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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취재원을 인터뷰하다가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키우던 진돗개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개가 두꺼운 줄을 끊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개가 없어진 충격에 울고불고 했지만 어린 시절이라 당시에는 정황을 잘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가 스스로 줄을 끊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나가던 개장수가 개를 훔쳐간 것이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 잃어버린 개에 대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을 여러 마디 삼키는 듯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저으며 내뱉었다.

"개 훔쳐가는 사람들, 진짜, 제발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21일 저녁, 제주의 한 트럭에서 두 마리 강아지가 좁은 철장에 갇힌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차주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는데 아무리 전화해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당시 개를 발견한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제주팀 팀장은 정황이 이상했지만 개를 구조할 수도 없어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몸에 삽입된 마이크로칩을 발견했고 개들이 도난 신고된 반려견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트럭 주인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덕분에 개들은 주인을 찾아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구조된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이 사건이 마냥 해피엔딩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이게 비단 운 나쁘게 겪은 드문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계절적인 시점에서 비슷한 유형의 범죄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다가오는 여름, 동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계절은 아니기를 바란다.
 다가오는 여름, 동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계절은 아니기를 바란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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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훔쳐서 식용견으로 

시골에서 개를 도둑맞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특히 여름에 마당 있는 집에서 개를 훔쳐가 보신탕집에 팔아넘기는 범죄는 이미 몇 십 년 동안 흔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하루아침에 가족처럼 키우던 개를 도둑맞은 사람들은 너무나 답답하고 황당할 수밖에 없다.

묶여 있는 개를 훔쳐가는 것은 당연히 절도죄에 해당되고, 주인 없어 보이는 유기견이라도 마음대로 데려가 팔아넘기면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적용된다. 하지만 동물 관련법의 처벌 수위는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라 범죄 예방에는 큰 효과가 없다고 봐야 한다. 견주 입장에서는 반려동물이 소중한 가족이지만, 법적으로는 '생명'이나 '가족'이 아니라 '재산'으로 취급될 뿐이다.

재작년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동네 주민 4명이 남의 반려견 올드 잉글리시 십독 '하트'를 데려가 보신용으로 잡아먹었다. 견주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지만 그들에게 구형된 벌금은 고작 30만 원. 점유이탈횡령죄가 적용되었을 뿐이다. 그 후에도 제 2, 제 3의 하트 사건은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반복되면서 일어났다.

절도범이 아무리 큰 처벌을 받는다 해도 가족처럼 키운 내 개가 어딘가에서 식용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겠는가. 주인 있는 개를 훔쳐가는 것은 우리 집 귀금속을 훔쳐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단순한 절도 행위로 다뤄질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개를 구조하려면 범법 행위를 해야 한다 

동물이 생명이 아닌 재산으로 취급받아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학대받는 동물이 명백히 보여도 구조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유튜브의 고양이 학대 사건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분노했던 일이 있었다. 자정 살해를 예고하여 일명 '캣쏘우'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고양이를 묶어놓고 경련을 할 때까지 때리며 즐거워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 다행히 동물인권단체 케어에 의해 고양이는 구조되었지만, 구조 과정에서 원래 주인의 동의를 얻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현행법상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학대가 명백한 상황에서도 고양이를 데려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제주의 트럭 철장에서 발견된 개들도 마찬가지다. 도난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트럭 주인의 동의 없이 개를 구조한다면 절도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아직 구체적인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대로 두었다면 도둑맞은 반려견은 어딘가에서 식용견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개를 잡아먹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비위생적이고 비윤리적인지에 대한 문제는 일단 둘째로 하자. 당장 우리 시골집 마당에 있는 가족 같은 개의 신변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우리의 동물보호법이 실질적으로 동물을 어느 만큼이나 보호해줄 수 있는지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도 시급하다.

지금은 동물을 훔쳐도, 때려도, 죽여도 그 대상이 사람일 때와 달리 '별 것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동물을 '재산'으로 취급하는 '동물보호법'은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딱 잘라 말해주지 않고 있다.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조금씩 더 생명을 대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매년 여름 심해지는 더위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계절은 아니기를 바란다.


태그:#강아지,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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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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