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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입구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 '못다 핀 꽃'(왼쪽)
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 흉상(오른쪽)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입구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 '못다 핀 꽃'(왼쪽) 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 흉상(오른쪽)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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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 '못다 핀 꽃'

나눔의 집은 1990년대 생계조차 어려웠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마련된 보금자리다. 1992년 10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시작해 1995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9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과 국제평화인권센터가 한자리에 있다. 올바른 역사 세우기와 인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는 경원대 미대 윤영석 교수가 고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못다 핀 꽃>을 동상으로 형상화한 기림비가 있다. 1998년 8월 14일에 전시된 최초의 기림비다. 이 기림비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흉상이 감싸고 있다. 8월 14일은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해 정한 '세계 위안부의 날'이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육성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기림비에 모태가 된 <못다 핀 꽃>을 그린 고 김순덕 할머니는 피해자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시작된 미술작업에서 뛰어난 감각을 나타냈다. 서울에 위치한 기억의 터에 그려진 <끌려감>이라는 작품과 피해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린 <그때 그곳에서>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수요집회 때마다 간식을 직접 만들어 온 고 김순덕 할머니가 만든 커피는 많은 사람들의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작은 안나의 집 동양평화의 소녀상

 작은 안나의 집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동상과 평화의 소녀상
 작은 안나의 집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동상과 평화의 소녀상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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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복지법인 오로지가 건립한 동양평화의 소녀상은 오로지가 운영하는 종합복지원에 위치해 있다. 도마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함께 세계 평화와 인권 수호를 외치고 있다. 할아버지 뻘인 안중근 의사와 손녀 뻘인 '위안부' 피해자 소녀의 모습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평화를 외치는 학생들의 현재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다. 과연 우리는 평화와 인권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느끼게 한다. 동상 건립 취지문 1번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잠들지 아니하며 깨어있는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굳게 맹세한다."

초월 형원의 집 평화의 소녀상

 경기도 광주 초월 형원의 집에 위치한 안중근 동상과 평화의 소녀상
 경기도 광주 초월 형원의 집에 위치한 안중근 동상과 평화의 소녀상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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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안성시 원곡면 칠곡리 만세고개에는 '안성3.1운동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성은고개, 또는 양성고개로 불리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 3.1운동 만세운동이 일어난 장소라 '만세고개'라 이름 붙여졌다. 안성시 원곡면과 양성면은 일제시대에 평안북도 의주군, 황해도 수안군과 더불어 민족대표 33인의 재판에 원용(援用)될 만큼 격렬했던 3.1운동의 실력항쟁지 가운데 하나다. 당시의 전국 만세운동 중 안성의 실력항쟁이 으뜸으로 평가된다.

안성 원곡면과 양성면에서 지역주민들이 산발적으로 시작한 시위는 1919년 4월 1일 연합 만세 시위로 이어졌다. 그날, 1000명의 주민이 원곡면사무소 앞에 모여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친 후, 거리를 누비며 만세운동을 이어간다. 이들은 양성면을 거쳐 만세고개에 이르러 양성 주민 1000여 명과 합세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농민들이 항쟁의 중심세력으로 양성주재소, 양성면사무소, 우편소, 경찰주재소 등 일제의 통치기관을 불태우고 무력화시키며 이틀 동안 일본인들을 몰아냈다. '2일간의 해방'을 쟁취한 셈이다. 그 후 일제의 잔인한 보복이 이어지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도 바로 안성이다. 안성시는 이를 기리기 위해 2001년에 3.1운동기념관을 건립했다.

이 안성에는 두 곳에 위안부 기림비가 있다.

성 베드로의 집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성 베드로의 집의 평화의 소녀상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성 베드로의 집의 평화의 소녀상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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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상통 마을

 미리내성지에 위치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왼쪽)와 유무상통 마을에 있는 동양평화소녀상(오른쪽)
 미리내성지에 위치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왼쪽)와 유무상통 마을에 있는 동양평화소녀상(오른쪽)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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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상통 마을 근처에는 미리내 성지가 있다. 미리내 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 순례길 주요 성지 중 하나다. 한국 최초의 방인사제인 김대건 성인의 묘소와 이윤일 성인의 묘소 유지(遺址), 그리고 16위 무명순교자의 묘역이 있다. '미리내'는 은하수(銀河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살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교우촌의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맑은 시냇물에 보석처럼 비춰진 풍경이 마치 은하수(미리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신유박해 이후에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 신자들이 산속으로 들어와 미리내 인근 산골짜기로 옮겨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박해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미리내 마을에서는 선교사들이 피신하여 우리말과 풍습을 배우고 익히기도 했다. 그러나 1866년의 병인박해로 인해 미리내 교우촌 신자들이 피신하면서 잠시 폐허가 되었다가, 박해가 끝난 뒤에 다시 교우촌이 재건되었다. 미리내 종은 1917년 강도영 신부가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로부터 들여 왔으며, 일제시대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군 포탄제작을 위한 징발로 훼손될 뻔하였다. 이 종은 현재도 미리내 본당에서 사용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와 함께 있는 '위안부' 기림비는 경기도에 두 곳이 더 있다.

의정부 평화의 소녀상

 의정부 평화의 소녀상과 안중근 동상
 의정부 평화의 소녀상과 안중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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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рея ура! Корея ура!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 대한 만세!)"

의정부에 평화공원에 있는 안중근 동상은 총을 꺼내기 직전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당시 하얼빈역에는 안중근 의사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7번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이토 히로부미는 3발, 그 외 일본 측 인사 4명은 각각 1발의 총탄을 맞았다고 전해진다.

의정부역 앞 평화공원은 미군부대가 주둔했던 캠프 홀링워터 1만 1403㎡부지에 조성됐다. 이곳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3.1운동 기념비, 의정부시 평화의 노래비, 소녀상, 시승격 50주년 기념상징물, 평화통일기원 베를린 장벽, 안중근 동상, 캠프 홀링워터 벽체, 한미우호 상징조형물 등이 설치돼 있다.

의정부 평화의 소녀상에는 청소년 평화 선언문 또한 전시되어 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모은 기금 중 2000여만 원 이상이 청소년들의 성금으로 이루어졌다. 모금과정에서 청소년과 교사들이 올바른 역사 만들기를 위한 '평화나비' 연합동아리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부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부천 위안부 기림비와 안중근 의사 부조벽화
 부천 위안부 기림비와 안중근 의사 부조벽화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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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안중근공원에 부천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세워져 있다. 이밖에도 안중근공원에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부조벽화, 유묵 22점이 전시돼 있다. 이곳은 원래 중동공원이었으나 부천시가 20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반입된 안중근 의사 동상을 부천에 유치하면서 '안중근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매년 3월 26일 안중근의사의 추모제, 10월 26일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안중근 동상은 2006년 1월 16일 안중근 의사의 순국 96주기를 맞아 하얼빈시 중심가 '중양다제(中央大街) 광장'에 건립되었다.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재중국 사업가 이진학 회장 등 민간차원에서 진행됐다. 그런데 동상제막식 11일 후, 이미 사전에 하얼빈시 지방정부와 협의를 한 상태였음에도 중국중앙정부는 외국인 동상건립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결국, 동상을 천으로 가리고, 중국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근처 백화점 안으로 옮겼다.

국내로 부지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2009년 10월 26일, 부천시의 '중동공원'이 동상의 부지로 정해진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하얼빈에서 온 안중근 동상을 하얼빈의 자매도시인 부천에 영구히 보존하기로 부천시가 결정했다. 부천시는 만화의 도시답게 '위안부'에 관한 만화를 제작해 전세계에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소셜미디어에 게재되었으며 월간 아트래블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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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구보 <사색여담> 시리즈 저자 <그렇게 여행자가 된다> <상처 위를 거닐다> <여행, 그 너머에 있을 무언가> <아파야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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