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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는 제도(일명 예강이법, 신해철법) 개정과 추가기재·수정된 진료기록의 원본 및 수정본 모두를 의무적으로 보존·열람·사본 교부토록 하는 일명 진료기록 블랙박스법 개정을 이뤄낸 고 전예강 어린이 관련 민·형사 판결이 내려졌다.

예강이 유족은 대학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고 지난해 10월 25일, 1심 민사법원은 예강이 유족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예강이 유족이 간호사와 의사를 상대로 낸 형사소송 1심 판결(2018년 1월 12일 선고)에서는 해당 응급실 인턴에게 100만 원의 벌금형 유죄판결을 했다. 그러나 간호사에 대해서는 진료기록 허위기재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고의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이에 예강이 어머니 최윤주씨는 환자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의료기록 조작을 '실수'라고 하면 무죄 판결이라니..."

14일, 토즈 교대점에서 환자단체연합회 주최로 전예강 어린이 응급실 사망사건과 병원의 협진시스템·진료기록시스템을 붕괴시킬 우려가 있는 1심 법원의 민·형사판결 문제점 관련 환자단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3월 14일, 토즈 교대점에서 전예강 어린이 응급실 사망사건과 병원의 협진시스템·진료기록시스템을 붕괴시킬 우려가 있는 1심 법원의 민ㆍ형사판결 문제점 관련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3월 14일, 토즈 교대점에서 전예강 어린이 응급실 사망사건과 병원의 협진시스템·진료기록시스템을 붕괴시킬 우려가 있는 1심 법원의 민ㆍ형사판결 문제점 관련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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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예강이 유족 및 환자단체들이 기자간담회에서 주장한 논점은 ▲ 대학병원 응급수혈시스템의 미작동 ▲ 대학병원 협진시스템의 작동 부재 ▲ 진료기록시스템의 심각한 문제 ▲ 전공의들의 무리한 요추천자 시술 등이다.

이들은 2014년 1월 23일, 예강이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할 당시 의료진이 사망 가능성을 언급할 정도로 백혈병·혈액암이 의심되는 응급환자였다는 점을 알면서도 응급수혈 처방이 아니라 일반수혈 처방을 했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응급수혈은 혈액은행에서 35분이면 적혈구, 혈소판 등의 혈액이 도착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해당 의료진은 78~184분이 소요되는 일반수혈 처방을 했고 이는 제대로 처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애초에 부모가 예강이의 코피 증상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것은 대학병원의 협진시스템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인데 사실상 협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소아청소년과에서 소아신경과와 소아혈액종양과에 협진을 의뢰했고 소아신경과는 15시 35분, 소아혈액종양과는 18시 36분에 협진결과를 회신했다. 그러나 소아신경과의 협진주치의인 전공의는 이를 기다리지 않고 13시 28분에 요추천자 시술에 대한 수시처방을 했다. 이는 적혈구, 혈소판 등의 수혈을 먼저 해 생체 징후부터 교정하라는 본인의 협진결과와 다른 처방을 내린 셈이다.

진료기록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간호사가 제1, 2 적혈구 수혈시간을 12시 11분에 기재했지만 이는 허위 기재이며 이를 통해 무리한 요추천자 시술 수시처방이나 39분 동안 5차례나 무리하게 요추천자 시술을 한 의료진의 잘못이 가려지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간호사가 제1, 2 적혈구 수혈시간을 특별히 12시 11분으로 기재한 것은 12시에 의사들이 수혈 관련해 처음 지시를 했고, 수혈 처방한 혈액 순서에 맞게 적혈구·혈소판·혈장이 수혈된 것처럼 보이기 위한 최적의 위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 관련 형사재판에서 1심 법원은 간호사의 '실수'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로 판결했다. 이에 최성철 암시민연대 대표는 "조작의 의도가 없고 실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죄라고 하면 앞으로 의료사고에서 모든 조작은 실수라고 주장하면 무죄로 선고 날 판"이라고 꼬집었다.

진료기록 블랙박스법 국회 통과했지만 갈 길 멀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매년 수백 명의 신규 백혈병·혈액암 환아들은 헤모글로빈, 혈소판 수치가 낮아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이 경우 의료진들은 수액을 공급하고, 혈소판, 적혈구 등을 수혈해 우선 생체 징후부터 회복시킨 후 골수검사를 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한다."면서 "예강이는 응급환자인데도 응급수혈을 받지 못했고, 협진결과 혜택도 받지 못했으며 협진결과에도 없는 요추천자 시술을 무리하게 받다가 사망했다. 그럼에도 대학병원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들은 "법원은 진료기록 허위기재가 명백하지 않으면 입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다. 예강이의 경우 허위기재가 명백한데도 고의가 아닌 실수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로 선고했다. 앞으로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은 진료기록을 통해 의료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의료인이 진료기록부에 추가기재나 수정한 경우 원본과 수정본을 함께 보존하고, 전자의무기록의 변경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접속기록자료도 의무적으로 작성·보존하도록 하는 '진료기록 블랙박스법'이 지난 2월 28일, 국회를 통과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은 '진료기록 블랙박스법'에도 불구하고 예강이 사건 관련 1심 형사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진료기록 허위기재가 명백히 밝혀져도 의료인이 실수라고 주장하면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냐며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예강이 유족은 기자간담회를 계기로 예강이 응급실 사망사건과 관련해 의무기록과 CCTV 영상을 공식 홈페이지(http://iamyekang.tistory.com)에 공개해 누구나 검토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안기종 대표는 "많은 의료인들이 전문가적 양심으로 예강이 응급실 사망사건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며 아울러 2심 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예강이 어머니 최윤주씨는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섰다. 최씨는 "예강이가 가족 곁을 떠난 지 4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예강이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서 "의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예강이 사망 후에 어쩔 수 없이 소송을 하면서 법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법의 힘을 믿었기에 이번 결과는 충격적이다. 2심에서는 누가 봐도 공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응급실에 도착한지 7시간 만에 사망한 고 전예강 어린이의 어머니 최윤주 씨가 예강이 사건 관련 민ㆍ형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해 “공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촉구하며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응급실에 도착한지 7시간 만에 사망한 고 전예강 어린이의 어머니 최윤주 씨가 예강이 사건 관련 민ㆍ형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해 “공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촉구하며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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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의료사고, #진료기록 블랙박스법, #예강이법, #진료기록 허위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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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노동자.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으나 암 진단을 받은 후 2022년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2023년 <나의 낯선 친구들>(공저)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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