 기자회견이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 "입춘이지만 땅 속에선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평창서포터즈 제안을 국민께 드린다" 등의 발언이 잇따랐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그동안 언론에서 보도하던 전쟁위험, 긴박한 한반도 정세의 소식일랑 걱정하지 않고 '코리아팀'을 맞이하며 즐기는 사람들과 현수막이 즐비했다. 적어도 여기에서만큼 전쟁과 분단은 없었다.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입구 주변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바깥의 모습.
▲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입구 주변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바깥의 모습.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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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을 손에 쥐고 몰려든 사람들 속 단일기와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와 한반도가 그려진 수건이 눈에 잘 들어왔다. 응원단의 응원내용과 응원준수사항이 적힌 파란 유인물도 함께. 입장 시각이 다가오자 길게 늘어선 인파를 바라봤다. 노년층, 중장년층, 청년층, 어린이에 아기들까지. 입장을 돕는 스태프를 향해 절로 "반갑습니다"가 나오는 모습 하며 입장권의 절취선이 끊기는 순간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경기장으로 들어서며 언덕을 오르다 뒤 돌아봐 단일기를 흔드는 사람들, 내외신 카메라들의 취재열기에 '우리는 새 역사가 열리는 한 복판에 우뚝 서 있구나'라는 감각이 강하게 스쳐갔다. 줄이 서서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프레스존(기자구역)을 찾아 신분증을 제시해 취재용 기자목줄을 따로 발급받았다. 경기 이후 인터뷰가 열릴 지하회장을 미리 찾아 휙 둘러보고 군중들이 가득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모습. 양 팀 선수들이 경기 시작을 앞두고 마주 서 있다.
▲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모습. 양 팀 선수들이 경기 시작을 앞두고 마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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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25분쯤 코리아팀과 스웨덴팀이 빙상을 날렵하게 가르며 등장했다. 여기저기에서 외치는 "코리아 코리아" "사랑해요" "통일조국"의 함성이 귓가를 강타했다. 시합 전 가벼운 연습경기를 펼치는 두 팀을 중심축에 두고 경기장 내부를 여러 차례 빙빙 돌았다.

코리아팀의 약자인 'COR'와 스웨덴의 국가명칭 약자인 'SWE'가 새겨진 전광판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의 염원을 품고 있음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거대한 단일기와 스웨덴국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었기에 한반도의 주민들이 뿌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역사가 만방에 크게 부각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사실상 오늘의 경기를 '잠정 통일 국가' 코리아와 스웨덴의 국가간 대항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모습. 전광판에 불이 들어온 단일팀(코리아팀)의 영문 약칭 'COR'와 스웨덴의 영문 약칭 'SWE'가 보인다.
▲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모습. 전광판에 불이 들어온 단일팀(코리아팀)의 영문 약칭 'COR'와 스웨덴의 영문 약칭 'SWE'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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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는 경기 중간마다 따로 공지 없이 선수교체가 이뤄지고 빙상 규모가 비교적 작아 경기운영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게다가 속도감도 엄청나 눈을 뗄 수가 없다. 코리아팀 선수가 넘어지면 안타까움과 골대를 향해 힘껏 질주하면 "어어!"하는 기분 좋은 흥분이 매순간 혼재하는 빙상의 세계. 내 시선은 대부분 빙상경기장을 향해 있었지만 시종일관 정신없이 양 골대를 오가는 퍽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시선들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오후 5시 57분께 장내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 팀 선수들이 마주보고 서더니 이내 우리선수들과 스웨덴 선수들의 이름이 차례대로 호명됐다. 스웨덴 국가가 먼저 울린 뒤 아리랑이 흘러나오자 나직하고 잔잔하게 따라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남과 북의 공통된 민족정서가 아로새겨진 노랫말과 선율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전광판에 1피리어드(경기) 당 20분씩 총 3피리어드로 치러지는 아이스하키의 규칙이 소개되며 본격적으로 '빙상 전투'가 펼쳐졌다.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모습.
▲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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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같은 속공이 오가느라 눈이 쫓아가기에도 벅찼다. 스틱으로 있는 힘껏 내지르는 '퍽'이 서로의 골대를 때리며 손에 땀 쥐는 시합이 이어졌다. 세계 5위의 강호 스웨덴, 그에 맞선 순위를 짐작할 수 없는 신생 '팀 코리아(TEAM COREA)'.

지난해 7월 남북단일팀이 결성되기 전 평가전에서 스웨덴에 깨졌던 한국팀의 설움을 남북이 단합된 이번 기회에 날려버릴 수 있을까가 화두로 떠올랐다. 사실 직접 경기를 지켜보니 순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한국과 스웨덴과 미국(성조기를 든 백인 가족들을 목격했다)의 관중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귓전을 강렬하게 찌르는 "이겨라 코리아"의 대오에 합류하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으니까.

선취점은 스웨덴이 잡았다. 아이스하키 시합은 1피리어드 당 20분씩 총 3번의 피리어드로 구성된다. 전광판이 1피리어드가 3분 45초 남았음을 알렸다. 그 순간 스웨덴 선수가 날린 퍽이 코리아팀의 방어를 뚫어내 골망으로 들어갔다. "아..~!" 하는 짧고 아쉬움은 잠시 곧 "괜찮아 괜찮아"가 터져 나왔다. 이후 스웨덴이 두 번째, 세 번째 득점을 이루면서 스웨덴의 우위가 굳어지는 듯 했다.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모습. 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관중들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 인천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의 모습. 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관중들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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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찰나, 1분 35초를 남기고 박종아 선수를 앞세운 코리아의 '첫 퍽'이 스웨덴의 수비를 뚫고 골망을 시원하게 갈랐다. "5,4,3,2,1" 경기종료를 알리는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1대 3으로 첫 번째 피리어드가 끝났다.

처음에는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 여겼지만 어느덧 코리아팀이 2피리어드, 3피리어드에서 승부수를 띄우기를 바라게 됐다. 논란을 뚫고 처음으로 한 데 뭉친 남북의 올림픽단일팀이 아니던가. 연전연승을 바라는 마음을 경기장을 찾은 누구나 품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2피리어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기회는 여려 차례 찾아왔지만 스웨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스웨덴 골대로 내지르는 코리아팀의 속공이 아쉽게 막힐 때마다 관중석의 아쉬움은 배가 되어갔다. 그러면서도 한쪽에서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의 흥얼거림과 또 저편에서는 "우리는 하나다"가 어우러져 코리아팀의 기운을 북돋았다.

그리고 오후 7시 32분 무렵 3피리어드가 시작됐다. 여기에서 동점을 이룩하면 연장전 돌입, 연달아 3개의 퍽을 스웨덴의 골대에 넣으면 코리아팀의 승리였다. 우리팀이 공격하거나 밀릴 때나 환호성과 더불어 "우리팀 잘했다"가 빗발쳤다. 시선을 옆과 위로 들려 관중석을 바라보니 단일기를 힘껏 흔드는 손짓 하며,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며 안달복달하는 표정까지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막판 피리어드가 끝나가려 하고 있었다. 우리 선수들이 분전하고 있는 가운데 뒤에서 "덩치 자체도 고등학생이랑 초등학생"이라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그제서야 스웨덴 선수들에 비해 코리아팀 선수들의 키가 머리 하나 이상 작다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평가전이 우여곡절 끝에 단일팀으로 뭉쳐 '준비가 부족하지 않느냐'란 우려를 불식하고 열심히 싸우는 빙판 위 통일의 장임을 되새기며 남은 경기에 집중했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까지 기회가 연거푸 찾아왔다. 오후 8시 정각 양 팀에 작전타임 30초가 주어졌다. 서로 팔과 팔을 맞대며 무언가를 논의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기면 좋겠다'란 염원이 훨씬 강렬하고 간절해진 상황에서 마침내 경기가 마지막으로 치달았다. 8시 3분쯤 경기종료 30초를 남겨두고 퍽을 쥔 코리아팀의 스틱은 끝내 스웨덴의 방어를 뚫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곳에서 열화와 같은 박수가 폭발했다. 코리아팀의 최우수선수로 9번 박종아가 선정됐다. 서로 마주보며 인사하는 스웨덴팀을 향한 박수소리가 조금 더 컸다. 비록 아쉽게 패배했을지언정, 양 팀은 눈살 찌푸려지는 충돌 없이 훌륭한 경기를 펼쳐 화합의 정신을 도출해냈다. 경기 종료 뒤 관중들이 담아낸 영상과 사진과 글은 각종 SNS에서 불티나게 화제가 되었고, 통일과 평화의 정신은 더욱 빛을 발했다.

사라 머레이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총감독은 경기 종료 이후 오후 8시 30분을 넘겨 프레스존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단일팀이 구성되기 이전 한국팀만을 맡았을 때) 우리 목표는 메달 따기가 아니었다"라면서 솔직하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사라 총감독은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로 생각이 바뀌었음을 고백했다.

"북과 남이 하나로 뭉쳐 모든 걸 해나간다면 무엇이든 못해낼 게 없음을 절실히 알았다"고 한 북측 박철호 감독의 말마따나 분단을 넘어 통일된 코리아팀의 선전은 평창 동계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빙판 위 하나로 모인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올림픽 시상대에서 우렁차게 소리 높이는 날을 소망한다. 명심하자. 아직 평창 본무대의 피리어드는 시작도 되지 않았음을.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주권방송>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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