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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평생 막일을 하며 살았다.

그것은 직업도 아니었고, 경력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돈도 되지 못했다. 그저 노동이었다.
회사에서는 10년 20년 시간이 지나면 호봉이 오르고 경력이 쌓이고 직급이 오르지만, 50년을 넘게 공사장에서 일한 아버지는 오를 직급도 호봉도 없었다. 50년 전도 지금도 그저 일당을 받고 막일을 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아버지는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고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쓰러져 잠들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8시에 잠이 들었다. 일요일, 공휴일에 쉬는 것이 아니라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려 공사를 할 수 없는 날에 '어쩔 수 없이' 쉬었다. 아버지에게 휴일은 하늘만이 점쳐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그래도 공사장에 나가 오늘은 공사가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집으로 왔다. 그러니까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공사장을 향했다.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탕을 치고 집에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오는 날과 똑같이 지쳐있었다. 자신이 하루 노동을 하지 못해 벌 수 없었던 일당 8만 원의 무게는,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지칠 무게와 맞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했고 온몸을 써서 일 했으며 당연히 일찍 지쳤다. 노동, 밥, 잠으로 이어지는 그 단순했던 반복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됐다. 그 순환 속에서 자식 세 명이 자라났고 아내인 한 여자가 늙었다. 반복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아버지는 이제 노동 할 곳이 없다

그런데 이 사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노동조차 주지 않는다(자료사진).
 그런데 이 사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노동조차 주지 않는다(자료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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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노동조차 주지 않는다. 내 아버지는 환갑을 지나 이제 일흔이다. 이제 남은 건 더 이상 자신을 부르지 않는 공사장과 몸에 밴 부지런한 습관들.

아버지는 이제 노동을 할 곳이 없다.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다. 평생을 노동만 하며 살아온 아버지에게는 노동 이외의 것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 습관들은 일이 없는 지금도 새벽 4시에 눈을 뜨게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야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한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조차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안 대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며, 동네를 돌아다닌다. 아버지의 몸은 가만히 있으면 쉬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평생 노동을 습관처럼 한 탓이다.

밥은 아주 빨리 씹지도 않고 단시간에 삼켜야 하며 몸은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무거운 것들을 등에 지어야 하며, 팔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그곳이 공사판이 아닌 집안일지라도. 움직이지 않는 찰나의 순간들을 견디기 어렵다.

공사장에서 이고 지었던 벽돌과 장비 대신 집안의 장롱과 냉장고를 등에 지고 옮겨내 쌓여있는 먼지들을 치운다. 넓지도 않은 18평 집안을 활보하며 그렇게 청소를 하고 가구들을 옮긴다.

평생 공사판으로 출근했던 아버지는 이제 불러주는 곳이 없어 집을 공사판으로 만들어 노동을 한다. 참으로 지독한 습관적인 노동들. 그 50년의 노동이 만들어 낸 참혹한 습관들을 일흔인 아버지의 몸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끊임없이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그런데도 하루가 길다. 갈 곳이 없고, 할 노동이 없다.

며칠 전 아버지는 술에 취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도 답답해서 집 앞에 단독주택 짓는데 가서 말했다. 나 좀 써달라고. 대뜸 몇 살이냐 물어보더라. 일흔이요 하니까 안 쓴다고 일흔은 안 쓴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드라. 에라이! 하고 집에 왔다. 내가 그랬다."

'나 좀 써달라고' 그 한마디가 맴돌아

아버지는 50년 경력자인데 막일의 50년 경력은 일흔이라는 나이만 남겼다(자료사진).
 아버지는 50년 경력자인데 막일의 50년 경력은 일흔이라는 나이만 남겼다(자료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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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 좀 써달라고' 그 한마디가 자꾸만 맴돌아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50년 경력자인데 막일의 50년 경력은 일흔이라는 나이만 남겼다.

나는 아버지의 나이가 일흔이라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다. 평생을 노동했고 노동밖에 할 수 없는 아버지가 더 이상 그 노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비통할 뿐이다.

못난 딸은 늙은 아버지가 더 이상은 그 노동을 하지 않고 쉬었으면 싶다가도, 이런 순간들을 마주 할 때면 무슨 노동이라도 하길 바라는 구차한 마음이 든다. 그 노동의 목적과 결과물인 딸은 이제 아버지에게 멋진 옷도 사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술도 사드릴 수 있지만 노동을 하게 해 드릴 순 없는 노릇이다.

앙상한 아비의 팔과 다리가,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이, 냄새 나는 몸뚱이와 거친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귀가 그저 다 슬플 뿐이다. 마치 그것들이 아버지의 평생 노동의 결과인 것 같아서.

평생 반복했던 아버지의 노동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닐 진데, 그래서 일흔이 된 지금 그 누가, 무엇이, 나의 아버지의 평생 노동을 보상해 줄까?

아버지의 노동으로 나는 맛있는 걸 먹었고, 예쁜 옷을 입었고, 공부를 했고, 여행도 갔고, 술도 마셨고, 부끄럽게도 아버지의 그 노동을 원망하기도 했다. 참 못난 딸이다.

아버지는 세 명의 자식이 갓난 아이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한 여자가 숙녀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노동을 했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무얼 보상 받았을까.

아버지에게 노동은 평생을 지독히도 따라다녔던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아빠가 많이 늙었다.


태그:#아버지, #노동, #막노동, #막일,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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