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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칫했다. 배를 까고 다니는 아저씨를 처음 봤을 땐. 칭다오 5.4 광장에서였다. 우리로 치면 한강공원 느낌이다.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고 밤중에도 사람들로 북적하다. 아무리 밤이라도 이 인파에 배를 까고 다니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여행 당시는 여름이라 꽤 더웠다. 어지간히 못 참겠나보다 생각하며 유별난 사람이라고 넘겼다.

사람 많은 구간엔 이것보다 3배는 더 많다. 자연인도 3배는 더 많다
 사람 많은 구간엔 이것보다 3배는 더 많다. 자연인도 3배는 더 많다
ⓒ 김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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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했다. 배를 까고 다니는 사람을 2~3분 간격으로 봤을 땐. 심지어 아예 웃옷을 벗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아재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20~30대로 보이는 남자까지 그러고 다녔다. 이게 대륙의 기상인가.

중국에선 이런 사람들을 '광팡즈(백색 오염군)'이라고 부른다(참고기사: 노출증 걸린 중국인, 광팡즈를 아시나요). 지자체가 나서서 무료 티셔츠까지 나눠줄 정도라고. 그나마 대다수가 비판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게 다행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곳곳에 자연인이 활보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이 정도로 마이웨이인데 개인주의였다면 얼마나 자유로움이 넘쳤을까. 14억 인구가 저마다의 길을 개성 충만하게 걸었다면 그 나름으로도 세계적 문제였을 거다. 다시 한 번 이 대지의 균형감에 이마를 탁 친다.

다음 날, 칭다오 라오산에 오를 때에도 자연인이 종종 보였다. 나란히 웃통을 깐 아빠와 아들도 있었다. 왠지 모르게 다정해보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둘째 날이어서 익숙해진 걸까. 라오산의 반라 가족은 친숙하고 사랑스러웠다.

라오산의 반라 가족 ♡
 라오산의 반라 가족 ♡
ⓒ 김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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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중국 사람은 불쾌하다. 시민의식도 낮고 투박한 경우도 많이 봤다. 시끄럽고 공공장소에서도 담배를 뻑뻑 펴대기도 하고... 근데 그들 역시 만나서 얘기하면 괜찮은 사람이 많다. 거기에 꽂힌 사람은 중국이란 나라를 참 많이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유로움에, 그 솔직함에.

한편 그런 의문도 들었다. 나도 내 주변사람에게 중국인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무례하고 투박한, 잠깐 보고서는 호감을 갖기 쉽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래서 제대로 얘기해보거나 오래 마주하지 않은 사람은 내게 부정적 인상만 남았을 테다. 그런데도 '진짜 내 모습, 솔직한 모습이 중요하지, 그런 가식적인 건 신경 안 써' 하며 잘못된 합리화를 해오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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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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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지기 전, 결국 중요한 건 겉모습과 매너다. 개성과 매력은 굳이 티내지 않아도 알아서 은근히 풍긴다. 그 자연스러움에 사람은 사람에 끌린다. 배를 까고 다니는 자연스러움과는 다른, 무해하고 보편적인 자연스러움이다. 여행 후반부엔 나도 한번 배를 까서 이 무리에 동참해볼까 아주 잠깐 생각했다. 혼자 다녀서 어지간히 외로웠나보다. 이런 야심을 품었다는 것에 살짝 놀라며 옷을 고쳐 입었다.



태그:#중국, #중국여행, #칭다오, #광팡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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