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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헌책방이 좋다. 대형서점보다 헌책방을 더 자주 간다. 헌책방을 찾아서 도시의 구도심을 걷고, 덜거덕거리는 가게 문을 연다. 대형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로지 내 흥미를 위해서 책을 구매할 때는 대개 헌책방에 가는 편이다. 헌책방 안에서는 시간이 매우 빨리 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일찍 가는 편이다.

처음으로 이용했던 헌책방은 동인천 배다리에 위치한 헌책방들이었다. 인천의 구도심에 위치한 이 곳은 개발의 평지풍파를 조금 비껴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어렸을 적 헌책방을 구경하고 낡은 책에서 나는 냄새가 독특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아벨서점
 아벨서점
ⓒ 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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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아벨서점'은 유명해졌는지 이제 찾는 사람도 많다. 일요일에도 문을 열기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자주 이용하는 헌책방은 9호선 노량진역 인근에 위치한 '책방진호'다. 이곳은 다른 헌책방과는 다르게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름과 위치를 바꿔가며 수십년 동안 노량진을 지키고 있는 '책방진호'는 고층 학원 건물로 가득한 노량진에서 이색적인 장소다. 참고서나 수험서적이 많지만 때때로 수준 높은 교양서적이 들어오기도 한다.

책방진호
 책방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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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도 가는 편이다. 헌책방 주인분께서는 회사를 다니다가 퇴직하시고 헌책방을 차리셨다. 자신의 헌책방 운영경험을 살려 많은 책을 저술하셨는데, 책과 사람의 인연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매우 흥미롭다. 그 책들을 읽고 은평에 가서 책의 저자를 직접 마주하면 책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신기한 기분이 든다.

헌책방의 전성기는 이미 예전에 끝났다. 오래된 헌책방을 비롯해 많은 지역 서점들이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다. 헌책방으로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북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시대에 헌책방의 숫자는 줄어가고 있다.

나는 꾸준히 헌책방에 다니고 있다. 지나가다 간판도 이름도 없는 헌책방을 발견하면 눈길을 떼지 못한다. 나는 헌책방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헌책방에는 도서 유통업체의 홈페이지나 오프라인 대형 서점과는 다른 맛이 있기 때문이다.

무작위성

대형 서점에서 밀어주는 신간 서적들은 대부분 위치를 바꾸지 않는다. 분야도 비슷비슷하다. 경제 서적이나 자기개발서가 주된 베스트셀러다.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다시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눈에 띄는 곳에 있는 책들은 거의 항상 같다.

헌책방은 일반 서점에 비교하면 면적이 작은 곳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헌책방에 있는 책들은 찾기 다소 어렵다. 대형 서점의 책처럼 가게에서 밀어주는 책도 없다. 큰 카테고리만 정리되어 있고 비교적 무작위하게 책이 나열된 곳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책을 찾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기억의 저편 속에서 잊어버린 소설이나,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한 책에 대해 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수많은 헌책 속에서 직접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는 동안 나름의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키워지는 것은 덤이다. 지나치게 규칙적이거나 작위적인 도서 배열은 제공해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대형 도서 유통 업체의 홈페이지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의 취향을 분석해서, 항상 나에게 익숙했던 분야의 최신의 서적을 나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헌책방은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 나는 작법서에 약간의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살 엄두는 나지 않았는데, 최근에<시나리오 가이드>(데이비드 하워드, 1999)를 이렇게 만났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

헌책방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계속 재출간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스테디셀러인 훌륭한 책들도 있지만 나름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는데도 헌책으로만 구할 수 있는 책들이 있다는 것은 아쉽다. 헌책방에서는 그런 책들도 찾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은평구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절판된 인문 서적을 찾는 즐거움을 제공해서, 친구와 함께 가는 곳이다.

좀처럼 재출간되지 않고 사라지는 책들도 있다. 바로 정치인들의 책이다. 그들의 일화를 담은 책이나 자서전은 정치인이 힘이 없어지면 더이상 팔리지 않는지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과거 그들이 활동했던 기록 자체가 모두 의미없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기록을 읽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수원의 어느 헌책방에서 만난 <의원님들 요즘 장사 잘돼요?>같은 책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통합민주당(1996) 낙선 정치인들의 고깃집 운영에 대해 다룬 책이다. YS와 DJ 양김 사이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모색한 정치인들의 나름의 패기와 당돌함이 느껴지는 책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고루함과 편안함에 맞서서 당돌함을 무기로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책이기에, 오늘날의 제3정당들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다.

보물찾기

헌책을 찾으면서 본의 아니게 횡재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한 헌책방에서 낡은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괴물이 그려진 사전이었다. 일본의 요괴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바로 헐값에 사서 집에 모셔 두었다. <환상동물사전>은 이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읽어보니 과연 구매할 만한 재밌는 책이었다.

들녘 출판사에서 번역한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의 하나인 <환상동물사전>은 세계의 요괴와 괴물에 대해 다룬 책이다. 다루는 괴물의 양이 많고, 괴물마다 삽화가 그려져 있어 판타지나 기이한 설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2001년 출판된 후에 지금은 품절되어 재고가 없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원가보다 훨씬 비싼 4만5000원, 5만 원대에 거래된다.뜻밖의 보물을 찾은 셈이다.

헌책방
 헌책방
ⓒ 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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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꼭 돈으로 값어치가 있는 책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찾은 소중한 책이라면 그 책이 보물이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인연을 가진 보물같은 책이 있기 마련이다. 헌책방에서 책을 만나고, 그 책과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다.

헌책방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헌책방은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대형 서점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헌책방은 낯선 장소겠지만, 때때로 방문해서 찾아보면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장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헌책방 안에서는 바깥과 다른 공기와 시간이 흐르고 있다.

헌책방들은 대부분 역에서 떨어진 교통이 좋지 못한 곳에 있는데, 이는 헌책방을 알아서 찾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다행히도 서울 책방 찾기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곳이 있다. 서울시민이라면, 서울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인근의 헌책방을 찾을 수 있는 '서울의 동네 책방 찾기' 서비스를 제공해주니 관심있는 사람은 인근의 헌책방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환상동물사전

구사노 다쿠미 지음, 송현아 옮김, 들녘(2001)


태그:#헌책방, #독서, #서점, #책,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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