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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나비
 호랑나비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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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걸렸어. 날개를 편 자세로 꼼짝 못하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호랑나비를 본 건 행운이었습니다. 너, 진짜로 딱 걸렸어. 그 자세로 그대로 있어. 가만히 있어. 마침 사진기가 없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호랑나비는 주술에 걸린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라면 순식간에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 가버렸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입을 딱 벌린 뱀 앞에 앉아 있는 겁에 질린 개구리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설마 제가 가만히 있으라고 한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그럴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나비가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호랑나비는 왜 날개를 편 채 가만히 앉아 팔자에 없는 사진 모델 노릇을 했을까요?

그건 호랑나비가 우화(곤충이 유충 또는 약충이나 번데기에서 탈피하여 성충이 되는 일)를 막 마치고 날개를 말리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호랑나비는 날개가 완전히 마르지 않으면 활동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날 수 없습니다.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호랑나비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할까요. 따사로운 햇빛 아래서 날개를 편 채 날개가 마르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호랑나비
 호랑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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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세를 하고 있는 호랑나비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고양생태공원이 아닌 숲이나 산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호랑나비가 우화하는 모습은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초나무를 고양생태공원으로 이식할 때 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했던 그 모습을 결국 보게 되었습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우리 공원 자원봉사자들까지 호랑나비가 날개를 말리는 장면을 보러 몰려 왔습니다. 자원봉사자 한 분은 며느리가 출산한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야하는데 호랑나비 사진을 찍은 뒤에야 출발할 정도로 호랑나비는 우리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호랑나비가 날개를 말리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호랑나비의 미세한 털까지 다 보였습니다. 생명의 신비, 생명에 대한 경외감, 이런 말들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날개를 다 말린 호랑나비는 첫 날갯짓을 했습니다. 그 순간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날 준비를 마친 호랑나비는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잘 가라. 잘 살아.

그렇게 해서 찍은 호랑나비 우화 사진은 제 핸드폰 배경 사진이 되었습니다.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납니다.

산초나무
 산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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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생태공원을 조성할 때 산초나무를 심으려고 여러 곳을 수소문했습니다. 산초나무는 구하기 쉽지 않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개발을 앞두고 있는 곳에 산초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겨우 찾아내 20그루 정도를 부들연못 건너편에 옮겨 심을 수 있었습니다.

산초나무를 데려오면서 분명히 애기들이 딸려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애기는 호랑나비입니다. 산초나무는 호랑나비 먹이식물이기 때문에 산초나무가 있으면 반드시 호랑나비가 있습니다. 그런 속셈으로 산초나무를 이식하려고 그 난리를 친 것이죠.

그래서 산초나무 잎에 호랑나비 알이 붙어오기를 기대했습니다. 만일 알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호랑나비가 먹이식물인 산초나무를 찾아오기를 바랐습니다. 먹이식물이 있으면 나비들은 모여들기 마련인데, 그것을 후순위로 노린 것입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산초나무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호랑나비를 보았습니다. 먹이식물의 힘은 놀라웠습니다. 산초나무가 있는 곳에 반드시 호랑나비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죠. 그 덕에 우화하는 호랑나비를 봤고, 증거를 사진으로 확실하게 남기게 되었습니다.

나비들은 편식장이입니다. 좋아하는 식물이 따로 있어 그것만 먹고 그 주변을 맴돌면서 살아갑니다. 알을 낳고, 번데기가 되고, 성충이 되어 혼인을 한 뒤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먹이식물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나방도 나비와 비슷한 습성을 지녔습니다.

산초나무와 호랑나비, 쥐방울덩굴과 꼬리명주나비, 방풍나물과 산호랑나비, 환삼덩굴과 네발나비, 뽕나무와 멧누에나방, 담쟁이덩굴과 줄박각시, 냉이와 배추흰나비, 토끼풀과 노랑나비, 쑥과 적은멋쟁이나비가 우리 공원에서 관찰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호랑나비 알
 호랑나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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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나비를 발견하고 곧장 확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산초나무로 가서 잎사귀 뒤를 뒤집어본 것입니다. 어미가 있으면 알이나 애벌레가 있는 게 당연합니다. 부화해서 꼬물거리는 애벌레가 1령부터 번데기까지 나무 한 그루에 다 몰려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연두색에 줄무늬가 있는 예쁜 애기들인데 이들을 징그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비들의 몸에 새겨진 무늬가 다 다르듯이 애벌레들도 무늬가 다 다르고 저마다 특색을 가졌습니다. 호랑나비 애벌레, 산호랑나비 애벌레,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와 같은 애벌레들을 보면 신기합니다. 애벌레 모양은 비슷한데 무늬가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애벌레들을 보고 기겁을 합니다. 송충이라고. 징그럽다고. 송충이의 성충이 솔나방이니 다른 애벌레들이나 송충이가 비슷하다고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랑나비 애벌레
 호랑나비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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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산초나무. 호랑나비 애벌레들의 먹이식물이지만 저렇게 많은 애벌레를 먹여 살리다가는 나무가 죽을 것 같습니다. 양식이 부족하면 애벌레들이 굶어죽을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산초나무 잎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원봉사자들과 모여서 이런 의논을 합니다. 산에서 잎을 따다가 확 뿌려줘? 산초나무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서 상황이 확 달라진 것입니다. 자연이 자연스럽게 조정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새들을 잊고 있었습니다. 애벌레들의 포식자를 까맣게 잊고 애벌레가 너무 많다는 걱정만 했습니다. 새들이 먹이가 우글거리는 산초나무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습니다. 애벌레들이 아무리 보호색을 띤다고 해도 매서운 새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호랑나비 번데기
 호랑나비 번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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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수가 너무 많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이제는 애벌레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위기감을 갖고 지켜보는 상황이 됐습니다. 저러다가 한 마리도 안 남겠다. 새들아, 적당히 먹어라. 고민을 하다가 두어 그루만 망을 씌우기로 했습니다. 호랑나비가 우화하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초록색 양파망을 구해다 씌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호랑나비들이 우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날개를 말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꼬리명주나비는 쥐방울덩굴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공원에도 쥐방울덩굴이 있고, 꼬리명주나비가 있습니다. 호랑나비과인 꼬리명주나비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으뜸인데 희귀식물인 쥐방울덩굴을 먹이식물로 삼고 있습니다.

쥐방울덩굴
 쥐방울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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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원을 조성할 때 식재한 식물 가운데 가장 많이 번식하기를 간절히 바란 것이 쥐방울덩굴입니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작은 열매가 귀여운 방울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어떤 식물이든 자연에서 보아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데 열매가 예쁘다보니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귀하신 몸인 희귀식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출근한 뒤 쥐방울덩굴을 보러 갔더니 며칠 전까지 없던 꺼뭇꺼뭇한 애벌레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붙어 기어가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얘들이 누구야.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반가웠습니다. 쥐방울덩굴을 식재할 때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였기 때문입니다.

꼬리명주나비 애벌레
 꼬리명주나비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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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을 불러 보여줬더니 다들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드디어 꼬리명주나비가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으니 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꼬리명주나비가 성충이 될 때까지 쥐방울덩굴 군락지 주변을 서성이면서 성장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꼬리명주나비가 산란한 뒤 1령에서 5령까지의 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꼼꼼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루는 꼬리명주나비 한 마리가 쥐방울덩굴 잎 위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슨 일이지? 궁금해서 다가갔는데도 꼬리명주나비는 날아오르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알을 낳고 있었습니다.

꼬리명주나비가 산란하는 모습
 꼬리명주나비가 산란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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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하는 꼬리명주나비
 짝짓기 하는 꼬리명주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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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명주나비 알
 꼬리명주나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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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명주나비는 노란색 알을 한알씩 줄지어 낳느라 정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산란에 열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뭇잎에 가지런히 줄지어 낳은 알들은 마치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을 하지 못해 깜짝 놀랐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큰 행운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는 점점 개체수가 많아졌고,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꼬리명주나비가 우화해서 한꺼번에 날아오를 날을 기다렸지만,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포식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법칙은 냉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쥐방울덩굴에서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를 관찰할 때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면서 우리 주변을 맴돌던 새들은 우리가 그 자리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애벌레들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새들의 만찬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훠이훠이 하면서 새들을 쫓아내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그냥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새들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테니까요.

꼬리명주나비 번데기
 꼬리명주나비 번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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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은 일 년에 두 번 번식합니다. 봄에 알을 낳으면 가을에 성충이 되고, 가을에 알을 낳으면 번데기가 돼 겨울을 납니다. 번데기는 몸을 나뭇가지에 실로 매달아 덜렁거리면서 나비나 나방 번데기가 아닌 척 하면서 버팁니다.

물론 모든 나비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번식하는 횟수가 더 적거나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나비들은 알이나 애벌레, 어른벌레 상태로 돌 밑이나 나뭇가지, 낙엽 밑에 붙어 겨울잠을 자면서 겨울나기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죠. 봄이 되면 겨울을 버틴 번데기에서 나비와 나방들이 우화합니다.

우리 공원에는 지난해까지 총 114종의 나비와 나방이 관찰되었고, 매년 개체수가 늘고 있습니다. 나비와 나방의 개체수가 느는 것은 우리 공원이 이들의 좋은 서식처이자 산란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체수가 늘면 이들을 관찰할 기회가 늘어납니다. 이들을 먹이로 삼는 새들의 개체수도 늘어납니다. 아무것도 없던 버려진 땅이 생태공원으로 변화해 자연의 기적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태그:#고양생태공원, #호랑나비, #줄박각시, #산초나무,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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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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