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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복수 이야기를 좋아한다. 전에 자신을 공격하고 모욕했던 사람을 찾아 복수하는 이야기는 항상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서양에서는 자신을 감옥에 몰아넣은 사람에게 복수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불굴의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고, 일본에서는 봉지의 무사들이 죽은 주군의 복수를 대신한다는 <추신구라> 이야기가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극이 드라마 소재로 자주 사용된다. 남편에게 보복하는 내용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끈 바 있다.

복수에 대한 선호는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보복을 위해 다른 도시 국가를 침공하기도 했고,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신사들간의 결투가 유행했다. 인류의 역사와 복수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복수는 버리기 힘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를 지배하는 복수에 대한 책이 있다. 스티븐 파인먼의 <복수의 심리학>은 부족, 회사, 정계에서 있었던 원한과 보복에 대한 책이다. 붉은 표지와 바늘이 꽂힌 듯한 인형 그림이 인상적이다.

복수의심리학
 복수의심리학
ⓒ 스티븐파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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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복수의 심리학>이지만, 이 책은 복수를 하는 사람의 심리만을 분석한 책은 아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복수 문화에 대한 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학, 역사,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는 복수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복수와 용서에 대한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 복수와 용서가 가치를 지니는지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복수는 인간과 동물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감정이다. 침팬지 같은 영장류도 자신에게 나쁘게 대한 동물에게 보복할 줄 안다. 영장류 무리 내의 월권과 반역에 대해서는 폭력으로 응징한다. 인류도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이 발달했기 때문에 사적 보복을 줄이고 국가와 제도에 처벌 권한을 넘겼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 사회에서 완벽하게 복수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복수가 잃은 것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복수를 통해 부수적 상실(자부심, 명예 등)은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국가나 제도가 완벽하게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피해자나 손해를 본 사람 입장에서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복수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복수극은 사람들의 선호를 받았다. <마틸다> 같은 아동이 주인공인 소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마틸다>의 주인공 마틸다는 자식을 방치하고 언어학대만 퍼붓는 부모에게 여러 방법으로 앙갚음한다. 아빠의 모자에 초강력 접착제를 바르고, 헤어토닉 병에 표백제를 넣고, 가족이 기르는 앵무새를 굴뚝에 쑤셔 넣는다. 자신에게 염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다음에는 악랄한 교사에게 물건들을 마구 날린다. - 71P


그러나 모든 복수가 보편적 정의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예로,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일부 문화권에서는 여성이 가부장의 권위를 거스르거나 가족이 점지해준 남성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남성의 권위가 심각하게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문화에 대해 언급한다.

또한 복수는 쓸데없이 갈등을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복수를 복수로 갚는 문화권에서는 처음엔 사소한 잘못이 나중에는 가문 간의 전쟁으로 발달하기 쉽다. 가벼운 문제는 서로 조정하거나 화해하는 것이 서로에게 훨씬 이득인데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이웃끼리 살육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복수는 반목이 통제 불가능한 사태로 나아가게 만든다.

국법이 없거나 집행력이 약한 곳에서는 복수가 득세하고 간단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책은 명예 수호와 피의 복수를 골자로 하는 관습법 '카눈'이 사용되는 알바니아에서 어떻게 가문 간의 분쟁이 발생하는지 설명한다.

모든 것은 2010년 물레방아를 둘러싼 분쟁으로 시작됐다. 당시 쿠가즈 가족은 산간 마을의 물레방앗간에 살았는데, 냇물이 이웃에 살던 프로즈 가족의 땅을 통과해 흘렀다. 프로즈 가족은 사용료를 요구했다. 레너드의 삼촌은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모욕에 대한 보복으로 프로즈 가족 중 한 명을 쏴 죽였다. 2년 후 프로즈 가족은 설욕에 나서 쿠가즈 가족의 두 명을 죽였다. -105P

따라서 복수와 용서, 합의를 적절하게 운용하는 미덕이 필요하다. 책은 복수라는 램프의 요정이 일단 세상에 나오면 그 괴물을 다시 호리병 속에 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요즘처럼 분쟁과 보복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는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책 추천의 말은 정신과 의사인 신동근씨가 썼다. 그는 마음 속으로 복수하고, 자신을 비난하지 않으며, 나쁜 기억에서 물러서서 상대를 무시하는 방법을 조언한다. 물론 당한 사람이 용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이 책은 재미와 실속을 다 가지고 있는데, 복수에 미친 언론인, 복수심에 회고록을 쓰는 정치인, 문학을 자신의 복수심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있어 읽는 재미를 준다.

복수와 용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복수와 용서에 관한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복수심은 평생 인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인 만큼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복수의 심리학 - 우리는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가

스티븐 파인먼 지음, 이재경 옮김, 신동근 추천, 반니(2018)


태그:#복수, #화해, #보복, #심리,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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