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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박수와 같다. 두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글쓴이와 편집자의 합이 맞아야 영향력이 생긴다.
 글쓰기는 박수와 같다. 두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글쓴이와 편집자의 합이 맞아야 영향력이 생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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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칼럼니스트요, 배우요, 감독이기도 한 스티븐 킹은 그의 저서 < On writing >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은 인간이 쓰고, 편집은 신이 한다."

이는 편집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한 말이다. 나도 고교시절 학생기자로 학교신문과 교지를 편집하면서 지도교사(중동고 홍준수 선생님)로부터 여러 번 들은 말이다. 글은 편집자가 다듬은 데 따라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고. 그러면서 선생님은 시범으로 학생들의 조악한 글을 아주 산뜻하게 다듬어주고 제목을 참신하게 달아주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후일 내가 교사가 된 이후의 일이다. 1972학년도 학년말 진급 사정회 전날, 그때까지 등록금을 내지 않은 학생들에게 "내일은 꼭 납부해야 한다"라고 일렀더니, 이튿날 세 학생이 결석을 했다. 그래서 그날 밤 '우울한 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뒤 한 신문사로 보냈다. 며칠 후 편집자는 '비어있는 자리'라는 제목으로 글을 가다듬어 게재해줬다.

그 글로 당시 나는 50여 통의 팬레터를 받았다. 심지어 미국 버클리대학교에 유학 중인 동포 학생으로부터 여러 차례의 편지와 함께 그가 교회에 광고해 모은 성금으로 학생들 등록금을 우편으로 받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제목으로 나의 첫 산문집을 펴낸 바, 책 판매와 저자의 인지도를 높였던 적이 있었다.

전쟁 중에도 '웃음'은 있었다

1951. 7. 31. 개성, 정전회담 취재 도중 폭소를 터트리는 종군기자와 미소 짓는 북한군 측 경비병.
 1951. 7. 31. 개성, 정전회담 취재 도중 폭소를 터트리는 종군기자와 미소 짓는 북한군 측 경비병.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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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와 연재 중인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에 관해 전화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편집기자가 통화 끄트머리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전쟁 사진 가운데, 양측 병사들끼리 서로 어울려 대화하거나 웃는 모습의 사진은 없습니까?"

나는 그 순간 번뜩 머리에 스쳤다. 아마도 그 기자는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죽고 죽이는 참혹함을 멈추게 하는 웃음꽃'이라는 그림의 사진이 들어간 기사로, 다가오는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선도하려는 의도 같았다. 그 질문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결코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국군과 인민군 그리고 유엔군의 세 병사가 공존·공생하는 장면을 기사에 연출하고자 하는 속내가 담긴 것이리라.

나는 그 생각을 높이 평가했다. 사실 유능한 편집자는 이미 쓴 글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좋도록 잘 편집할 뿐 아니라, 글쓴이에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주제와 제재를 유도해야 한다.

좋은 글이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글로써 그들을 감동시킴과 동시에 우리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글일 것이다. 그러자면 글쓴이의 일방의 글이 아닌 글쓴이와 편집자의 공동의 노력으로 이뤄질 때 더욱 좋은 글이 될 것이다. 나는 그의 물음에 즉각 답했다.

"아마도 정전회담 초기 당시 자유 진영 및 공산 진영의 취재기자들이 회담장 밖에서 서로 대화하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장면은 한두 컷 있을 겁니다."

나는 2004년부터 네 차례 미국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의 국립기록문서관리청(NARA)과 버지니아 주 남단 항구도시 노퍽의 맥아더 기념관에 직접 가 2000여 점의 한국전쟁 관련 사진을 검색·수집해 왔다. 그 사진들은 내가 한 장 한 장 직접 애써 골라 즉석에서 스캔해 온 이미지들이기에 머릿속에 거의 각인돼 있어 그렇게 답할 수 있었다.

삶은 콩을 싹 트게 하는 일

나는 전화를 끊은 뒤 곧장 외장 하드디스크에서 '한국전쟁Ⅰ-Ⅳ' 폴더 속 소장된 한국전쟁 사진 이미지 중 양 진영의 병사들이 서로 어울려 웃는 모습의 사진을 찾아봤다. 대부분 사진에서 양 진영 병사들은 서로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총을, 대포를, 화염방사기를 또는 전폭기로 폭탄을 마구 떨어뜨리면서 상대를 살상하거나 포로로 사로잡아 연행하고 있었다.

또한 상대를 잡아다가 말뚝에 묶고 그들 가슴에 표적지를 단 뒤 총살하는 장면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진은 상대의 목을 자른 뒤 그것을 상부에 보고하고자 방부제로 콜타르에 담근 다음 상자에 넣어 보내는, 차마 같은 인간으로 도저히 볼 수 없는, 인간임이 부끄러운 그런 사진들도 숱하게 있었다.

두 시간 남짓 그런 사진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한국전쟁 기간 중, 양측 모두가 참 철저히도 상대를 살상했다는 데 다시 한번 전율했다. 그러면서 그게 전쟁의 참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하기는 전쟁판에서 자비를 바라는 것은 삶은 콩을 싹 트게 하는 일처럼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내 예상대로 1951년 초기 정전회담이 열리는 개성 회담장 봉래장 언저리의 양측 기자들과 경비병들 사이에 웃음이 보이는 사진이 몇 컷 있었다. 아마도 정전회담 초기에 양측 취재기자들은 곧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감에 서로들 웃음꽃을 피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담은 7장의 사진을 편집기자에게 보냈다. 곧 편집기자로부터 답이 왔다.

"선생님! 귀중한 사진자료 잘 받아봤습니다. 총부리를 겨눈 상대더라도 대화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4월 남북, 5월 북미 정상회담 때에도 이와 같은 장면이 나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951. 7. 8. 정전회담을 위한 유엔군 측과 북측의 첫 만남으로 미군헬기 조종사를 북한 여경비병이 미소로 맞고 있다.
 1951. 7. 8. 정전회담을 위한 유엔군 측과 북측의 첫 만남으로 미군헬기 조종사를 북한 여경비병이 미소로 맞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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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8. 1. 개성, 정전회담장 밖에서 공산군 유엔군 양측 종군기자들이 서로 어울려 열띤 취재를 하고 있다.
 1951. 8. 1. 개성, 정전회담장 밖에서 공산군 유엔군 양측 종군기자들이 서로 어울려 열띤 취재를 하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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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
   
지난 3월 29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2018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남북고위급회담이 있었다. 이 회담에서 쌍방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제 문제들을 협의하고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남과 북은 양 정상들의 뜻에 따라 '2018 남북정상회담'을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2018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우선 의전, 경호, 보도 실무회담을 4월 4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진행하기로 하였으며, 통신 실무회담의 날짜와 장소는 차후 확정하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기타 제기되는 실무적 문제들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계속 협의하기로 하였다.

이 합의 보도문은 지난해 연말 경색된 남북의 대결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한반도에 화해와 긴장 완화, 나아가서는 평화통일의 주춧돌이요, 시금석이 될 정상회담 개최를 알리는 낭보다. 8000만 겨레의 일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아무쪼록 다가오는 4월 27일은 그동안 70여 년의 대립과 냉전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어가는 역사적인 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에 즈음해 겨레의 한 사람으로 소망과 비원을 드리는 바다.

남북 두 정상께 드리는 당부의 말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자료사진).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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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부탁 말씀을 올립니다.

첫째. 두 분 몸에 흐르는 핏줄기의 근원은 같다는 것을 항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2017년 연말까지만 해도 이 나라 시민들은 전쟁의 공포 분위기 속에서 숨 죽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2018년 새해에 들어와 남북 두 정상의 극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공동참가부터 4.27.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겨레에 한 줄기 빛으로 크나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둘째. 남북통일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리십시오. 두 분 중 대의를 위해 더 많이 희생하는 분이 우리 민족 청사에 더 큰 위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8000만 겨레의 질곡인 휴전선의 철조망을 거둬내자면 누군가의 큰 희생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두 분은 그런 희생양이 되리라는 각오로 남북정상회담에 임하십시오.

셋째. 우리의 분단 문제는 우리가 해결한다는 근본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에워싼 주변국들은 한반도 통일과 평화에 장애가 될지도 모릅니다. 두 분이 한 마음으로 그 장애물을 피해 가면서 끝내는 한 길로 가는 슬기로움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차이점은 뒤로 미루고 공통점을 중심으로 일을 벌여나가고, 서로의 과거는 불문에 붙이는 것을 대전제로 서로 껴안고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인내심입니다. 지난날 하나였던 우리가 일제 패망으로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벼락처럼 분단이 됐지만, 언젠가, 어느 날 반드시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빠름만을 추구하다가는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두 분이 서로의 진심을 헤아린 뒤 공동 목표를 위해 어려운 난관들을 인내 또 인내하면서 이 겨레를 평화와 화해의 길로 이끌고 가십시오.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드리는 호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은 지난해 1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은 지난해 1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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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간절히 호소 드립니다.

우리 동양 한자말에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매듭은 맺은 사람이 풀어야 그 매듭이 쉽게 풀린다는 말입니다. 저의 짧은 역사 공부로는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미국, 소련, 일본 그리고 한국에 있더군요.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책임은 미국과 소련이었고,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그중 미국의 책임이 더 컸습니다. 올해는 분단 74년으로 곧 한 세기의 3/4를 맞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한반도에서 한민족끼리 평화공존을 하는 데,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 후견의 나라 역할로 지켜봐 주십시오. 그게 세계 평화에 이바지 하는 길이요, 궁극적으로 한민족에게 미국이 은혜의 나라로 남는 길일 것입니다.

저는 이런저런 일로 미국을 방문하여 뉴욕의 그라운드제로도 살펴봤고, 워싱턴 백악관도 멀리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100층이 넘는 쌍둥이 빌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면서, 그리고 무장 헬기가 백악관 상공을 줄곧 빙빙 날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세계 최강국 미국의 아름답지 못한 면을 본 것 같아 몹시 씁쓸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이 짧은 글에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린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세계 평화 수호의 자세로 임한다면, 그 모양새가 좋지 않겠습니까.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들지 말고, 사랑과 은혜로 세계 여러 나라의 보호국이 될 때 미국과 미국인은 세계 여러 나라와 세계인으로부터 진정 존경받을 것입니다.

겨레의 비원

155마일 휴전선 철책
 155마일 휴전선 철책
ⓒ 사진작가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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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님! 다가오는 5월 북미정상회담에서 화끈하게 한반도의 휴전선 철조망을 거둘 수 있는 언질을 해주십시오. '좋다, 한국인, 두 나라는 자립할 능력이 있다, 너희들 스스로 멋진 나라를 한번 세워보시오.'

그리하여 그날 정상회담장에는 세계의 모든 기자들이 화기애애한, 웃음꽃 피는 분위기 속에 열띤 취재를 하고, 그들이 전하는 기사에 세계인들이 평화의 축포를 터트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일 트럼프 당신이 그런 날을 만든다면 노벨평화상은 물론, 한민족은 두고두고 그대를 은인으로, 영웅으로 추앙할 것입니다.

단순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국에게도 득이 됩니다. 미국 입장에서 시장을 한반도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으로도 넓히는 것입니다. 일거양득의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드리는 이 제의는 한국과 조선, 미국 세 나라 모두 승자가 되는 방안일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님! 한반도를 가로지른 휴전선 철책을 거두는 현명한 결단을 촉구합니다.


태그:#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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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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